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12월의 단어로 이것보다 적합한것이 있었을까?
상당했던 투표율, 주변에서 느껴지던 열기.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질수없는 순간이었고 사소한 반응들까지도 질리가 없다고 믿게 만든 선거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왜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설득되지 않는가?_아버지와 나는 적이 아니다.
지난 선거에서 난 나만의 작은 싸움을 시작했다. 대상은 나의 아버지.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제대의 흔한 보수적인 한국 남자다.
이번 선거를 나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공약들을 비교했고 그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그렇게 얻은 데이터 위에 우리 가족의 현황을 적용했다.
그 다음에는, 철저히 '이익' 의 차원으로 접근했다. 감성적인 문구보다 실질적인 숫자에 흔들리는 것이 한국 아니던가. 그런 숫자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하지만 아쉽게도 문재인은 이 부분이 부족했다.)
모든 것을 종합한 이성적인 결론으로 나는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리고 시작도 해보기 전 결과는 이미 이 책에 적혀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가난한 계층 또는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해서 투표하는 것을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인 포퓰리스트들은 별로 똑똑하지 않고 무지하며 부유한 보수주의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를 치유하는 길은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자유주의자들은 생각한다.
정말로 올바른 정보를 얻어서 그들에게 문제의 경제적 진실을 이해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경제적 포퓰리스트가 되어 진보주의자에게 투표할 것이다. 이것은 공허한 꿈이다. - 103p
이 책에 따르면 나는 공허한 꿈을 꾸고 있었다.(물론 우리 아버지는 선거일에 인접해서 지지후보를 바꿨다. 비록 어머니의 '감성적 설득'에 넘어간것이지만) 이해는 곧 투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이번 선거의 핵심이 있다. 이에 대해서 책에선 이렇게 말한다.
보수적 포퓰리스트들은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과 이에 근거한..... 그들은 정치에 대해 전체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직접적 인과관계로 사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은 보수적 포퓰리스트들이 보수적인 선전기구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억압-융통성없는 엘리트의 억압!- 을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시를 먹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돈을 세금확대 진보주의자들이 훔쳐가고있으며.... - 104p
그렇다! 편파적으로 기울어진 언론의 문제점은 뉴스 하나하나의 왜곡 보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산해내는 뉴스가 교묘하게 진보를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보수의 교묘한 프레임 앞에 우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강화시킨 것이 우리 안의 불친절함 이라는 점이었다. 상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낮춰서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오만했고 건방졌다. 그런 태도로 인해 우리의 의도는 오해받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것은 보수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보수 언론들은 교묘하게 진보를 적으로 설정했고 그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키워드로 '해방' 이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보수적 포퓰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염원을 특징짓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낱말은 '해방'이다. 이 낱말은 정치적,문화적 엘리트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경제적 복지에 대한 합리적 호소로는 결코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할것이다. -104p
보수의 교묘함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진보를 적으로 설정해 놓았으니 이젠 영웅이 등장하면 되는것. 그렇게 보수는 진보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영웅처럼 우리 사회에 등장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보수는 자신을 마치 지금의 한국을 만든 아버지인것처럼 꾸미고 그러한 위장으로 인해 한국에서 보수의 위기를 접할때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것과 동일시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로 인해 보수는 또 한번의 표를 챙기고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들은 다시 한번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
이 메커니즘을 알아야만 보수를 이길 방법을 알 수 있다. 논리적 설명과 상황에 대한 이성적 접근으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먼저 근본이 되는 부분을 바로 잡아야한다. 그것은 바로 진보를 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프레임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진실을 납득시켜라. 자신들이 보수주의자들의 억압을 받고 있으며, 자신들이 사랑하는 땅을 보수주의자들이 파괴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놉적인 기독교가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의 심한 공격을 받고 있으며, '자신들의 몸과 가정의 근간이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켜라.' - 105p
여기에서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보수가 말하는 감언이설의 허구를 꼬집고 어느틈에 그들의 편에 서버린 우리의 아버지들을 돌려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적을 제대로 설정해주고 타겟팅을 다시 해야한다. 왜 모두가 밥 굶지 않고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 각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되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먼저, 자유시장의 신화를 종결하라;
한국에서 유독 잘 먹히는 키워드하면 '경제'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지난 5년간 우리가 겪은 전임 대통령을 통해서 충분히 느낀 바 있다. 이명박은 경제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자신하던 경제 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린 자유시장의 신화를 종결해야 한다.
'자유시장'은 시장이 공익을 위해 계속 작동하도록 해주는 본질적인 규칙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슬로건이다. 이제 '자유시장'의 신화를 끝낼때가 되었다. - 115p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잘 먹고 잘 사는게 우선 아니냐.
의 논리는 박근혜시대 5년간도 되풀이 될 문구다. 우리 사회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시장의 신화를 끝내야 한다. 그와 함께 극복해야 되는 키워드가 바로 '성장' 이다.
