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Rosso & Blu 세트 + 2011 다이어리 - 전2권
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의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가장 뜨거웠던 시간들도 인생의 다른 순간들과 마찬가지로 생의 흐름 속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흘러 지나간다. 결국엔 과거 속으로, 기억이라는 형태로 박제되고 점점 희미해진다.

그 열정적이었던 시간들도 현재라는 흐름에 밀려 생의 왼편으로 흘러서 더 이상 손으로 움켜쥐고 있을 수 없게 되면, 열정의 남아있던 온기가 점점 식어가기 마련이다. 사람의 체온이 늘 36.5도를 유지하듯 '현재'라는 일상의 온도 또한 일정한 온기를 유지한다. 하지만 인생이 가장 화려하게 비등하던 시절의 뜨거움을 잊지 못하고 비등점 온도의 기억에 잡혀 살아가면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일상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즉 일상의 체감온도가 비등점과 실온의 온도 차이만큼 뚝 떨어지게 된다. 아주 차가운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냉정의 시간, 현재이되 현재가 아닌 죽은 시간들을 보내는 이들은 준세이처럼 과거를 지키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거나(마치 그가 살던 도시 피렌체, 과거를 지키기 위해 현재를 희생한 도시처럼) 혹은 아오이처럼 과거의 비등하던 시절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온기를 잃은 현재를 살아간다(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주 팔팔 끓어오르는 것이 두려워서 팔팔 끓기 바로 직전, 잔공기방울이 수없이 올라오지만 끓지는 않는 상태에 머무르기를 차라리 선택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비등점 이상의 온도로 끓어오르기를 동경하는 사람이다).


과거의 열정을 각자의 방식대로 품고 현재를 죽은 시간으로 살아가는 두 남녀가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고 해도 과거의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글쎄, 과거를 품어왔다고 해서 현재를 과거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치한 말대로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니까.

과거에 한 번 끓어올랐던 물이라고 해서 더 빨리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아니 과거의 뜨거웠던 시간에 생의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모든 이에게는 냉정에서 열정 사이까지의 온도차만큼이나 아주 정직한 가열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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