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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ㅣ 역사 인물 찾기 18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최선봉에 섰던 민족의영웅!
평전을 이렇게 재미있게 흥미진진 박진감 넘치게 읽어보다니..
새벽3시가 다 돼서야 손을 놓을수 있었다.
지은이가 소설가라서 그런지 몰라도 소설을 읽는듯한,특히나 의열단들의 활약상은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지은이은 얘기한다. "이방의 거리와 산골짜기와 강변에서서,거기서 싸운 선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손으로 꼽으며 그들을 기억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들이 역사에서 잊혀진 이름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약산 김원봉뿐만아니라 그와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린채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책을 읽으며 한분한분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읽었다.
일제 치하에서 개인의 영달을 좇으며 얼마든지 편하게 출세하며 살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고등문관시험을 봐서 군수나 판검사로 갈수 있던사람.
은행을 다니며 남들보다 편안한 생활을 할수 있던 사람.
일본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위까지 올라 앞길이 창창하던 김경천장군이나 이청천 장군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편안한길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걸었으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후에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독립운동의 노선이 "외교론"이니 "준비론"이니 하며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흐려지고 있을때 조선민족의 기개를 보여준 의열단의 행동은 실로 장쾌한 것이었으며,의열단원들을 각종 사관학교에 입교시켜 장차 국내진공작전에 선두로서 진격하려 했고 향후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중심에 의열단원들이 있었다.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임시정부의 군사부장을 맡아 소임을 다하던 그에게 해방의소식은
기쁨과 동시에 안타까움이(조선인 스스로의 광복쟁취가 아니라는)있었고.
해방정국에서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잡혀가 빨갱이 두목이라며 수갑이 채워지고 뺨을맞는 수모를 겪는다.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왜놈들과 싸울때도 이런 수모를 당한적이 없어.그런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놈 손에 수갑을 차다니,어찌 이럴수가 있어"
하도 분하고 원통해서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않은채 옛 의열단 동지에게 한 말이다.
해방정국의 남한사회를 최용건의 말을 빌려 보자
"참으로 온 세계가 웃을일 아닙니까? 남조선에서 친일파들이 놀고 있는 꼴 말입니다.왜놈시절에 독립투사를 고문한 고등계 형사 놈들이 경찰 간부가 되어 독립투사를 체포하고,일본군과 만주군 장교를 지낸 자들이 국군인지 국방경비대인지,아무튼 남조선 군대의 주축이 됐다는거 말입니다.해도 해도 너무한것 아닙니까?"
여운형,송진우등 독립투사들이 암살당하고 급기야 김구선생도 우익의 손에 암살당한다.
그뒤에 우리는 만주군장교였던 박정희와 그 일파들이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서슬퍼런 독재체제를 경험하게 된다.
약산도 암살위협에 시달렸고,친일파들의 세상이 돼버린 남을 뒤로 하고 북으로 간다.
북한에서 옛 동지들도 만나고,노동상에도 취임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지만,이념보다는 민족을,분단보다는 민족의 통일을 염원했던 애국지사는 첨예하게 갈라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생을 마감한다.
일제 강점기에 조국독립을 위해 자기희생을 했던 분들에 대해 과연 우리는,제대로 된 대접을 하고 있는가?
사회주의든,무정부주의든,공산주의든 그것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방법이었다면 그들이 무슨주의자라고해서,아님 월북을 했다해서 독립투사로 인정하지 않고 그 후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않는 것은 심히 부당한 일이다.
만약,일제침략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 누가 총칼을 들고 민족을 위해 앞장을 설것인가?
이역만리,만주벌판에서,혹은 폭탄을 들고 뛰어들다 먼저 숨져간 이름없는 독립투사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떳떳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