보수는 항상 끈임없는 성장을 강조하면서 '성장의 걸림돌' 이 된다는 논리로 자신들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한다. '성장'은 보수가 가진 전가의 보도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더이상 양적 성장을 하는것 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이른지 오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팽창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구조적 불균형, 절차적 불공정 등 수많은 시스템적인 문제가 더이상의 발전을 저하한다. 재벌의 문제도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으로 해석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선 '성장' 의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아마도 이는 자유시장의 신화를 종결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초점이 단순한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 상승에 눈을 돌리게 되었을때 진보와 보수의 역사는 새로운 변곡점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같이 사는 삶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
성장의 논리는 명쾌하다. '노력한만큼 가진다' 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누구나 더 많이 가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성장중심의 자유경제가 주는 허구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사실 아무도 노력한만큼 가진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노력한 것보다는 많이 갖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이 나라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이 더 큰 성공을 거둘수록 공공 재원을 더 많이 사용했으며, 공공 재원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125p
성공은 혼자의 힘으로 된것이 아니다. 성공을 하기까지 우리가 이용한 수많은 것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런것들을 통해 목적을 이뤄낸다. 우리를 성공하게 도와주는 기반과 사회에 대한 기여는 필요하다. 자유경제의 철저한 경쟁위주의 사회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뿐인 독립된 개인으로 착각하지만,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무엇의 도움을 받지않고 살수는 없다. 성장은 나를 위한 프레임이다. 성장하는 사회속에서 내가 얼만큼을 가져가느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같이 사는 삶에 대한 프레임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나를 위함에 그치지 않고 '나는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또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나를 도와준 이 사회가 조금은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고 하는 생각의 연장이다.
같이 사는 삶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이 제시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하게 된다면 진보가 나아갈 길은 수월해질 수 있다. 그것이 곧 프레임 전쟁의 핵심이다. 진보적 사고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저변을 만들어 내는것 말이다.
진보는 약지 못하다? 약삭빠른 진보되기
하지만 진보는 약지 못하다. 그것은 진보가 대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데서 비롯된다. 진보의 사고는 지나치게 합리적이다.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대개의 진보가 가진 약점이다. 보수의 거짓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그들은 이해하기 쉬운 숫자와 사람들의 삶에 근거한 단어들을 토대로 설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의 말은 어렵다.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것이 너무 많다. 진보가 저지르고 있는 문제는 몇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상세목록의 덫' 에 빠져 제한된 정책의안을 선택하고 이슈에 따라 행동하며, 수많은 구체적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러한 프로그램 중 어느 것도 우리의 가치를 부각하지 못한다-또한 우리의 가치를 장려한다고 분명히 명시하지도 않는다.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광범위한 귀결을 가져오는 다국면 전략 의안이 전혀 없다. -164p
이러한 그룹들이 내놓은 이슈와 프로그램은 정말로 중요하지만, 단독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 164p
이 책에서는 말한다. 진보는 늘 큰 그림을 이끌어갈만한 강한 슬로건을 내걸지 못하며, 하나로 힘을 모으지못하고 각자가 자기소리를 내는데 바쁘다. 늘 진보는 약지 못하다. 대개의 진보는 각자의 명확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진보는 다 나름의 설득 가능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잘났고 서로의 말이 맞다. 진보는 자기 잘난맛에 살기 때문에 하나 되질 못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약삭빠른 진보가 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적인 이 의안들을 내놓기 위해 입법 조치들의 목록을 처방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의안들이 어떻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어떻게 진보주의 가치들으 장려할 수도 있는지, 어떻게 진보주의자 들에게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운동을 펼칠 기회를 제공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의안들을 논의한다. - 165p
그러기위해 우린 먼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 중요한건 진보적 가치체계가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게 만드는것이다. 세세한 정책, 각각의 목적들이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먼저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진보의 가치체계가 사람들의 상식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전략적 사고를 시작할 때이다. 가장 효율적이며 장기적인 전략은 식사나 출근, 회사 근무 등 가장 흔한 활동과 함께 시작된다. 가정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거기에서 시작하라. - 180p
시작은 작은 곳에서부터. 변화는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약삭빠른 진보가 되기 위해선 이러한 시작이 필요하다.
또 다른 패배를 겪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우리를 위해
지난 12월 우리는 과거가 다시금 미래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좌절은 깊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살아진다. 수많은 프레임들이 오늘도 나왔다가 사라졌다. 셀 수도 없는 이슈들이 하루의 순간순간을 장악하지만 내일이 되면 잊혀진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슈들을 통해 오늘도 수많은 중요한 사항들이 수면아래로 묻힌다. 그렇게 우리는 자극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우리가 수많은 자극적인 이슈들에 마비되어 가는 사이를 통해 보수세력들은 교묘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우리는 더 약삭빨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좀 더 크게 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패배를 겪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우리를 위해.
MAR.2013.
w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