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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이케가야 유지 지음, 박소현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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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취향’과 ‘편견’의 어감은 사뭇 다르나, 이는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나름의 취향으로 무장하며,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그 무게를 더한다. 한 주체를 겹겹이 둘러싼 취향은 이내 고착화에 성공해 그를 짓누르고,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편견으로 변질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편견이라는 용어에 눈살을 찌푸릴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며, 또한 편견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개 우리에게 ‘취향’과 ‘편견’의 간극이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로 시인될 수 있는 이유는, 편견이 또 한번 독단으로 변질되는 일이 더러 자리한 인간의 역사에 있다. 어떠한 신이라도 제쳐 두고 자신만을 믿는 유일무이의 신도는 외부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며 스스로가 써 내린 교리에 따라 세계를 재단한다.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의 저자 이케가야 유지는 웃음을 머금은 80개의 퀴즈로 독단에의 반기를 휘두른다. 그 퀴즈들이 정렬된 군대는 편견에는 죄가 없으나, 그 편견을 알아채지 못한 삶은 죄가 될 수 있음을 구호로 외치며 전진한다. 본인만을 맹신하는 이들을 조준하는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의 총칼은 뇌과학이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에 대해 “전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미신하고는 차원이 다른 사실들이다.”라고 말하며, 그렇기에 평소 독단을 일삼던 독자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이 될 일임을 미리 밝혀 지레 겁을 주기도 한다.

1에서 80까지의 나열된 뇌 과학 퀴즈는 특정상황에서 우리의 뇌가 보이는 편견의 필터를 각기 다른 항목으로 설명한다. 걔 중에는 대다수의 독자에게 상식선으로 인지되는 뇌의 특성에서부터, 꽤나 최신의 예시와 낯선 뇌 과학 지식까지도 포함되어 있어 읽는 이의 흥미와 유익함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제시될 사례는 필자 본인이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을 탐독하는데 있어 더욱 흥미로웠던 몇 가지의 경우이다. 미리 밝혀 두자면, 필자는 책의 가벼운 구성에 약간은 방심한 채 책장을 빠르게 넘겨 댔으나, 문득 마주하는 적지 않은 수의 퀴즈에 있어서는 수 차례 스스로에게 참된 사정을 되묻기 바빠, 완독하기에 공을 들여야 했다.

QUIZ 3: ‘선택맹’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눈앞에 이성 사진이 두 장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어느 쪽이 이상형에 가까운지 “선호하는 여성을 가리켜봐”라고 물었고, 당신은 한쪽을 가리켰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마술사이다. 마술사는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진, 즉 선호하지 않는 쪽 사진을 슬며시 당신에게 건넨다.
자, 당신은 마술사에게 받은 사진을 보고, 선호하지 않은 이성의 사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당신은 무엇이 사실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는가. 이 퀴즈의 결과를 보면 80% 이상이 사진이 뒤바뀐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필자 또한 그랬다. 이 경우는 스스로 선택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선택맹’으로 분류되며, 사실에의 무지라는 결과 뿐만이 아닌 해당 실험의 피실험자들이 보인 후의 반응에 더욱이 놀라운 점이 있다. 실험이 끝난 후, 왜 그 사진 속 사람이 자신의 이상형인지를 묻는 질문에, 피실험자는 사진 속 사람(즉, 선호하지 않은 쪽)의 여러 특징을 들며 좋아하는 이유를 밝혔다.

작가는 이를 무의식의 강세로 설명한다. 즉, 어느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 사실은 그 자신이 관여하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에 그 이유가 자리하는데, 인간은 보통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무척 당당히 허구를 말한다는 사실이다. 뇌는 이유를 물으면 이야기를 꾸며내서라도 답을 내놓고자 애를 쓴다. 그렇게 날조된 이유는 마음 내부에서 진실로 신봉되며, 그렇기에 우리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우리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내지는 왜 특정한 음식을 선호하는지 등의 일상적 질문 또한 위와 같은 ‘선택맹’의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우리의 선호를 주재하는 무의식의 영역은 어떠한 이유로 조성되었는지를 묻고 따져, 만일 오롯한 개인의 취향이 아닌 사회체제적 강압에 의한 무의식이 아닌지를 검증하는 과정 또한 분명 요구될 것이다. 노자는 ‘거피취차’를 말했고, 그 정의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로 설명된다. 이때 노자는 욕구에 대한 거피취차에서 버릴 것은 눈의 욕망이며, 취할 것은 배의 욕망이라 제안한다. 눈의 욕망은 타자에 의해 규정되고 조작된 욕망을 말하며, 배는 주변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신체기관으로 그 욕망은 자연적이다. 오롯한 자신의 배의 욕망을 멀리 하고, 타인으로부터 파생한 눈의 욕망을 가까이하는 개인은 이내 맹인이 되어버리므로.

