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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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6. 이해완 『불온한 것들의 미학 : 서가명강13』 : 21세기북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문’의 분류를 보면 다섯 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다. 경영학, 심리학, 법학 등을 포함한 사회과학. 물리학, 수학, 과학 등을 포함한 자연과학. 언어학, 역사학 문학 등을 포함한 인문학. 음악, 미술, 무용 등을 포함한 예술 그리고 마지막 미학이 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인문학, 예술까지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어쩐지 미학이라고 하면 모호한 기운이 느껴진다.

미학이란 미와 예술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문화와 세계를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술적 감성의 자유로움과 철학적 사유의 엄밀함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이 학문의 가장 매력적인 특성이다. 미와 예술, 미적 가치의 본질을 사유하기 위해 철학적 방법론을 주로 사용하지만 역사, 심리학, 사회학적 방법론을 동원하기도 한다. 미학 사상과 이론을 탐구하고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영화, 사진 같은 예술 장르를 비평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바로 미학이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서가명강 시리즈 그 열세 번째는 서울대 미학과 교수 이해완의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다. 지난 서가명강 시리즈 역시 때로 인문서로서, 때로 교양서로서 즐겨 읽었으나 이번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 특히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불온한 것들’에 대한 미학적 시선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려는 것은 위작, 포르노그래피, 농담(그중에서도 도덕적 문제가 있는 질 나쁜 농담), 그리고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로 대표되는 B급 장르의 대중예술인 공포물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저자가 공부해온 철학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다.

이 책에서는 ‘불온한 것들’의 사회문화적 함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주변부로 여겨지던 것들에게도 이제는 지위를 부여하자는 ‘문화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이들을 유별난 것으로 취급해 그들만의 미학이 있다는 듯이 호들갑 떠는 것을 경계하자는 쪽에 더 가깝다. 나는 특히 이 ‘불온한 것들’ 중에서도 포르노그래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문화사에서 바라보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사진을 취미로 하며 몇 번의 전시회 경험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전시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주제로 연작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다섯 명의 작가가 함께 전시를 했고 나는 ‘여성성’을 택해 연작을 선보였다. 전시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는데 특히 내 사진의 경우는 ‘예술과 외설’의 심판대에 올랐다. 나는 포르노그래피 작가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지만 하나의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그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며 위험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예술과 외설이 개념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하니, 예술인데 동시에 포르노그래피라고 하거나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 불가한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학자들이 제안한 것이 ‘포르노그래픽 아트’다. 상식적인 견해에 다르면 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 잔’만큼이나 형용모순이고, 성적으로 선정적인 예술품을 부르는 용어인 ‘에로틱 아트’에 비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예술 철학자들은 성을 재현한 경우 그것이 예술이라면 에로틱 아트, 그렇지 않으면 포르노그래피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불만을 가졌다. 그들은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일 수 없는지를 따져 물었고, 여기서 대두된 용어가 바로 포르노그래픽 아트다.

사진 예술은 르포르타주 즉, 기록에 대한 기능과 미학적 가치가 어우러져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 사진에 대해 탐구한 책은 아니지만 이해완 교수의 예술적 감성의 자유로움과 철학적 사유의 엄밀한 시선을 만나는 일은 나의 사진 생활에 깊은 영감이 되었다. 사진을 담아온 지난 20년간 궁금했던 많은 부분이 『불온한 것들의 미학』으로 해소되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교양서적이나 인문서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학적 관점에 대한 전문서적으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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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9 - 넥스트 노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의 생존 전략
류종기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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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5. 류종기 『리질리언스9』 : 청림출판

