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수 있을까 - 77세에 글을 잃어버린 작가 테오도르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지음, 신견식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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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50년 가까이 뒷배를 보아 주던 글쓰기의 뮤즈에게 마침내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77세의 노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워 절필을 결심하지만, 이제 와서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유의 제목을 단 책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이 결국 다시 글 쓸 힘을 얻게 되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라는 이야기인데, 힘을 되찾는 것은 이중의 '귀향'을 통해서이다. 글쓰기를 단념한 저자는 40년 넘게 떠나 있던 그리스의 고향을 찾아가고 그동안 거의 돌아보지 않았던 모어에 다시 눈을 주게 되는데, 그리하여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게 되는데, 이 두 겹 귀향의 기록이 후지기커녕 노작가의 관록을 보여 주듯 꽤 우아하고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다만 거의 예정된 것으로 보이는 결론을 향해 다가갈수록 이 독자의 불안감은 조금씩 커져 가다가 결국 분노로 폭발하는데, 본문의 마지막 문장인 "하지만 마지막 말은 모국어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와, 바로 다음 페이지의 후기 제목인 '50년 만에 그리스어로 처음 쓴 책'을 만나면서이다.

표지의 "ANOTHER LIFE"라는 제목을 보고 '혹시?' 했는데, Copywright이 "Other Press, U.S.A."에 있다는 안내를 보고도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던 것이다.

맙소사, 어떻게 이 책을 영어본 가지고 중역할 생각을 했을까?(영역자는 Marlaine Delargy다.)(* 이 대목은 Other Press가 이 책의 글로벌 판권사라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내린 섣부른 오해이다. 번역은 스웨덴어 판본을 가지고 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출판사에서 단 아래의 댓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내용이 같으니까? 하지만 이건 내용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지 않은가? 책이 나온 후에 거의 호평 일색이던 리뷰들 중에 이 문제를 지적한 글이 왜 한 편도 없었을까?

불안을 분노의 폭발로까지 연결하는 도화선은 마지막 쪽 판권면의 옮긴이 소개 글이다.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비교언어학, 언어문화 접촉, 전문용어 연구 등이며 15개가 넘는 현대 언어 및 해당 언어의 옛 형태까지 번역한다...." 시쳇말로 '어쩔!'이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어 원본 가지고도 번역할 만한 능력이 있는 역자이니, 독자께서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인가?

이 출판사의 대표는 업계에서 뛰어난 편집기획자로 인정받고 있는 터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 문제에 민감(해야)할 터인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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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cross 2019-04-22 1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독자님,
어크로스 출판사입니다.
우선 오해를 만들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말씀 듣고보니 번역자께, 그리고 독자님께 다소 혼란을 드릴 수 있었다 싶네요.

써주신 내용에 대해 바로잡자면,
이 책의 전세계 번역판권은 판권면에 표기해 둔 것처럼
Other Press, U.S.A에 있습니다.
다만 영어권 출판사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저희가 영어판을 저본 삼아 번역했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추측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표지에 영어판 제목을 삽입한 것은 스웨덴어 제목인 Ännu ett liv 보다
Another Life 라는 영어 제목이 국내 독자에게 더 와닿을 거라는 판단에
사용한 것이구요.

이 책은 그리스어로 출간되고 또한 스웨덴어로도 출간됐습니다.
그 이후 영어로도 출간됐습니다. 저희는 스웨덴어 판본을 가지고 번역을 진행했구요. 역자인 신견식 선생님도 최근 스웨덴어 번역 작업을 많이 하셨기에 저희도 특별히 의뢰드린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일러두기에 들어갔으면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겠네요.
그런 아쉬움이 들구요. 다음쇄를 찍게 된다면 우려해주신 부분,
명확히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급편집자 2019-04-23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전세계 번역판권에 관한 부분은 제가 오해했네요.
다만, 그리스어 판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가 부족한 듯해 입맛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