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위치를 '딸칵'하고 돌리면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광원인 백열전구로부터 전방위로 찔러들어가는 수용한계치 이상의 빛을 대할 때 겪는 아찔한, 순간적인 눈의 마비 상태. 그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맥없이 당한 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적이면서 강렬한 간이 실명 상태가 나아지기를 무장해제된 상태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그제서야 드러나는, 인간의 시각이라는 감각의 사각지대에 감추어져 있었던 폭력성으로 인해 시각의 부재는 불편함을 넘어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더욱이 백색 실명이라는 상태는, 단지 시력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순수함과 어떤 성스러움까지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색인 '흰색'의 장막이 인간 본성의 추악한 실체와 이기심을 덮고 있어 보이지 않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마치 눈만 가리면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상관없다는 불편한 익명성의 역설(즉, 내가 발가벗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누구도 발가벗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보지 못하므로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된다는 역설적 도덕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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