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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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마도 미국인이었다면 이 작품에 더 열광했을지 모른다. 메릴랜드주 소도시 에지우드에 한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더 좋아했을지 모른다. 80년대 미국 연쇄살인사건들과 '부기맨'과 같은 문화적 배경을 꿰고 있었다면 더 실감나게 와닿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해당되지 않음에도 리처드 치즈마의 [부기맨을 찾아서]는 퍽 재미있게 읽었다.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르포르타주를 빌린 작가 개인적인 성장담이자 독창적으로 재구성된 미국 소도시판 '살인의 추억'이며,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상상력과 리얼리티의 조화는 강렬하고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작은 스티븐 킹이 언급했던 대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처럼, 혹은 로버트 매캐먼의 [소년시대]처럼, 아니면 스티븐 킹 자신의 [그것]처럼 미국 중소도시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하지만 이내 이 사람 냄새 나고 아름다울 것 같던 추억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의 충격처럼, 프로 파일러들의 교본이 된 마크 올세이커와 존 더글라스의 [마인드 헌터]와 마주치듯, 미셸 맥나마라의 집요하고 방대한 추적기 [어둠 속으로 사라진 골든 스테이트 킬러]의 긴장감을 머금은 채 섬뜩하고 조용한 심연 속으로 떨어뜨려 마치 현장 마을에 살고있는 동네 주민이 된 양 놀랄만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독자들을 더 그럴듯하게 속이는 건 각 챕터가 끝난 뒤 실린 스냅 사진들이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연출인지 모르게 교묘하게 세팅된 사진 속 인물들(피해자와 심지어 범인까지도!)과 진짜 에지우드 배경들은 너무나도 실감나고 세밀해서 책을 덮어도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싶은 당혹스런 감정이 남아있다. 이게 미국 얘기라 전혀 실감이 안 난다면, 80년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가져와 당시 화성시에 살았던 20대 초반의 작가가 당시 동네 분위기를 적어놓은 비밀 일기장 같은 느낌이랄까. 리처드 치즈마는 실제 사건과 자신의 진짜 추억을 교묘히 엮어내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허구의 연쇄살인마 '부기맨'의 범죄 논픽션을 완성해냈다. 심지어 결말마저도 너무 현실적이라 진짜인가 싶어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대로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에지우드에 가봤다면, 미국 문화에 더 잘 알았다면 이 놀라운 페이크 다큐같은 즐거움을 더 온전하고도 짜릿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전혀 다른 문화에 속해있음에도 작가의 그 야심은, 그 능청스런 재미는, 그 소중했던 진심 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전달된다. [부기맨을 찾아서]는 모든 범죄 논픽션에 대한 예찬이자, 소중한 추억에 대한 복기이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 더 나아가 그 지역 사회에 대한 애가고,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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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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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무 정보 없이 읽고 싶다면 스킵하시길 바랍니다.




 M.W. 크레이븐의 [퍼핏 쇼]는 2019년 골드 대거상 수상작이다. 골드 대거상은 영국추리작가협회에서 그해 나온 범죄 소설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상이 모든 걸 대변한다고 할 순 없지만, 상을 받음으로서 보장되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저마다 주관이 확실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참신하고 색다르게 배배 꼬인 플롯까지. 이 모든 걸 갖춘 [퍼핏 쇼]는 경력을 시작한 지 별로 안 된 작가가 쓴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야심 있는 추리 소설이자 페이지 터너 스릴러다. 


