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자고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생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로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선택과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쌓아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 등을 갑자기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좌절하게 되고 새로운 선택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의 고독>의 토르비에른 에켈룬 작가 역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 걷기를 통해서 삶을 일깨우고 사유하는 생활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를 몰고 나가는 대신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에 적응한 내 모습은 이전에 상상했던 그런 좌절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은 해방된 삶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습관을 바꿨을 뿐 잃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생활은 느려졌고 맥박은 안정되었다. 세상은 어렸을 때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내게 활짝 문을 열었다.

.

.

.

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갑자기 나는 어디서든 길을 볼 수 있었다. 그 길은 여태껏 그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중요한 길이었다.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오솔길, 수풀 속으로 난 짐승들이 다니는 길, 산울타리를 관통하고 정원들 사이를 들락날락하고 운동장과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집까지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p. 25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르비에른 에켈룬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 도중 쓰러지게 되었고 뇌전증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충격적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이 책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작가가 뇌전증 진단 후 걷기를 통해서 길 위에서 느끼고 바라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있다.



길의 역사는 또한 막 사라지려고 하는 세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선, 사람과 동물이 오가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좁은 오솔길은 도로로 바뀌었고, 두 발로 걷던 길은 마차와 수레가 다니는 길이 되었고, 흙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길로 대체되었다. 더 최근에는 마차와 수레가 승용차와 트럭으로 바뀌었고, 도로는 더 넓어졌다. 늪의 물이 빠지고, 산이 폭파되고, 평원지대에는 자잘하게 부순 자갈들이 깔렸다.

옛날에는 여정을 짤 때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연경관을 개조하고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산을 폭파시킬 수도 있고, 습지의 물을 뺄 수도 있고, 강물의 물길을 파이프를 통해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로막는 물리적 공간의 장애물들을 거의 다 제거했다. 반면에 시간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p. 20


길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길은 더 많아지고 이동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없애는 등 편리함과 빠른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돌아보면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초반에 기록된 이 문장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편의성과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우리의 손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시킨 결과가 멸종된 동물들과 기후 위기라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에 길은 자연 풍광과 서로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도로는 자연 본래의 풍경을 개조했을 뿐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먹이를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불곰과 순록, 연어, 늑대 같은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동물들의 이동 경로는 가로놓인 거대한 도로들 때문에 막혔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는 어느 날 갑자기 창공을 지배하기 시작한 날아다니는 거대한 금속 흉물덩어리들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이동하는 길도 강물을 가로막은 댐과 다리들 때문에 끊겼다. 수많은 종이 천연 서식지를 잃고 멸종되었다.

p. 21


우리가 당연시 누리며 살아가던 세상 속에서 그 대가로 피해를 입은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혼자 걷는 것과 다른 이와 함께 걷는 것의 차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크다. 그것을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행이 한 명이든 스무 명이든 상관이 없다. 한자냐 혼자가 아니냐가 문제일 뿐이다. 혼자 걸으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귀에 들리는 것은 길을 걷는 자기 발소리뿐이다. 심지어는 본능적으로 그런 소음들조차 줄이려고 애쓴다. 아무런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노출되고 싶지 않다. 이런 각별한 조심은 또다른 뜻밖의 결과를 낳는데,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을 평소보다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p. 240-241


나는 주로 가족과 여행을 다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혼자 여행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함께 다닐 때와 혼자일 때는 여행에 있어서도 그 차이가 크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조금 외롭고 긴장되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을 해 보니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평소에는 시간 절약과 빠른 이동을 위해서 차를 이용하지만 혼자 여행을 할 때면 조금 다른 방식의 여행을 선택하기도 하고 느린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혼자 걸으면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도 집중하게 되기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가끔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삶을 더 다지게 만드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종종 하려고 노력한다. 차로 달리면 이동하는 도중의 풍경은 그냥 스치게 되지만 걸어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더 많은, 숨어 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하기라고 한 것처럼 작은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홀로 걷지만 혼자가 아닌, 자연이 말벗이 되어주고 작은 생명들이 친구가 되어주는 여행, 자신과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걷고 또 걸으며 발견한 사유와 걷는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읽다 보면 함께 공감하고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느끼게 한다.