QUIZ 17: 사용 빈도에 따라 기억력은 강화된다.
다음 주에 테스트가 있어 영어 단어를 암기해야 한다. 다음 중 어떤 공부법으로 암기하면 기억에 더 잘 남을까?
1. 단어 목록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반복해서 머리에 주입한다.
2. 반복해서 확인 테스트를 해본다.

위 질문의 답은 2번으로 설명된다. 우리 뇌는 수용하는 정보를 기억해야 할지 고심하여 결정하며,그 판단의 기준은 출력 빈도에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특정 정보를 자주 접하는 반복 학습을 통한 암기가 아닌, 즉각적인 테스트를 통해 해당 정보를 출력해 보는 경험을 축적하는 일이 보다 기억에 용이하다.

개인적인 필자의 견해에서 다독을 자랑하는 누군가는 그리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수 권의 책을 읽는다 한들 그 내용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그저 저서의 제목만을 새기는 헛된 독서에 지나지 않으며, 그 허상을 떠드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연 평균 고작 10권 정도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국내 독서문화의 통계적 현실 앞에 비통하여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작가의 삶과 그 무게만큼의 필압으로 적힌 글을 읽는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신중하되, 그의 사유를 나의 말로 변환하는 독서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과거 참다운 선비라 불리우던 우리네 조상들이 말하고 적고 토해낸 지혜이며, 우리는 온고지신의 자세를 견지하여 그들의 말을 새겨 들어 따라보아야 한다.

