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이 우에니껴? 푸른사상 산문선 2
권서각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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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는 ‘그러니까 어찌하겠습니까?’라는 의미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방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 이보다 더 미묘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그렇다고 한들 다른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뭐 이런 의미가 더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책의 저자 권석창 선생님은 필자가 1983년부터 현재까지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경북 영주라는 시골에 위치한 선영여고에서 함께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안동교대를 나온 그는 고향 인근마을에 있는 ㅂ초등학교 교사시절(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벌판에서)가 당선되었다. 꼭 10년만(1988년)에 '눈물반응'이라는 첫시집을 내었다. 문청시기에 '네사람'이라는 동인으로 활약했었는데 그들 중 나머지 세사람도 문학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선굉, 오승강, 황근식이 그들인데 이중 '둥지'라는 출판사를 하고 있는 분이 교대시절 열렬하게 연애했던 이야기를 여성지에 흘려서 시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보자고 하였다. 도종환의 '접시꽃당신'처럼 뜰 수 있다고 권유했으나 그렇게 많이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만 공개하더라도 사실무근도 아닌데그렇게까지 시집을 팔고 싶진 않아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파도 바보'라는 시 제목을 첫시집의 제목으로 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때 '눈물 반응'이라는 시를 읽었던 필자의 권유로 시집의 제목까지 '눈물 반응'으로 바꾼 적도 있다. 또 17년 뒤인 2005년에 두 번째 시집 '쥐뿔의 노래'를 내었다. 이렇게 작품 활동이 뜸했던 것은 시인이 2년제인 교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학사편입을 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에 석사를 거치고 박사 학위까지 획득하느라고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서 젊은 시절의 뛰어난 시들을 구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에서 훈련된 압축의 힘을 산문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서 시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산문으로 토해놓기 시작했다.  

  그는 지방 신문이나 잡지에 짤막한 칼럼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읽기 쉽고 메시지가 분명한 산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는 그런  칼럼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저 삶의 체험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피가 돌게 함으로써 재미있게 꾸민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 같기도 하고 달리 생각해 보면 고 이문구님의 '관촌수필'에 필적할 만한 연작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순흥 호방골 출신인 순수 촌놈이다. 그의 고향 사랑이 담긴 사투리 이야기나 평생을 평교사로 살아온 삶의 이력이 잔잔하게 묻어난 이야기가 미소를 짓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문청시절부터 글쟁이 들과 어울리면서 수없이 같이했던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또는 지방에서 순수하게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기인(머리카락을 기르거나 수염을 기르는) 들과의 교류에서 소재를 취한 것들이 많아 실제 모델이 필자의 눈에는 보인다. 그래서인지 하루 저녁에 한 권을 다 읽어버릴 만큼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다. 그의 문장은 쉽고 간단 명료하여 전하는 멧시지가 분명하고 그대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여운이 있다. 이러한 산문집의 후속편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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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이 우에니껴? 푸른사상 산문선 2
권서각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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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서 읽어보세요! 책값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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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새우
김광규 지음 / 답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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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돛배 한 척 띄우다

 

-김광규 시집 <환생한 새우>를 읽고-

 



김우출


 


  최근에는 저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시집을 사 본 기억도 희미하고 어쩌다 샀다고 하더라도 한 권을 끝까지 읽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환생한 새우>라는 제목을 붙인 시집 한 권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자이신 김광규 선생님을 조금 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단숨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평소에 시를 쓰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고 평이(平易)한 문체여서 쉽게 읽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느낀 개인적인 첫 감정은 우선 ‘사이비 난해시(似而非 難解詩)’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요즘과 같은 출판물의 홍수 시대에 무작정 쏟아내고 있는 시 같지 않은 시를 담은 시집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요. 한 마디로 지적 허영에 빠진 유한마담들의 시는 ‘치열함’이 없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 가장 먼저 제 눈에 띈 시는 ‘환생한 새우, 게, 반전(反轉)’ 이 세 편이었지요. ‘환생한 새우’ 는 표제작이니 일단 시인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시이기가 쉬운 법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 중에서 내용은 ‘게’, 형식은 ‘반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글이라도 ‘무엇을(내용) 어떻게(형식) 썼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게’는 내용이 ‘반전’은 형식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는 거지요. 시인께 서평이나 리뷰를 올려달라는 메일을 받고 다시 꼼꼼하게 읽었답니다. 시인의 삶이 시 한 편 한 편에 그대로 묻어 있더군요. 저는 제가 본 김광규 시인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욕망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시인은 진솔한 자기 성찰로 일상의 굴욕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는 KBS 뉴스에서 조성훈 기자가 소개한 멘트입니다.