'길은 혼돈 속의 질서'라는 말처럼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에 더 많이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한다.

나의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자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작가의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걷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두 발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걷기를 통해 얻은 진정한 자유의 다른 표현이리라.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의 바깥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나와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는 걷고 또 걸었어요. 나는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었어요. 마치 하루에 몇 시간씩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죠. 처음 4주 동안은 발바닥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겨 매우 쓰리고 아팠지만, 이내 상태가 좋아졌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걷고 또 걸어라. 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 P64

나는 이제까지 얼마나 자주 그 오솔길 위를 걸었을까? 지금은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던 때가 내 생애 최고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인 이상욱 작가의 소설 <기린의 심장>은 9개의 단편 이야기들이 묶여진 소설집이다.

첫 페이지를 펼쳐 <어느 시인의 죽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딱 첫 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아! 이 작가 뭔가 독특한데?'였다. 뭔가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점이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묘하게 재밌고 끌렸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일 것만 같은) 첫 번째 단편을 읽고 이상욱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다음 이야기도 빨리 읽고 싶어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꼽자면

<어느 시인의 죽음>과 <라하이나 눈> 그리고 <허물>과 <하얀 바다>였다.

지구를 침공해 인간을 먹고 사는 외계인 가브들의 이야기는 SF적이면서도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가브들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의 기준 등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림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열심히 달리며 산 그는 육체의 동기화로 다이어트를 대신해 주는 베타의 삶을 사는 이야기 <라하이나 눈>

돈 있는 자는 마음껏 먹고 놀면서 몸짱이 되고 돈이 필요한 자는 끊임없이 달리고 칼로리를 소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모든 칼로리가 모두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고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기발하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 같다. 파출소에 있게 된 한 소설가에게 경찰 k가 들려주는 동물원 이야기는 마치 기묘한 이야기의 한 장면 같다. 기린의 심장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인간의 끝없는 욕구와 욕망에 대한 시선을 담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알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다.

뱀이 된 소년의 이야기인 <허물>의 내용을 읽노라니 정밀아의 <심술꽃잎> 노래가 절로 떠올랐다. 할머니 집에 맡겨진 아이는 언제 엄마가 데리러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버림받았을지도 모를 불안함이 소년을 뱀으로 변하게 한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문득 애니메이션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도 생각이 났다. 

<허물>은 아릿한 통증이 밀려오는 이야기였다. <하얀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의 죽음 그 슬픔과 아픔의 내용을 보면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중 <입동>도 절로 떠올려졌다. 세상은 녹아내릴 듯 더운데 내 안은 시리도록 차갑고 혹독하기만 한 시간들.

<연극의 시작>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김용균 씨의 죽음도 생각났고 대구지하철 방화사건도 생각나게 했다.

이렇듯 소설은 9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지요. 협곡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저는, 그럼에도 삶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주는 안식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비가역성(非可逆性)을 담보로 합니다. 그 담보가 저는 두려웠습니다. 할 수 있다면 맹수를 만난 타조처럼 땅속에 머리를 묻고 영원히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삶과 죽음, 고통과 안식, 유한과 무한, 가역과 비가역, 돌이켜보면 저는 평생을 이 갈등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p. 153~154 <허물>


작가가 9편의 이야기 속에서 담고자 한 것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이상욱 작가의 9편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심오하며 신선하고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재미도 있지만 그 속에 왕따, 자살, 성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도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신인작가인데도 단편마다 글의 힘이 느껴졌고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어떤 내용들은 조금 더 이야기를 확장시켜 장편으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롭고 좋았다.

