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Essays On Design 9
후지모토 소우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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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향하여' 가 되지는 못한
-르 코르뷔지에와 후지모토 소우의 차이

르 코르뷔지에는 출판이라는 기회를 통해 건축을 향하여 라는 책을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알렸다. 반면 후지모토 소우의 책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에는 르 코르뷔지에 가 보여주었던 영민함이 없다. 이 책은 이상하게 성의가 없다. 이상하게 성의가 없다는 건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이 굉장히 성실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을 해오는 동안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작업을 해왔고 그런 고민들이 현실화되어서 나타난 좋은 작품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소우의 이 책은 성의가 없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전략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향하여' 를 통해 기계시대를 관통할 논리를 제안했다.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고민이 있었고 시대를 앞서나갈 아이디어가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지 를 알고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소우의 이 책은 그 두가지가 부재하다. 단순히 자신이 해왔던 작품들의 description 들을 묶어서 책으로 출판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각각의 article 마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반복되고(아마도 소우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해왔던 사항들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두서없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만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라면  후지모토 소우가 '관계성' 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자신의 건축 작업을 지속해왔음을 알 수  있기에 아쉬움은 더 커진다.
소우는  조금 더 영악해질 필요성이 있었다고 본다. 출판이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그냥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과정에 자신이 생각했던 생각들을 두서 없이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관계성' 이라는 측면을 파고들어봤으면 어땠을까? 그가 말했듯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향한 중요한 지침이 된다고 보았다면 응당 이 책의 제목은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이 아니라 '관계성의 건축' 혹은 '사이의 건축' 따위의 것들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책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접할때마다 그 아쉬움은 깊어진다. 어쩌면 소우는 자신을 드러내는데 미숙한 건축가가 아닐까?


'관계성' - 새로운 시대성
- 후지모토 소우가 선점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논리

소우의 건축은 '관계' 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건축의 무게 중심을 물질화되어 지어지는 '건물' 에서 건물을 경험하는 '사람' 으로 옮길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후지모토 소우가 얘기하는 자신의 건축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책이 일리야 프리고진 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임을 미뤄볼때 관계성이 소우의 주된 테마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관계성을 주제로 삼은 소우의 상황 파악은 재빨랐고 현명했다. 현대 건축에서 주되게 등장하는 단어들인 '행위', '움직임', 'interactive' 같은 단어들은 모두가 다 대상과 유저, 혹은 유저와 유저 사이의 '관계' 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단어들이 근본적인 느낌을 갖지 못하고 피상적인 깊이를 가진 단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반면에 '관계성' 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시대의 핵심에 근접해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러한 소우의 관계성의 건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T 하우스다. 한붓그리기로 그려진, 단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이 주택에서 유저는 자신의 서있는 위치와 건축공간과의 관계성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공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성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바로 '거리감' 이다.

거리라는 것은 둘 이상의 공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립된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거 사이에 무수한 조화가 실현된다. '약간 떨어져 있고 시야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의식은 독립되어 있다' 는 식으로 관계성의 무수한 조화가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거주자는 다양한 거리를 선택해 자신의 거처를 선택한다. - 66p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건축물을 만든다기보다는 장소를 만드는 것, 혹은 가능성의 지형을 만드는 것이다. 즉 건축물 속에서 다양한 거리감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형을 만드는 것이다. - 68p

소우의 T 하우스는 Public 과 Privacy 로 구성되는 일련의 건축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다. 공간은 애매모호함으로 존재하고 사용되는 사람의 거리감에 의해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사이를 넘나든다. 관계성에 의해 정의되고 변화한다. 건축은 가능성의 장소이면 된다. 건축이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 무엇이 될지는 관계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소우의 논의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것은 소우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기존의 건축가들이 주장했던 주장들을 변주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Louis.Kahn의 '방' 개념을 비튼 '거처' 라는 개념 등은 속편히 무임승차 하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 - 각자의 건축을 한다는 것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우리 건축 사무소에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일거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예전의 르코르뷔지에 에게 내 상황을 투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때야말로 다음 세대를 예감하게 하는 원형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해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 199p 


이 책을 읽고 가장 위안을 받은 부분이 바로 이 문장이었다. 각자의 건축을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겠지만 그 순간을 알뜰하게 아껴서 쓰는 사람에게만 각자의 건축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 30대를 시작하는, 그리고 스스로의 건축을 시작하고 싶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MAR.2013
W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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