회복탄력성이라는 의미의 ‘리질리언스’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흡수하고, 중요한 기능을 회복해 성과로 연결하는 회사의 역량을 말한다. 비즈니스 환경은 점점 더 역동적으로 변하며 다변화하고 있다. 또한 예측 불가능한 위협 요소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세계 기업들은 회복탄력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는 현대 역사에서 인류가 직면했던, 그리고 직면하고 있는 위협 요소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감영병 대유행이 환산되면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은 물론 사회, 경제, 정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고 더불어 지난 100년 이상 쌓아온 현대문명을 무력화했다. 이 파괴적 전염병이 앗아간 것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이나 건강 정도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간을 빼앗았고 문화를 후퇴시켰다. 옥스팜 인터내셔널은 코로나 위기가 전개되면서 5억 명이 빈곤에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은 어떤가. 어떤 기업에는 단기 생존이 유일한 경영 안건이겠지만, 또 다른 기업은 불확실성의 안갯속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넥스트 노멀’은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위협하는 수많은 리스크를 관리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면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다. 알다시피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현대적으로는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말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저자가 『리질리언스9』을 통해 도달하려는 핵심이 바로 전화위복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연 차세대 전망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대비는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리질리언스, 즉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키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절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과거 사스, 메르스, 에볼라바이러스 등의 사태가 향후 대비할 수 없는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을 미리 경고했지만 인류는 파급력이 크지 않았던 지난 감염병 유행 사태에 안주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사태에서 인류는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 것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흔히 말하는 서구 강대국과 선진국은 감염병 대유행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인류 역사가 지탱해온 고도의 기술, 그동안 매우 복잡하게 확장되어온 글로벌 공급망마저도 무너졌다. 경제활동은 대규모로 중단되었으며, 불평등과 사회적 긴장, 그리고 갈등은 전에 없이 악화됐다.

경영대학원에서 조차 관심 주제로 두지 않는 리질리언스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경영 이론과 방식은 여전히 재무 성과를 관리하는 데 치우쳐져 있다. 따라서 회복탄력성을 명시적으로 설계하고 측정,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은 현실 비즈니스에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질리언스의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기존 경영 방식으로 측정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은 재무 건전성과 단기 수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초 체력이 약해지거나 현재에는 탄탄하지만 미래 전략이 불투명한 기업의 경우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저자 류종기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 아래에서는 ‘효율성’이 기업에 가장 좋은 솔루션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미래에는 ‘효율성’보다 ‘리질리언스(역동적으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위기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역량)’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질리언스9』에서는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제시한 ‘9가지 리질리언스 렌즈’와 ‘기업 리질리언스 실천을 위한 9가지 액션 플랜’을 통해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 극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이 살아남고 또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방법에 대하여 논의함으로써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한 지금 세계 경제를 지탱할 기업들의 경영 방안을 재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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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사의 동물병원 이야기
김야옹 지음 / 뜻밖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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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4. 김야옹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 뜻밖

오늘은 반려동물에 관한 매우 특별한 에세이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출판 브랜드 뜻밖에서 펴낸 신간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는 수의사 김야옹이 반려동물들을 돌보며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와 뒤늦게 수의대에 입학하여 수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그리고 있다.

오랜 시간 독서를 취미로 하며 반려동물에 관한한 전문서적은 꽤나 많이 접한 편이다. 물론 이것은 취미나 취향의 문제로 접한 것은 아니고 다분히 상업 행위를 위해 공부의 목적으로 접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반려동물에 관한 책은 전문서적 외엔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이전에 반려동물과 관련한 사업을 8년가량 해왔고 생업이란 이유를 떠나서라도 결코 나는 반려동물과 친해지기 어려운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내가면서까지 반려동물과 관련한 서적을 읽을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반려동물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작은(특히 어린) 생명체는 나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반려동물과 관련한 사업을 8년이나 했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기도 하다. 물론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려동물을 마주치는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첫 번째 매장이 자리 잡은 이후로는 사무실을 따로 구해 가맹 사업에만 열중했다. 그만큼 나는 작고 어린 것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이런 사연 덕분에 내게 이 책은 가장 읽기 싫은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감 가는 책이기도 했다. 업계를 떠난 지가 이미 3년째지만 이 책에 소개된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이미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던 일들이기에 한 편으론 반갑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함께 하는 모든 직업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들이 많다. 특히 힘든 부분은 작고 귀여운 생명체의 탄생만큼이나, - 혹은 그 이상 – 많은 생명체의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비윤리적인 행태와 마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일부일 뿐이지만, 그 일부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때로 전체가 되기도 한다. 지난 사업을 통해 새로운 사업에 매진하고 괜찮은 40대를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입지를 다졌다. 그만큼 사업의 성과가 좋았음에도 생명에게 따라붙는 책임감과 멀리서 바라보는 것조차 불쾌한 비윤리적 행위, 수많은 죽음들은 나를 새로운 사업으로 인도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에 반해 저자는 마땅하지 않은 많은 일들조차 품에 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이 따뜻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한 문제가 아니다. 글 곳곳에 묻어나는 동물에 대한 저자의 마음은 독자로서나 동종 업계의 이전 종사자로서나 존경심을 넘어선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의사나 수의사 같은 생명을 대하는 직업은 돈을 좇기 보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직업윤리, 직업 정신 같은 것이 없이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신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늦은 나이에 새로 공부를 시작하여 삼십 대 중반에 수의대에 입학한 저자를 보고 있으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수의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천직이다.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도 그렇지만 슬픔을 수렴하는 모습에서도 그의 직업윤리를 엿볼 수 있다.