단편소설이 재미와 여운을 주기가 쉽지 않은데 출판사 측에서 범상치 않은 작가를 발굴했기에 이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전 서평단을 꾸려 보란 듯 작가와 작품을 알리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경쾌하진 않지만 너무 묵직하지도 않고 적당히 여운과 잔상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어쨌거나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새로운, 꽤 기대되는 신인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사전 서평단 선정으로 가제본을 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그림자 속엔 어두운 마음이 숨어 있거든. 원하던 걸 얻지 못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몸에 병이 찾아오면, 그림자에 숨어 있던 어두운 마음이 슬그머니 나타나 발목을 움켜쥔단다. 그러니 아빠와 삼촌을 미워하지 마라. 저 나이가 되면 누구나 그림자에 쫓기며 사니까.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도착하기 전, 검색부터 해보았다. 과연 어떤 책인지... 미리 알아보고자.

검색을 하니 책이 검색되는 것이 아니라 온통 스페인 식당 이름인 <돈키호테의 식탁>이 줄줄이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스페인 식당을 연 이가 바로 천운영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돈키호테에 빠져 스페인에서 400년 전 돈키호테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을 찾아 나선 것도 모자라 식당도 열고 책도 냈다는 결론인데... 이 작가 추진력 좀 보소~ 돈키호테 못지않음에 놀랐다. 작가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 지내며 돈키호테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 후 2년간 스페인을 오가며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돈키호테의 식탁>은 그 음식 순례기의 결과물인 셈이다.



나도 뭔가 하나에 꽂혀 빠져들기 시작하면 심취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천운영 작가의 돈키호테 뽕빨 뽑기에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경지에 이른다. 돈키호테를 내가 제대로 읽기나 했던가?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싶을 만큼 뭔가 알기는 아는 거 같으나 제대로 아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참 애매모호했다. 내용도 가물거리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은 더더욱 알 턱이 있나. 목차를 보자니 <돈키호테>가 음식 소설인가 싶을 만큼 꽤 많은 음식들이 등장을 한다.

우리도 즐겨 먹는 음식도 있는가 하면 상당히 낯선 음식들도 있다.



 일러스트와 함께 각각의 음식 이야기를 돈키호테 소설 속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 참 맛깔나게도 적었다. 목차마다 갖가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기분이랄까. 돈키호테에 빠진 작가는 어쩜 이야기도 이렇게 맛깔나게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며 잘도 버무렸을까. 글맛이 참 좋다.유쾌하고 즐겁게 읽었던 흥미로운 음식 에세이다. 무엇보다도 스페인이라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있고 문화가 있고 음식이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돈키호테>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 속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소설 속 장면과 작가의 삶이 녹아나는 인생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더 빠져들며 읽었다.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꼽자면 "무화과"와 "잔칫집 홍어" 이야기다.

무화과는 어른의 과일이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가장 크게 공감되었고

곰삭은 홍어의 냄새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결혼식 홍어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밌었다.

고전 소설인 <돈키호테>를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재미나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도 작가적 능력이다. 이 책을 통해 천운영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키호테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앞으로 돈키호테를 읽게 된다면 소설 속 음식들에 눈이 더 갈 거 같고 '아... <돈키호테의 식탁>에서 천운영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지?'라며 절로 연상될 것만 같다.

스페인도 가보고 싶고 스페인 음식도 먹어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맛깔나는 음식 여행기 책이었다.









인생 별거 있소?

살거나 죽거나지.

그러니 있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면서

평화롭게 함께 먹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아침을 여실 때

모두를 위해 여시는 것 아니겠소?

 - P184

돈키호테의 말마따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은 고양이 인생그림책 9
이덕화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만 보고도 홀딱 반하고 말았다. 길벗 어린이 출판사의 인생 그림책 시리즈 9권으로 출간된 이덕화 작가의 <봄은 고양이>

환한 봄빛을 담은 표지와 함께 앙증맞은 고양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이덕화 작가는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이 된 작가이다. 간결한 문장과 함께 페이지마다 노랑노랑한 그림들이 봄빛으로 물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너무 행복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1923년에 쓰인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그림책이라고 한다.