QUIZ 80. 자유의지의 착각
당신은 양손에 레버를 쥐고 있다. 레버에는 버튼이 달려 있고, 좌우 버튼 중 하나를 누르고 싶을 때 자유롭게 누를 수 있다. 이 실험을 하면서 당신의 뇌 활동을 측정할 것이다.
자, 손을 움직일 준비를 하는 뇌 활동의 타이밍은 다음 중 어느 쪽이었을까?
1. 누르고 싶다고 생각하면 뇌가 누를 준비를 시작한다.
2. 뇌가 누를 준비를 시작하면 누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우리는 위 질문에 1번을 답으로 말하기 쉽다. 그러나 뇌 과학은 우리가 누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이전, 뇌는 이미 ‘누를 준비’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다시 말해, 무의식의 뇌 회로가 누를 준비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는 누르고 싶다는 감정이 샘솟는다는 설명이다. 책의 저자인 이케가야 유지는 후자의 경우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설명한다. 즉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가 곧 특정한 결정과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보편적인 오해와는 달리, 의지는 어디까지나 뇌 활동의 결과라는 것이 그와 뇌 과학의 설명이다. 또한 저자는 그러한 입장을 옹호하고자 꽤나 단순한 해설을 덧붙인다. 의지로 대표되는 뇌의 어떤 활동은 그 활동을 탄생시킨 근원이 되는 활동도 뇌의 내부에 있음을 의미하며, 어떠한 활동이든 원인이 되는 활동을 전제로 함이 그 내용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용기를 가질 것을 권고한다. 이때의 용기란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낭만적 감성에 반기를 들 기개를 말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철학사 내부에서 주요한 논의의 소재로 다루어 진 바 있다. 필자 또한 학부생으로 철학을 전공하며, 특히나 스피노자와 니체의 시선으로 자유의지의 개념을 조명하며 인간 보편에 통용될 자유의지의 정설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 사실 저서의 끝머리에 제시된 ‘자유의지의 착각’을 읽고 도출된 결론 앞에 필자는 긴 시간 공을 들여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당장에 그 논의를 모두 적어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에, 아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향한 사유라 요약함이 좋겠다.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의 저자는 분명 서두에서 본 글은 미신과 다른 과학적 사실임을 강조한 바 있다. 만일 저자가 말하는 미신의 범주 아래 철학이 포함된다면, 아마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적 담론 또한 과학적 사실 아래 묵살되어 버림은 자명하다. 나 또한 철학을 과학의 상부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무모함은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럼에도 책을 읽어 나갈 독자에게 권고하고자 하는 말은 남아 있다. 물론 뇌 과학이 밝혀낸 자유의지의 무존재가 사실이라 한들, 그럼에도 주체적 의지를 믿으며 살아도 좋다는 것. 미세먼지에 시야가 가려지고, 사회적 침체의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꿈은 파쇄되어 흩날리는 지금, 자유를 지향하는 소박한 낭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본래 과학 또한 반증가능성이 그 전제이며 그렇기에 불완전한 학문으로 불리움이 사실에 맞으니, 우리는 사실을 표방하는 과학 앞에 그저 무릎 꿇는 것으로 자유의지의 퇴색을 방관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저술의 후일담에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은 일반인과 심리학 전문가 모두를 몰입케 하는 정보를 말하고 있었다. 또한 분명 책은 가볍게 구성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5년 이상의 연구의 종착지인 만큼 지극히 전문적이었다. 물론 필자 개인적으로 심리학 관련 저서와 강의를 체득하며 얻은 정보와는 다소 상충하는 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의 재치 있는 구성과 내실은 필자의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일 필자와 유사하게 저서의 퀴즈 별 뇌 과학적 지식에 보다 상세히 천착하는 경우가 아니라 한들,인간 마음의 보편적 지식을 전송해 세계에 낭자한 독단과 그 폐해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저자의 저술의도는 성공적이리라 믿는다. 저서를 접하여 인간의 뇌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편견의 정도를 인지한 독자들에게 남은 건 역시나 실천뿐이다. 편견은 죄가 아니나, 편견을 모른 채 하는 일은 죄가 될 수 있다. 편견이 독단이 되지 않도록,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도록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외부의 타자와 상생함으로 생장할 따름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발은 마땅히 사랑으로 내딛어야 할 일이다. 생동의 봄은 결국 타자로 인해 도래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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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 - 신냉전 시대, 우리는 어떻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김택환 지음 / 김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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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국가비전 전략가 김택환 교수는 서두의 머리말에서 몇 개의 화두를 제시한다. “우리는 어떤 100년을 꿈꾸고 있는가?”, “도래할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어떤 기회를 잡아채야 하는가?”, 그리고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가?” 위 질문의 주어는 모두 ‘우리’로 수렴한다. 나의 부끄러움은 이곳에서 태동했다. 여러 일로 글을 적어 내려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각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의 주어 대부분은 ‘나’를 넘지 못했다. 대개 호기를 부려 ‘필자’, ‘글쓴이’ 따위의 단어를 문장의 머리에 놓은 채 이런 저런 사유의 편린을 떠들었으나, ‘우리’를 말한 일은 잦지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맥박은 서둘러 뛰었고, 그 덕에 책장은 민첩히 넘어갔다.

저자는 위의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주시한다. 그 처음의 시선은 지난 100년의 역사에 고정된다. 제 1, 2차 세계대전의 양상에서부터 앞으로 논의될 4대 강국의 지금에 대한 개요를 그리며 저자는 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다음으로 요약한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미국이 세계의 새 판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반도에는 네 번째 기회이다. 경제적으로는 대한민국에 위기이지만 외교 안보 차원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문장은 간결했고, 활자는 논리를 갖춘 채 배열되었다. 이제까지의 서술에 있어 몰입이 수반되었을 때, 우리는 몇 가지 의문을 안은 채 저서의 1부로 진입한다. “미국에 의한 세계의 새 판은 무엇인가?”, “이는 어떠한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를 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작금의 정세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마지막 기회로 서술될 수 있는가?” 좋은 글은 독자에게 의문의 갈증과 해갈을 동시에 선물한다.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는 천천히 그 정의에 부합한다.

1부는 ‘4강의 현재와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그 주제로 한다. 1장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현재를 국가별 키워드로 분류하여 다룬다. 처음 제시된 미국의 경우를 한 예로 살펴보면, 미국이 형성하는 2개의 냉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두 전쟁의 선봉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에 기원하는지. 또한 강력하고도 독보적인 리더십을 구현하는 트럼프의 정권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되고 운영되는지,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위기까지를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밝혀 말한다. 다음의 2장에서는 보다 세부적인 4대 강국의 국가 전략을 논한다. 본 장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기사를 통해 자주 접하여 친숙히 간주되는 ‘신중상주의’, ‘중국몽’ 등의 용어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에서부터, 일본의 ‘팍스 니포니카’, ‘신동방 정책’ 등의 정치사회적 용어에 대한 적확한 파악에 이른다. 1부는 4대 강국이 품은 한반도를 향한 야심을 해설하는 것으로 문을 닫는다.

