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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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작한 고전 탐독에 어느새 내게도 좋아하는 작품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소위 '취향' 비슷한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서사 속에서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흥미진진한 인물들의 동선을 상상하고 몰래 뒤따라가는 일보다(물론 이런 관음적인 시선도 즐겁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도, 어제와 같은 일을 오늘 또 지루하게 하는 인물을 그려내더라도, 전세계인들의 각각의 독특한 개별성들을 대상으로 그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공통성을 관통하는 바늘같이 날카로운 작가의 안목과 공통성의 조각들을 통해 삶을 다시 재단하는 재봉틀같이 정교한 문장들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 속에서 사고와 사유없이 반복되는 일상적인 순간과 대상들을 픽션화시키면 삶의 가장자리에 있던 무명의 조약돌은 삶의 무대에 출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로 인해 일상은 사건이 되고, 삶의 외연은 확장된다.
분명히 세계 속에 존재하는 60억의 개인들은 60억개의 모든 다른 양상을 띄는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마는,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의 독특한 작품으로 의미화되지 못하고 '일상'이라는 표준으로 마모되어 개성을 잃은 채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그렇게 독특한 모양을 잃은 채 시간의 지층 사이로 화석화되어가는 삶의 일상들을 조심스럽고 아주 정교하게 캐내어 복원시킴으로써 비일상화시키는 작품이다.
그로 인해 내 삶의 일상적인 부분이 비일상화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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