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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ㅣ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3306. 이해완 『불온한 것들의 미학 : 서가명강13』 : 21세기북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문’의 분류를 보면 다섯 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다. 경영학, 심리학, 법학 등을 포함한 사회과학. 물리학, 수학, 과학 등을 포함한 자연과학. 언어학, 역사학 문학 등을 포함한 인문학. 음악, 미술, 무용 등을 포함한 예술 그리고 마지막 미학이 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인문학, 예술까지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어쩐지 미학이라고 하면 모호한 기운이 느껴진다.
미학이란 미와 예술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문화와 세계를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술적 감성의 자유로움과 철학적 사유의 엄밀함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이 학문의 가장 매력적인 특성이다. 미와 예술, 미적 가치의 본질을 사유하기 위해 철학적 방법론을 주로 사용하지만 역사, 심리학, 사회학적 방법론을 동원하기도 한다. 미학 사상과 이론을 탐구하고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영화, 사진 같은 예술 장르를 비평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바로 미학이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서가명강 시리즈 그 열세 번째는 서울대 미학과 교수 이해완의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다. 지난 서가명강 시리즈 역시 때로 인문서로서, 때로 교양서로서 즐겨 읽었으나 이번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 특히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불온한 것들’에 대한 미학적 시선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려는 것은 위작, 포르노그래피, 농담(그중에서도 도덕적 문제가 있는 질 나쁜 농담), 그리고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로 대표되는 B급 장르의 대중예술인 공포물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저자가 공부해온 철학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다.
이 책에서는 ‘불온한 것들’의 사회문화적 함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주변부로 여겨지던 것들에게도 이제는 지위를 부여하자는 ‘문화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이들을 유별난 것으로 취급해 그들만의 미학이 있다는 듯이 호들갑 떠는 것을 경계하자는 쪽에 더 가깝다. 나는 특히 이 ‘불온한 것들’ 중에서도 포르노그래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문화사에서 바라보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사진을 취미로 하며 몇 번의 전시회 경험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전시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주제로 연작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다섯 명의 작가가 함께 전시를 했고 나는 ‘여성성’을 택해 연작을 선보였다. 전시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는데 특히 내 사진의 경우는 ‘예술과 외설’의 심판대에 올랐다. 나는 포르노그래피 작가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지만 하나의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그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며 위험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예술과 외설이 개념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하니, 예술인데 동시에 포르노그래피라고 하거나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 불가한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학자들이 제안한 것이 ‘포르노그래픽 아트’다. 상식적인 견해에 다르면 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 잔’만큼이나 형용모순이고, 성적으로 선정적인 예술품을 부르는 용어인 ‘에로틱 아트’에 비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예술 철학자들은 성을 재현한 경우 그것이 예술이라면 에로틱 아트, 그렇지 않으면 포르노그래피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불만을 가졌다. 그들은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일 수 없는지를 따져 물었고, 여기서 대두된 용어가 바로 포르노그래픽 아트다.
사진 예술은 르포르타주 즉, 기록에 대한 기능과 미학적 가치가 어우러져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 사진에 대해 탐구한 책은 아니지만 이해완 교수의 예술적 감성의 자유로움과 철학적 사유의 엄밀한 시선을 만나는 일은 나의 사진 생활에 깊은 영감이 되었다. 사진을 담아온 지난 20년간 궁금했던 많은 부분이 『불온한 것들의 미학』으로 해소되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교양서적이나 인문서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학적 관점에 대한 전문서적으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