 


  “욕망과 속도가 상징기호로 지배하는 시대이다. 탐욕의 풀무질을 하면서도 한 점 회오조차 같지 않는 시류속에 진솔한 자기성찰로 일상의 굴욕과 모순을 대면하는 것을 보는 것은 종교의 경전만큼이나 고전적으로 느껴진다. 김광규의 시들은, 그가 언제나 자신을 누추하게 만드는 그 모든 삿된 것들을 대면하고 일탈을 꿈꾸나, 그 또한 “하루에 몇 번씩 죽”으면서도 (<다섯 번씩 죽는 조기>) 그 희망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의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못 박힌 고통처럼 일탈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형형한 성찰로 가득차서 자기 정화를 하는 순백의 미학이 느껴진다.

 


  그의 시 <톱니바퀴로 도는 우리들>에서 그는 “송곳니뿐인 섬뜩한 이빨로/서로의 살점을 찌르지 않고(도)/정답게 맞물려 지내는 일상/주인과 노예가 누구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톱니바퀴로 도는 우리들>) 살아가는 굴욕을 말하지만, “문득 내 몸속에는 호두알 속같이 부드러운 내가 없음을 알게 되”고(<분노의 호도>), 지금껏 자신을 찾아 헤맨 길이 “메마른 길”임을 깨닫고, “가로수 울며불며 쓰러지려 하는 바람휘몰아치는 날”에도 “빗길을 가”려하고 “빗길에 서”려 (<진흙길을 가네>)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인의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통을 함께하며 나를 정화할 수밖에 없고, 독자들도 그렇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라는 이경희 씨의 해설입니다.

 


  시인 김광규 씨는 문인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벽지(僻地)나 오지(奧地)라고 할 만한 청정지역 봉화에서 자신의 순수한 감성과 느낌을 건져 올린 것입니다.

 

  제가 시인 김광규 씨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입니다. 몇 명의 교사 들이 부부 동반하여 자비로 뉴질랜드 관광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김광규 시인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인대신에 딸과 딸의 친구를 데리고 함께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그 딸이 지금은 독일에 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호텔에서 흔히 말하는 빠징꼬라고 하는 것을 처음 구경하고 어느 한국 유학생을 만나 10달러씩만 학습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날리고 말았는데 김광규 시인에게 코인이 쏟아졌었지요. 그 때 김 시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해맑은 얼굴로 좋아하면서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지요. 영어 교사인 그는 바로 코인을 돈으로 바꾸고 일행들 전체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는지 맥주 한 캔씩을 돌렸는지 그랬었지요.

 


  그런 그의 표정들이 그의 시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봉화 유곡에 가서 알밤 몇 개를 주워오고도 “쌀독에 쌀이 그득해도/청설모의 겨울나기 양식을 갈취한/ 부끄러운 나의 양심.”(<탐욕>)이라고 했고, 자신의 삶을 “색동옷 입고 외발로 선 채/곁길을 넘보지 않고/한곳에만 맴돌아도/현란한 춤”(<팽이>)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도 (<기차 바퀴의 꿈>)에서는 “무료한 대지를 통과할 때마다/조금씩 흔들리는 지축/졸음에 겨운/궹한 눈의 기관사 앞에/끝없는 직선과 곡선의 강이/무섭게 범람하고 있다-(중략)-결코 교차되지 않는/평행의 길/적막의 레일을 구르며/어지럼증에 걸린 바퀴는/탈선을 꿈꾸고 있다.” 이렇게 탈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목이 메이고(<고구마를 먹으며 목이 메이다>) “아내 몰래 비자금 통장을/고스란히 건네주어도 아깝지 않으리”(<누이가 있으면 좋으련만>)라고 현실에 없는 여동생을 원하는 그 역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생이/차단기 앞에 가로막힌다.”(<세 사람의 건널목>) 1955년생인 그는 나와 동갑내기입니다. 전후세대라 할 수 있는 우리 세대는 그 당시 우리 부모들이 너무 많이 낳았지요. 중학교 입학 때부터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고 다 자란 후에는 승진에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요즘과 같은 88만원 세대의 취업경쟁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는 우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쓸쓸함을 다음 시에서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훈계가 끝이 나면/각자의 방에 돌아가/안으로 문을 잠그는/포플러 나무로 자란 아이들/말참견이 잦은 아내로 인하여/말은 어둔해지고/뱃살 오른 몸은/거실을 박차고 나가지도 못한 채/어정거릴 따름이다/전신 거울에 비친 상반신/굴욕의 무게에 눌려 균형을 잃은 어깨/검은 서까래처럼/분노도 삭는 것일까/빈 집 조금씩 허물어지듯/삶이 무릎으로 내려 앉아/내 키가 점점 작아진다.”(<중년을 위하여1> 전문)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신사복 매장/읽다가 발아래 내려놓은 책은/낡은 표지의/찰스 디킨즈의 영문판 소설/그것은 한평생 버릴 수 없는/너의 지성이다”(<마네킹1>) 마네킹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읽고 있는 시인은 <게>에서 “항상 곁길로 향한다고/옆으로만 빠진다고 빈정대는 당신/한 평생 앞길로만 갔지/아니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물러났지/아픈 사람이 있는 옆으로/다정하게 다가가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게>전문) 하고 자신을 질타(叱咤)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온몸 구석구석/피가 나도록 할퀸/뾰족한 나의 손톱을 싹둑 잘라/한 평생 무디게 살아가렵니다”(<참회>) 이러한 뼈저린 참회 끝에 도덕 교과서와 같은 <타이어 펑크 나지 말라고>와 같은 미숙한 시를 보여주기도 하는 시인은 드디어 <반전>을 노립니다.