 징계를 받고 경찰에서 잠시 물러난 행동파 형사 '워싱턴 포'에게 과거 부하였지만 이제는 상관이 된 '스테퍼니 플린'이 찾아온다. 세간에 화제가 된 이멀레이션맨 연쇄 살인사건 세 번째 피해자 몸에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은퇴를 고려하고 있던 좌충우돌 '아싸' 기질의 포는 이 불가사의한 사건과 접하며 다시 현장에 복귀하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는 정반대의 천재(그러나 역시 아싸 기질이 농후한) '틸리 브래드쇼'와 만나며 숨겨져 있던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고대 유적인 환상열석이 펼쳐진 이색적인 공간에서 기괴한 시신들과 마주치며 펼치는 이 미스터리는 끝까지 한방을 놓치지 않으며 단단하게 달려간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독특한 조합의 캐릭터라는 점에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과거 사건과 연관해서는 로렌조 카카테라의 [슬리퍼스]나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를, 경찰의 대응이나 엽기적인 소재 면에선 J.J 매릭의 [기데온과 방화마]나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렇게 다른 성질의 재미들을 한방에 믹스시켜 자신만의 색다른 소설로 완성해낸 작가의 솜씨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특히나 성질 더러운 형사와 사회부적응자 천재 조사관이 서로를 이해해가며 팀을 이뤄가는 케미는 실실 웃음 짓게 만드는데, 세고 어둡고 무거운 사건들을 다소 완화 시키는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옮긴이의 말대로 후더닛(누가 죽였는가?)이나 하우더닛(어떻게 죽였는가?)보다는, 와이더닛(왜 죽였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진 관계로, 범인이 밝혀진 후에도 아직 페이지가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동기에만 주목하지 않고 또 다른 떡밥과 재미를 숨겨놓아 다음 시리즈를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 큰 설계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읽다보면 범인은 생각보다 쉽게 예측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뒤의 세팅은 아마 감히 예상하지도, 예측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범인 또한 주인공 콤비 못지 않게 매력적이고 강렬하다. 대부분 결말이 드러나면 시시해지는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책을 덮은 후에 주인공들보다 더 짙게 잔상이 남는다.


 제목에서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지만(퍼핏 쇼는 꼭두각시 인형극을 가리킨다!), 독자들과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노는 솜씨가 현란하다. 책장을 다 넘기고 난 뒤 당했다는 생각에 분하기는켜녕 아쉽기만 하다. 이 정도면 더 속아줄 수도 있는데… 내심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이 '워싱턴 포' 후속작들도 차례로 2020년과 2021년 골드 대거 후보 예비명단(롱리스트)에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상화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란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다소 생소한 환상열석들이 펼쳐진 공간이며, 여기에 그로테스크하게 산 채로 불태워진 시체들이 발견되는 연쇄살인사건은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진다.


 후속작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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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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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이전시’와 ‘가든’으로 대표되는 두 세력들 간에 오랜 시간 전쟁이 펼쳐진다. 이들은 기존의 역사를 두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시간의 가닥을 엮고 해체하며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한다. 그 선봉에 선 블루와 레드는 여러 작전 속에서 맞부딪치며 각자의 존재에 대해 자연스레 의식하게 되는데, 전장에 같이 선 전우이자 라이벌로서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후일담 같은 메시지를 남기게 된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조소하기 위해, 약 올리듯 주고받았던 전쟁 속 편지들은 어느새 고통을 같이 겪고 외로움을 공유한 인간이자 공통된 유머와 취미, 감정을 가진 동료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진실한 대화의 장이 된다. 시공간을 넘나들고, 최첨단 과학적 방식이 동원되어도, 아이러니하게 이들을 엮는 게 아주 오래 전의 교류 방식인 '서간'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이 공동으로 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매혹적인 어투를 지닌 작품이다. 소설은 이들 간에 왜 싸움이 발생했고, 어떤 전황을 보이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시공간을 오가는 타임슬립도, 육체를 바꾸고 서간의 형태를 조절하는 방식도, 이들이 서로 공작을 펼치는 역사적 사건들도 슬쩍 언급될 뿐,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편지를 주고받는 상황과 편지 그 자체다. 서로를 타겟으로 의식하던 두 적군이 어떻게 교류하고 이해하며 사랑에 빠지는지, 그 과정에 몰두하고, 절절히 묘사하는데 더 공을 들인다. 서사의 미학이 옅여진 대신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한 현란한 수사는 책의 스타일리쉬한 외향처럼 아름답고 황홀하게 눈을 홀린다. 지나간 혹은 다가올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몰래 훔쳐보듯 두근거린다.