분명히 책 소개라고 했는데, 이 책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꺼낸 것 같다. 김야옹의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는 앞서 내가 말한 것처럼 어둡고 잔인한 내용이 아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일들을 추려 출간한 것이다. 프롤로그엔 이런 말이 있다. “1% 정도 허구적 요소를 가미하였고, 2% 정도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97% 정도는 실제 있었던, 사실에 기반한 글임을 밝힌다.” 동종 업계에 종사 경험이 있는 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 글은 적어도 97% 정도 실제 있었던, 사실에 기반한 글이 분명하다. 그리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책임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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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 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경주의 동네 책방 ‘어서어서’ 이야기
양상규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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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줄여 만든 서점 ‘어서어서’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언급되어 있다. 문득 나는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독서를 시작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일기라는 것을 쓸 줄 모르고, 쓰지 않는다. 만약 일기가 내 인생에 중대한 일들을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면 물론 쓸 의사는 있지만, 어쩐지 어제, 오늘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1인칭 시점의 글로 담아낸다는 것이 낯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숙제로 받은 일기를 써내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반복되자 어머니는 선생님과 상담 시간을 가졌고 당시 책에 관심 많던 나에게 일기 대신 독후감을 써내는 방향으로 숙제를 대신하도록 어머니께서 힘써 주셨다. 어머니 역시 독서가였고 집에는 널린 게 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취미로서의 독서, 그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쓰기 싫은 일기를 쓰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의 줄거리를 줄이고 감상문을 적는 독후감을 매일 쓴다는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들었던 특별활동이 독서반이다. 난생처음으로 시작한 사회활동인 초등학교생활을 그럭저럭 마치고 다시 처음으로 마주한 환경의 변화는 내게 무척이나 낯선 것들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와는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입학하여 그간의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기고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는 일은 꽤나 고된 일이 이었다. 그 무렵 나를 지탱하게 해준 것 역시 독서였다. 독서반에 활동하며 과제로 받은 독후감을 써내고, 특별활동 시간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은 학교생활에 큰 기쁨이었다. 물론 이 기쁨의 절반 이상은 독서반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이라고 해두겠다. 독서에 관련하여 많은 지도를 해주셨는데 특히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작가나, 장르의 책들을 권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된 나의 첫 취미 독서는 인생의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쳤으니, 다만 공부를 하거나 맹목적인 배움을 위하는 일보다 나에게 잘 맞는 취미를 찾는 것은,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다거나 어울리는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요즘이다.

