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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48 희랍어시간 - 한강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희랍어 시간이란 소설은 참신한(때론 고개를 갸웃하게 되기도 하는) 비유와 수사로 가득차 있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문장을 좋아하는데 김훈의 현학적인 문장이 주는 맛과는 사뭇다른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소설의 목적은 3가지가 있다.
이 소설은 그중
문장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류의 글일것이다.
작가 한강은 예민하고도 섬세한 비유로 시와 같은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
그리고 희랍어라는 이제는 죽어버린 언어의 조각.
말을 잃어가는 여자의 상실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갈망의 반대급부다. 여자에겐 잃어가는 말처럼 사랑 또한 이미 잃어버린것의 일부이다.
여자는 말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 그녀에게 말은 소리가 아닌 소리의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다. 발화되는 소리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그녀의 지나치게 섬세한 감수성으로 인해 여자는 말을 꺼내 의미를 드러내는 일에 공포를 느낀다. 그녀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단어는 아마 '사랑' 이었을것이나 그녀에게 이미 사랑은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말을 잃어간다.
남자의 상실은 노을같다. 그가 빛을 잃어가는 과정은 천천히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그의 삶도 크고작은 상처를 거치며 천천히 나아간다. 남자는 황혼이 지는 빛의 세계 끝자락에서 이제 다가올 어두운 밤을 담담히 기다린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실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그와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보는것도 듣는것도 아닌 또다른 방법을 인해 여자는 사랑을 찾고 남자는 긴 밤을 함께 보낼 사람을 만난다.
문장의 섬세함으로 인해 글 전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점은 이 소설이 지닌 아이러니다. 이것은 작가 한강의 스토리텔링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개개의 문장을 너무도 아꼈기 때문일수도 있다. 소설이란 투박하게 뭉뚱그린 글의 뭉텅이가 되어야 하는데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지나치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문장에는 감탄하게 되지만 두사람의 사랑에는 시큰둥하게 된다. 마치 한강과 나 사이에 칼이 있었던것처럼.
OCT.2013.
W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