 그런데 일면 참 어려운 소설이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 경장편에, 뚜렷해 보이는 전쟁 속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설정, 다양한 시대를 거스르며 여러 방식으로 전해지는 서간체 형식인데 웬만한 대하 서사시 못지 않게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천천히 다시 읽고, 또 문장을 음미하며 내가 뭘 놓쳤는지 되새김해봐도 온전히 이 소설을 이해하기엔 더 많은 시일이 걸릴 것 같다. 두께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압도적인 인용과 문화적 비유, 실제 역사를 품고 있는 시간선의 다양성과 구구절절한 감정을 포괄한 방대한 문학적 야심을 원어민의 언어가 아닌 제3국의 번역으로 체화한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친절한 각주와 해설, 고심한 언어적 선택이 고려되어도, 현재의 시공간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세계로 몰입해가는 복잡한 여정을 따라가는 건 여전히 힘에 부쳤다. 


 그럼에도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 이들이 목숨 걸고 바뀌어가는 시간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을 쟁취하려 했던 것처럼, 독자로서 이 지적인 허영과 유희가 잔뜩 담긴 장르적 재미를 한낱 문장 앞에서 포기할 순 없지 싶었다. 시대적 조류에 앞서 나간다고 할 수 있는 과학소설에서 어찌보면 가장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편지라는 형식을 빌어 사랑을 몰래 주고 받으며 서서히 감화되는 이들의 진지한 교류는 독자들도 매료시키며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시인과 소설가가 함께 만들어낸 아름다운 묘사와 중의적인 표현, 깨알같은 언어유희와 경배는 물론, 퀴어 문학으로서 가치까지도 담아낸 진취적인 색채는 이 소설이 왜 그리 많은 상들을 석권하고, 평단의 호의를 얻었는지 충분히 증명한다. 간략한 스토리를 뛰어넘은 아이디어와 문학적 깊이가 던지는 파고도 상당하다.


 "나에게 너는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부족한 편지야."라는 본문 속 문장처럼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도 수없이 반복해 읽어봐야 할 도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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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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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소설 저변 확대에 지속적인 공을 들이는 황금가지에서 '수상한 서재'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런칭했다. 편집부에 쌓이는 수많은 원고들 중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탄성을 자아내는 창작 작품들만을 선별해서 편집장의 추천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란다. 벌써 소개만으로도 기대감을 증폭시키는데, 첫 작품은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 입상한 김수안의 [암보스]였다. 스페인어로 '양쪽의', '두사람'이라는 뜻이 있던데, 그보다 더 먼저 떠오른 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였다. 뜨거운 소재를 지극히 차가운 어투로 말하는 그 소설들도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두 개의 세상'에 관한 글이었다. 김수안의 [암보스] 역시 방식은 다르지만 이런 인간의 이면에 대해 다룬 소설이다.


 180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인이 죽음의 문턱 앞에서 영혼이 뒤바뀌며 시작하는 판타지 설정에, 연쇄살인 스릴러의 내용을 결합시킨 독특한 설정은 500페이지라는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쉴새 없이 끝을 향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를 계속 묻게 만드는 사건의 진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흡입력도 좋고, 뒤바뀐 삶 속에서 그 인물의 육체에 종속이 되어가는 정신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그럴듯하게 다뤄져 있다. 보통 이런 '바디 체인징' 류의 소설들에서 간과하기 쉬운 지점이기도 한데, 뒤바뀐 삶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음을 지적하는 어둡고 우울한 요소가 이 소설의 매력이자 특징이기도 했다. 여기에 연쇄살인 사건이 결합돼 수사해나가며 인물의 과거와 내면을 서서히 드러내는 서사는 데뷔작임에도 꽤나 능숙한 페이지터너로서 솜씨를 보여준다.