저자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을 통해 힘들어도 하루하루를 꾸준히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했던 대목이 단지 성실히 사업을 해나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저자가 경주의 황리단길에 서점을 내고 그것을 운영하는 모습보다 그가 서점을 창업하기까지의 과정과 계기에 공감했다. 무언가에 빠지게 되는 동기는 대부분 단순하다. 그가 책에 빠지게 된 이유도 그랬다. 학창 시절 독후감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 매번 책의 줄거리에 도움을 받아 독후감을 쓰던 그가 대학 시절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마주한 신축 도서관의 엄청난 위용에 반하여 졸업 전까지 틈만 나면 도서관에 들러 독서를 하게 된 것이 서점 ‘어서어서’ 창업의 계기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랜 한옥을 개축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건물 사이로 보이는 대릉원과 경북 지역 특유의 따스한 햇살은 여전히 황리단길이 인기 관광지로 남은 이유다. 작은 점포에는 대형 서점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고작해야 열 평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문학전문서점’을 내세우며 시, 문학, 에세이, 그리고 인문, 예술 등을 다루는 황리단길의 서점 ‘어서어서’는 그러나 사계절 사람들로 붐비는 핫플이다. 나는 사진 촬영차 종종 황리단길을 가보는데,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우연히 마주한 곳이기도 해서 책을 읽는 내내 서점의 소경이 눈에 그려졌다. 거리에서 직접 마주한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처음의 ‘어서어서’가 저자의 서재이자 중고책 서점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물론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동네의 작은 서점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까지,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문화와 접목하여 체험의 공간이 된 ‘어서어서’ 같은 서점들이 지역 곳곳에 생겨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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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 - 원작 애니메이션과 함께 보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리즈 브라즈웰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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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2. 리즈 브라즈웰 『피터 팬 : 사라진 그림자』 : 라곰

어린 시절에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성인이 된 내 모습을 꿈으로 꾸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땅 네버랜드. 그곳에서 모험을 펼치는 피터와 웬디의 모험을 그린 고전 J.M. 배리의 『피터와 웬디』를 돌이켜보니 어른의 마음에서 쓰인 소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하여 영화로 발표한 디즈니의 『피터 팬』은 고전 명작의 영화화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전 세계에 ‘피터 팬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어른 아이’ 같은 성인이 나타내는 심리적인 증후군인 ‘피터 팬 신드롬’은 물론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중 네버랜드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리즈 브라즈웰의 『피터 팬 : 사라진 그림자』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what if’ 스토리 시리즈로 원작 J.M. 배리의 『피터와 웬디』 및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터 팬』에서 설정을 가져왔지만 스토리는 원작에서 파생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열여섯 살이 된 웬디는 오늘도 피터를 기다린다. 강아지 나나에게 그림자를 빼앗긴 피터가 네버랜드를 향한지도 벌써 4년. 서랍에 보관된 그림자를 꺼내어 보던 웬디는 열여섯이란 나이에 불안감을 느낀지도 모른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나이, 열여섯. 그러나 웬디의 부모님은 아직도 네버랜드에서 펼쳐진 피터와의 모험을 그리워하는 웬디의 망상에 한숨이 난다. 그런 웬디의 망상 때문에 아일랜드로 보내려 하는 부모님의 계획과는 다르게 웬디는 네버랜드 행을 계획한다. 당장에 네버랜드로 숨어들 방법이 없던 웬디는 후크를 찾아가 4년간 고이 보관한 피터의 그림자를 넘겨주고 네버랜드로 향하는데, 어쩐지 모험의 시작부터 고난의 파도가 거세다. 우여곡절 끝에 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는 팅커벨을 만나고 후크에게 그림자를 넘긴 이유로 티격태격하며 피터 팬을 찾아나서며 네버랜드에서의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

2018년 디즈니의 악당들 시리즈인 『사악한 여왕』을 시작으로 『버림받은 마녀』, 『저주받은 야수』, 『말레피센트』, 『가짜 엄마』 그리고 2019년에 선보인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와 『뮬란 새로운 여정』을 거쳐 올해는 『피터 팬 : 사라진 그림자』까지 벌써 디즈니 오리저널 노블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가 라곰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특별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시리즈를 거듭하며 느낀 점은 바로 관점에 대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원작 동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과 교훈과는 다르게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명작 동화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에는 사악하게만 보였던 빌런들이 어른이 되고서 보니 불쌍하게도 느껴지고, 어린 시절에는 영웅처럼 보였던 주인공들이 어른이 되고서 보니 정작 악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단지 캐릭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교훈 역시 예전과는 다르다. 최근 몇 년간 고전 다시 읽기를 도전하며 학창 시절 읽었던 고전들을 접하고, 같은 의미로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시리즈를 읽으며 순수하던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소설을 읽어간다.

소설의 곳곳에 배치된 피터 팬 애니메이션의 스틸컷은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좋은 장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팬이거나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디즈니 팬들에게는 소장용으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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