야몽은 봄을 만드는 아주 작은 고양이다. 이 야몽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세상에 퍼지면 사람들을 나른하고 둔하게 만들기도 한다. 야몽의 털에 묻어 있는 가루가 졸음을 몰고 오는데 야몽들이 눈꺼풀에 매달려 자장가를 부르기도 하고 사람들의 콧속에 들어가 재치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람의 가슴에 파고들면 두근두근 봄의 설렘을 느끼게 하는 야몽들.



아... 봄이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나 했더니 이제야 그 답을 찾았다. 모두 야몽들 때문이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야몽들.


봄과 고양이는 참 잘 어울린다는 걸 고양이와 함께 살면 살수록 느낀다. 오래전 이미 느낀 이들이 시도 쓰고 소설도 썼다. 봄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고양이와 연결시켜 사랑스러운 그림과 함께 짧지만 강렬하게 공감되는 문장으로 완성시킨 그림책.

이건 정말 소장각이다. 그냥 그림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봄의 기운이 가득 느껴져 좋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이야기라니...


매년 봄이면 꺼내보고 싶은,

이제 매년 봄이면 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서 야몽을 절로 떠올리겠지.

나에겐 사계절 내내 야몽같은 사랑스러운 우다다 패거리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야몽의 웃음은 봄이 오는 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관계 착취 -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 줄 74개의 원칙
훙페이윈 지음, 홍민경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패션에도 유행이 있고 흐름이 있듯 출판계도 그러한지 요즘은 인간관계와 심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보인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심리학의 쓸모처럼 제법 깊이 있고 이론적인 부분을 체계적으로 쓴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쉽게 누구나 편하게 꺼내 읽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치유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 편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쳤고 책을 통해 답을 얻고 위안을 얻고 싶어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현실 속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답답한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기보다는 보듬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책들이 요즘 대세인 거 같다.

<인간관계 착취>는 제목만 보면 뭔가 엄청난 것들에 대한 글들이 쓰인 거 같지만 책을 펼쳐보면 지극히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인지하는 것도 있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착취에 대해 세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뭔가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이건 뭐 내용만 보자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훙 페이윈 작가는 대만 작가다. 나는 중화권 작가들의 쓴 글 중에서도 에세이는 뭔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았지만 소설은 괜찮은데 에세이 종류는 좀 딱딱하다고나 할까 뭔가 집중하기가 어렵기도 해서 제목도 심오한데다 중화권 작가라서 책장이 잘 안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우였다.


읽다 보면 어쩜 우리나라와 상황이 이렇게 똑같을까... 싶은 것이 정서적으로 더욱 공감하게 된다. 책에서는 실제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임상심리사인 훙 페이윈의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총 74개의 처방전이 바로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 줄 74개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발견했고 책의 상황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하고 감사해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독립적인 개체로 생각하고 존중하며 키운다고 키우고 있지만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착취가 일어났던 게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혼자가 편하고 더 좋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타인을 의식해야 하고 배려해야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감정 소모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여가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모든 관계를 잘라내고 홀로 설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슬기롭게, 자존감을 찾으면서 원만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작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방법을 제시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모든 사람이 읽어도 저마다 공감하고 정서적 유대가 일어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과 육아, 고부간의 갈등을 겪는 이들이 읽으면 보다 더 큰 공감을 얻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내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인간관계 착취를 피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삶을 잘 살고 싶다면 우리 주위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특히 평생토록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가장 친밀해서 떼어낼 수조차 없는 친자 관계, 즉 부모와 자녀 관계에 주의해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현실에 맞지 않는 기대를 하든,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의 족쇄를 채우든 가족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질기게 묶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 P168


비위를 맞추는 일은 화합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행동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내면에 조금씩 쌓여가는 원망과 분노의 물결은 언제 거센 풍랑을 만나 사나운 파도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행위는 내면의 두려움이 외적인 행동으로 발현된 것이다. 비위를 맞추는 행위는 인정받고 싶고, 소외되지 않고 귀속감을 얻고 싶은 당신의 욕망을 알게 해주는 일종의 신호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기를 갈망하지만, 안정감을 잃지 않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 P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