 다만 여기에 시간을 비트는 입체적인 구성과 메타픽션적인 요소 그리고 반전까지 품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시도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가뜩이나 두 인물이 스위칭되는 것도 혼동스러운데,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에 대한 설명과 인물의 복잡한 과거사까지 드러나며 반전으로 이르는 결말은 한번에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는 복잡함을 독자에게 남기기 때문이다. 명쾌한 스릴러나 페이지터너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쉽고 강력하며 깔끔한 한방을 던져주는 것과 달리, 김수안의 [암보스]는 다소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소극적인 결말을 안겨준다. 물론 애초에 제목이 가진 의미처럼 인간이 가진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이를 풀어주는 과정이 이야기를 만들어온 과정과 달리 지극히 짧고 급작스럽게 해결된다는 건 많이 아쉽다.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1인칭과 3인칭이 혼재된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의 해결을 3인칭에서 해석해낸다는 점은 그간 1인칭 캐릭터에 이입해 읽어온 독자의 감성과 기대를 배반한다는 점에서 다소 데우스엑스마키나적인 해결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뒤바뀐 인물에 대한 심리만 담아냈을 뿐 그 본질을 외면한 채 호도한 방식은 조금 반칙스럽기도 했고. 판타지 세팅을 깔았지만 곧바로 현실적인 톤으로 전환해 이야기를 진행시킨 방법도 좋았지만, 결론적으로 다시 그 초현실적인 요소를 묻게 만들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약점이 있다는 점도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욕심 많고 복잡다난한 요소들을 한데 엮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조해낸 작가의 뚝심에는 박수를 보낸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교배하고 진부한 요소들을 합쳐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고민해내는 색다른 스토리텔러들이 필요하다. 김수안의 [암보스]는 그 첫걸음으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빨리 딘 R. 쿤츠나 배리 우드, 조지 D. 슈먼 같은 국내 작가들을 만나게 되길 빌어본다. '수상한 서재'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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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서은채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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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제목이 주는 호기심이 강력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지? 책장을 넘기기 전 간략하게 책 겉면에 적힌 시놉만 보고는 미아키 스가루의 [3일간의 행복]을 떠올렸다. 죽음에 대한 여러 부분들을 감정적으로 건드렸던 점에서 그 어떤 동질감을 느꼈나 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영화인 [천국의 사도]도 살짝. 이승에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고 떠난 아쉬움과 희망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던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혹은 어머니가 열심히 보던 공유와 김고은이 나온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한 부분도 있었다. 저승사자 때문인가. ‘감성 미스터리 판타지 로맨스’라는 다소 복잡한 설명에 의문사당한 여고생의 죽음을 풀어주는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했다. 결론적으론 모두 다 아니었지만. 서은채의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독특한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벌써 결론에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앞둔 소녀와 이미 죽은 소년이 공존하며 버킷리스트를 언급하는 흐름에 도통 정신을 못 차렸다. 뭔가 단서를 알려 줄 거 같으면 다음으로 휙 넘어가버리는 가쁜 호흡의 짧은 단락도, 서로 과거와 감정을 숨기는 두 사람의 엇갈리는 마음도, 작가가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비밀이 풀리는 건 바로 첫 장이 끝난 다음부터다. 엔딩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거꾸로 두 인물에 얽힌 사연들을 주변부의 관계자들을 통해 되짚어 내며 두 사람의 사연을 재구성해 나가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죽음이라는 묵직하면서도 아주 일상적인 이벤트에 대해 특별하게 반추해가며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소중하고 아련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고 아픈 이야기임에도 그렇게 슬프고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이나 죽음이란 무게를 지닌 순간에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고와 위치에 닥치지만, 충분히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설 수 있을 거란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슴을 따스하게 적신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그 시선이 곧고 아름답다. 풋풋하고 단순한 로맨스로만 치장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았다. 물론 아쉽고 가볍다 생각되는 지점도 있다. 다소 전형적이라 할 만큼 평이하게 흘러가는 흐름과 드라마틱한 사건의 부재, 그리고 시점이 바뀌며 반복되는 형식상의 약점은 소설을 조금 밋밋하게 만든다. 당사자 중 하나인데 희완의 아버지 사정과 시점이 빠져있는 것도, 친구인 영현이나 쿨한 아줌마 호경의 사연이 본 이야기와 살짝 거리가 있어 녹아들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조금 더 서브플롯의 정리와 디테일적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빠른 호흡으로 한 번에 읽어버릴 수 있는 매력은 충분하다. 여러 화자의 시점들과 과거를 재구성해가며 두 남녀의 안타깝지만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보며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무섭고 잔혹한 시련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다림의 형별도, 남아있는 자들이 간직한 이별의 아픔도, 이런 시선으로 녹여 간직할 수 있는 치유가 있어 그래도 고맙다. ‘삶이란 게 그렇게 아픈 것만은 아닐 거야’라는 작은 위안과 행복을 안겨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따스한 소설이다. 이렇게나 각박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두런두런 풀어내는 사후 후일담을 읽을 수 있어 만족했다.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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