 

  “버스 안의 우리는/우리 속에 갇힌/초라한 동물일 뿐/풀밭 위에 동물들은/게으른 자유를 누린다.”(<반전>) 시인은 아직 실직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재택 근무자인양 착각이 들까봐/인터넷 검색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실직>) 와 같은 실직의 아픔을 노래하였고, <강물>을 통해서 “이제는 다시/작은 나무 뿌리로/외로움 흔들며 일렁이다가/흰구름 따라갈/그리움의 돛배 한 척 띄워봅니다.(<강물>)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환생한 새우>라는 시집을 감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옥의티를 가려내 보면 <다섯 번씩 죽는 조기>에서 3행에서 4행 넘어갈 때에 “어부의 거물에 잡혀/ 을 거두고”(<다섯 번씩 죽는 조기>) 목적어가 빠진 것 같네요. 교정볼 때 빠트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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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2009-04-2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연의 4행 <을 거두고>는 < 숨을 거두고 >로 정정합니다.
편집과정에서 세로로 축소 다시 말해서 폭을 좁히는 과정에서 글자 <숨>자가 숨어버렸습니다.
 
시인의 별 - 2000년도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인화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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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이인화는 1966년 대구 출생이다. 그는 이효석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경북대학교 유기룡 교수의 아들 유철균이다. 서울대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이미 고교 시절 '계단문학동인회'라는 동아리 활동으로 문학의 외곽을 다졌으며, 20세를 전후하여 문학 청년으로서의 치열한 습작 시절을 보냈다.

1988년 '문학과 사회'에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양귀자론)'라는 평론을 발표하여 등단했으며, 1992년 그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이름,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까지가 이미 씌어진 다른 작품들의 혼성모방으로 이루어져 표절 시비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장편소설로 <영원한 제국>, <인간의 길>, <초원의 향기>, 평론으로 「한국 문학의 근대성과 유토피아」,「한국 근대 문학 일반 이론 서설」역서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작품 소개

'시인의 별', 주석의 형식을 빈 이 작품에는 '채련기(採蓮記) 주석 일곱 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주석1에는 안 현이라는 시인을 소개하고, 주석2에서는 안 서기를 소개한 후, 정확한 근거 없이 단순한 상상력만으로 두 인물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작가는 1993년에 발표된 작품 <영원한 제국>에서 종래의 역사 소설이 가지는 사담(史談)적 한계를 극복하여 이야기꾼의 자율성과 구성력으로 가장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플롯에 담겨진 역사 소설을 의도했다고 했는데, 이 작품도 당대의 감각으로 재현된 일종의 현대적 전사(前史)로서의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주석3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액자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박연폭포로 유명한 천마산 밑에 추밀원 부사 벼슬을 지낸 박씨 노인이 딸이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끌려갈 것을 두려워하여 시를 좋아하는 안 현이라는 사람을 데릴사위로 맞게 되었다. 친구들의 출세를 보고 마음을 끓이던 안 현은 처가마저 가세가 기울자,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서해 대청도로 나가 일개 수역(水驛)의 역참 관리가 된다. 이곳에서 이아치라는 황자(皇子)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안 현은 이아치에게 처를 빼앗기게 되고 압록강을 건너 황야를 헤매면서 들쥐까지 잡아먹는 고통을 겪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나 이미 그녀는 지다이라는 영주의 아내 아수친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둔영에서 서기 일을 하게 된 안 현은 1년 뒤 지다이가 죽고 난 후,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제의하나 그녀는 한 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잇기 어렵다고 거절한다. 현재의 입장에 충실하겠다는 그녀의 말대로 아수친의 아들 우량카이의 성인식이 치러지고 다시 영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일족들의 기대 때문에 잔치가 벌어진다.

잔치술에 취한 안 현은 악몽을 꾸게 되고 잠에서 깨어나면 아수친을 살해한다. 그는 감옥에서 이 채련기를 남기고 황야에 산 채로 매장된다.

3. 책을 놓으면서

주석4 이아치 대목에서 안 현이 처를 빼앗기는 양상이 백제 개루왕 때, 도미 이야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이 잘되어 단순한 설화라기 보다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이 도미 설화의 역점은 역시 도미 처의 정절에 주어져 있다. 이에 비해 작가는 몽골에 귀화한 고려 출신의 불쌍한 치정범의 이야기에 불과한 채련기를,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채련기의 주석을 상상의 원본에 대한 상상적인 주석 작업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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