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 어느 날 아침, 참에서 깨보니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제, 그저께와 전혀 다름없는 아내, 딸, 하루였다. 하지만 휴일에 울리는 자명종, 내 잠옷을 입고 있는 아내, 내가 즐겨쓰던 스킨의 부재, 일상의 이런 사소한 부분들의 변화가 주위 모든 것들을 '가짜'라고 느끼게 한다.


어찌보면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익숙함은 굉장히 치밀하게 우리를 위해 준비된 상황들로 인해 느끼게 되는 주인공적 편안함은 아닐까. 마치 연극무대의 모든 소품들이 주연 배우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듯, 개인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가 개인의 삶을 위해 모두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삶에 조금은 둔감해진다. 반대로 무대 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소품, 합의되지 않은 상대 배우의 변화는 배우를 당혹스럽게 하고, 극 전체에 긴장감을 만든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는 격리된 채 살아가기 때문에,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곧 개인의 세계의 범위가 된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 인식 범위, 그 범위의 외부의 것에 대한 실존적 경고메시지가 바로 '낯설다'는 느낌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2. 아내는 겉모습도 똑같았고, 목소리도 같았다.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감각인 시각과 청각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극히 사소했던 일상의 변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어느 신비로운 감각 기관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냈다.

내가 서있는 무대 위의 변화(내 의지와는 상관없는)는 곧 나의 실존적 위기를 뜻한다. 나의 실존을 유지시키는 어떤 신비로운 감각 기관은 내 삶의 실존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최선을 다해 진짜와 가짜 배우, 소품을 골라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오감이 보내는 자극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K가 기억하지 못하는 금요일 밤 한 시간 반 동안의 시간에는 인간의 오감에 의해 K에게 닿지 못했던 신비로운 감각 기관의 신호가 증폭되는 어떤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낯섦을 느끼지 못했던(평소의 감각으로는 구별해내지 못했던) 주위 것들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의 실존, 즉 나의 존재를 가장 나답게 유지시켜주는 나의 세계(사람, 공간, 시간 등)에서 우리는 만족감, 행복감을 느낀다. 어느 특정한 이성에게서 나의 실존을 유지시킬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내 신비로운 감각 기관은 최선을 다해 메시지를 보낼 것이고, 그것은' 행복'이라는 감정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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