앞선 1부에서 4강의 현재를 말했으니, 2부는 이에 대한 독자의 수용을 전제로 “어떤 미래가 오고 있는가”를 논한다. 이 곳에서 김택환 교수는 현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경로에 있어서의 극명한 차이에 기반하며, 또한 각국의 수장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구현하는 리더십의 충돌에도 그 이유가 있다. 나아가 저자는 추후 도래할 군사 충돌의 가능성 또한 언급한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넘어, 일본, 러시아를 포함한 4대 강국 사이의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형성된 새로운 전선은 저자에 의해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하나의 명제로 요약된다. 김택환 교수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인 판단의 필요성을 조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는 군사안보를 견고히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저서의 말미에 위치한 3부에 다다른다. 3부는 보다 세부적인 차원에서 한반도 미래 조성의 방향성을 지시한다. 서평을 적는 필자의 주관으로는 ‘문명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신문명을’의 표제를 깊이 새겼다. 김택환 교수는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말을 빌어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잘못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향한 개선 의지임을 밝히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부정을 지적한다. 이어 동아시아에서 신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가능성의 국가를 한반도로 규정하고, 그 근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명한다. 지정학적 위치, 소프트 파워의 강세 등이 이에 언급된다. 허나 저자가 바라보는 한반도의 미래는 맹목적인 낙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글로벌 리더십, 새로운 산업의 개척 등 미래를 이끄는 동력에 있어 분명한 아쉬움이 잔존한다고.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상기된다. 이는 8년간 월맹군 포로로 잡혀 고초를 겪던 제임스 스톡데일의 생존 이유를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는 믿음을 넘어 그가 발휘한 냉혹한 현실 직시에서 도출함을 그 핵심으로 한다. 무조건적 긍정주의는 되려 독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토로하는 현 한반도의 난제는 분명 요구되는 지식인의 견해이며, 독자인 우리는 앞선 저자의 낙관이 아닌 그 아쉬움에 방점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선도와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한국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조언으로 남긴다. 그 논의는 충분한 논거가 선행된 실천적 전략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약 250페이지에 달하는 저자의 사유를 관통했음에도 지치지 않고 저서의 전개를 따라 소화할 수 있게 된다. 책의 꼬리말에서 김택환 교수는 말한다.

“이렇게 방대한 작업과 취재 끝에 내린 결론은 한반도 문제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발상,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4강의 국가 전략과 한반도에 대한 야욕은 모두 자국의 이익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우리도 ‘통 큰 국익의 관점’에서 새 비전과 구상을 마련해야만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상을 간추리면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의 국익을 위한 새로운 사고와 발상, 그리고 이를 구체화한 전략의 필요성의 절실함에 대한 국가 비전 전문가의 상세한 제안서이다. 그간 철학을 아낀다 떠들며, 정치사회적 맥락을 외면함에 둔감했던 필자 본인은 책의 말미에 이르러 더욱이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떨었다. 철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개인으로 현인들의 우아한 사유를 훔쳐보는 일에 통달했을 뿐, 결국 그들의 최종 지향은 정의이며 이를 실현하고자 공동체 내부에서 피로 글을 썼던 현자들의 노력은 무거이 여기지 않았다. 철학함의 실천이 아닌 활자의 철학을 했을 뿐이다. 그런 소인이 어설프게 미래의 성공을 가정한 채, 그 이후의 공동체적 공헌을 거시적 목표로 자랑하며 요란을 피웠다. 허나 우리네 몸에는 분명 관성이라는 역학이 작용하는 터라, 미리 체화 되지 못한 지식과 지향은 어느새 추진력을 잃어 정처에 머문다.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를 향한 필자 스스로의 사유에 있어 하나의 시발점으로 남았다. 지금의 성찰이 퇴색되지 않도록, 이제껏 적어 내린 긴 논평은 ‘나’와 더불어 ‘우리’의 미래를 고찰하는 삶에 있어 화력 있는 촉매로 역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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