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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ㅣ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무 정보 없이 읽고 싶다면 스킵하시길 바랍니다.
M.W. 크레이븐의 [퍼핏 쇼]는 2019년 골드 대거상 수상작이다. 골드 대거상은 영국추리작가협회에서 그해 나온 범죄 소설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상이 모든 걸 대변한다고 할 순 없지만, 상을 받음으로서 보장되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저마다 주관이 확실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참신하고 색다르게 배배 꼬인 플롯까지. 이 모든 걸 갖춘 [퍼핏 쇼]는 경력을 시작한 지 별로 안 된 작가가 쓴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야심 있는 추리 소설이자 페이지 터너 스릴러다.
징계를 받고 경찰에서 잠시 물러난 행동파 형사 '워싱턴 포'에게 과거 부하였지만 이제는 상관이 된 '스테퍼니 플린'이 찾아온다. 세간에 화제가 된 이멀레이션맨 연쇄 살인사건 세 번째 피해자 몸에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은퇴를 고려하고 있던 좌충우돌 '아싸' 기질의 포는 이 불가사의한 사건과 접하며 다시 현장에 복귀하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는 정반대의 천재(그러나 역시 아싸 기질이 농후한) '틸리 브래드쇼'와 만나며 숨겨져 있던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고대 유적인 환상열석이 펼쳐진 이색적인 공간에서 기괴한 시신들과 마주치며 펼치는 이 미스터리는 끝까지 한방을 놓치지 않으며 단단하게 달려간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독특한 조합의 캐릭터라는 점에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과거 사건과 연관해서는 로렌조 카카테라의 [슬리퍼스]나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를, 경찰의 대응이나 엽기적인 소재 면에선 J.J 매릭의 [기데온과 방화마]나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렇게 다른 성질의 재미들을 한방에 믹스시켜 자신만의 색다른 소설로 완성해낸 작가의 솜씨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특히나 성질 더러운 형사와 사회부적응자 천재 조사관이 서로를 이해해가며 팀을 이뤄가는 케미는 실실 웃음 짓게 만드는데, 세고 어둡고 무거운 사건들을 다소 완화 시키는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옮긴이의 말대로 후더닛(누가 죽였는가?)이나 하우더닛(어떻게 죽였는가?)보다는, 와이더닛(왜 죽였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진 관계로, 범인이 밝혀진 후에도 아직 페이지가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동기에만 주목하지 않고 또 다른 떡밥과 재미를 숨겨놓아 다음 시리즈를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 큰 설계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읽다보면 범인은 생각보다 쉽게 예측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뒤의 세팅은 아마 감히 예상하지도, 예측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범인 또한 주인공 콤비 못지 않게 매력적이고 강렬하다. 대부분 결말이 드러나면 시시해지는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책을 덮은 후에 주인공들보다 더 짙게 잔상이 남는다.
제목에서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지만(퍼핏 쇼는 꼭두각시 인형극을 가리킨다!), 독자들과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노는 솜씨가 현란하다. 책장을 다 넘기고 난 뒤 당했다는 생각에 분하기는켜녕 아쉽기만 하다. 이 정도면 더 속아줄 수도 있는데… 내심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이 '워싱턴 포' 후속작들도 차례로 2020년과 2021년 골드 대거 후보 예비명단(롱리스트)에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상화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란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다소 생소한 환상열석들이 펼쳐진 공간이며, 여기에 그로테스크하게 산 채로 불태워진 시체들이 발견되는 연쇄살인사건은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진다.
후속작 출간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