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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서은채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3월
평점 :
먼저 제목이 주는 호기심이 강력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지? 책장을 넘기기 전 간략하게 책 겉면에 적힌 시놉만 보고는 미아키 스가루의 [3일간의 행복]을 떠올렸다. 죽음에 대한 여러 부분들을 감정적으로 건드렸던 점에서 그 어떤 동질감을 느꼈나 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영화인 [천국의 사도]도 살짝. 이승에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고 떠난 아쉬움과 희망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던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혹은 어머니가 열심히 보던 공유와 김고은이 나온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한 부분도 있었다. 저승사자 때문인가. ‘감성 미스터리 판타지 로맨스’라는 다소 복잡한 설명에 의문사당한 여고생의 죽음을 풀어주는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했다. 결론적으론 모두 다 아니었지만. 서은채의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독특한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벌써 결론에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앞둔 소녀와 이미 죽은 소년이 공존하며 버킷리스트를 언급하는 흐름에 도통 정신을 못 차렸다. 뭔가 단서를 알려 줄 거 같으면 다음으로 휙 넘어가버리는 가쁜 호흡의 짧은 단락도, 서로 과거와 감정을 숨기는 두 사람의 엇갈리는 마음도, 작가가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비밀이 풀리는 건 바로 첫 장이 끝난 다음부터다. 엔딩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거꾸로 두 인물에 얽힌 사연들을 주변부의 관계자들을 통해 되짚어 내며 두 사람의 사연을 재구성해 나가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죽음이라는 묵직하면서도 아주 일상적인 이벤트에 대해 특별하게 반추해가며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소중하고 아련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고 아픈 이야기임에도 그렇게 슬프고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이나 죽음이란 무게를 지닌 순간에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고와 위치에 닥치지만, 충분히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설 수 있을 거란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슴을 따스하게 적신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그 시선이 곧고 아름답다. 풋풋하고 단순한 로맨스로만 치장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았다. 물론 아쉽고 가볍다 생각되는 지점도 있다. 다소 전형적이라 할 만큼 평이하게 흘러가는 흐름과 드라마틱한 사건의 부재, 그리고 시점이 바뀌며 반복되는 형식상의 약점은 소설을 조금 밋밋하게 만든다. 당사자 중 하나인데 희완의 아버지 사정과 시점이 빠져있는 것도, 친구인 영현이나 쿨한 아줌마 호경의 사연이 본 이야기와 살짝 거리가 있어 녹아들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조금 더 서브플롯의 정리와 디테일적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빠른 호흡으로 한 번에 읽어버릴 수 있는 매력은 충분하다. 여러 화자의 시점들과 과거를 재구성해가며 두 남녀의 안타깝지만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보며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무섭고 잔혹한 시련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다림의 형별도, 남아있는 자들이 간직한 이별의 아픔도, 이런 시선으로 녹여 간직할 수 있는 치유가 있어 그래도 고맙다. ‘삶이란 게 그렇게 아픈 것만은 아닐 거야’라는 작은 위안과 행복을 안겨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따스한 소설이다. 이렇게나 각박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두런두런 풀어내는 사후 후일담을 읽을 수 있어 만족했다.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