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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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스러움에 대하여

단편의 재미는 명료함에 있다. 몇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동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말하려고 했던 이야기의 재미가 동시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편읽기는 빠르게 이야기들을 스쳐지나가는 맛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그건 고속도로를 지나는것과 같은 감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그 결말을 향해 빠르게 치닫는 느낌. 국도를 따라 갈때처럼 삶의 이런저런 흔적들을 살피며 목적지를 향해 갈 수는 없지만 지극히 목적에 충실한 이야기들. 난 단편을 볼때 그런것들을 기대한다.
김연수의 단편은 적어도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재미는 뒤로 하고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적어도 운수좋은날 과 같은류의 명확한 교훈과 결말은 없었다.) 사실 나는 김연수의 최근작부터 시간을 거슬러 김연수의 작품을 읽고 있는 중이라 '김연수스러움'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꿰뚫는 일관성을 통해 작가 김연수를 만날 수 는 있었다.


끝나버린 세계


단편집의 전체를 꿰뚫는 사건은 바로 끝나버린, 혹은 끝나가고 있는 세계다. 하나의 세계가 끝나버렸을때 비로소 우린 또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 비참하고도 슬픈 시간을 지나 좀 더 밝은 곳으로 나가기 위해 우린 그렇게 하나의 껍질을 또 깨뜨려야 한다. 마치 데미안의 알처럼...

그것에 대해 작가는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게 지겨워서 자살했을꺼야. - 68p '세계의 끝 여자친구'

란 말을 통해 세계의 끝에 선 인간의 좌절감을 말하거나

삶은 단 한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 170p '내겐 휴가가 필요해'

운명론적인 체념을 하는듯하다. 하지만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228p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 224p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이라는 글을 통해 이내 이렇게 세상의 끝에서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내고야 만다. 삶이란 것이 가진,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완결성 앞에서 우리가 매순간 실수를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 이유란 바로, 삶이란 줄맞춰서 적혀져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흔적위에 몇번을 덧씌워 그려지는 그림과도 같다는 것. 한번의 실수가 몇년의 삶의 기억들을 통해 덮여지기도 하고 마지막 붓을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무슨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가 끝나버린 그 앞에서도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비록 이미 끝나버린 세계임에도 우리가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차마 같이 도망가자는 말은 못 하고, 둘이서 가장 멀리까지 가본 게 그 메타세쿼이아까지라던데, 그럼 고작 저기 호수 건너편까지 가본 게 다 잖아. 그래놓고서는 어떻게 세계의 끝이라고 말할까... -78p '세계의 끝 여자친구'

라는 김연수의 말처럼 그 세계의 끝이 고작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본곳, 내가 상상한곳, 세계는 딱 그만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종말은 자기성의 종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한 세계가 끝날때 그렇게 그 너머의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희망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우리가 내일의 행운을 기대하면서 매주 로또를 사듯이, 인생이란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길 김연수는 하고 있다.



,그리고 변해버린 시간들, 그것에 대한 노력


하지만 끝에서 만난건 새로운 희망만이 아니다. 하나가 끝나면 무엇인가가 변하고 만다. 마치 나의 바깥에서 불꽃이 타오를 때, 내 안에서도 불꽃이 타올랐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것처럼 - 316p 작가의 말  세계가 변할 때,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내 안의 무언가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의 '앎'이 불완전 하기 때문 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 81p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는 이 넘을 수 없는 이해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의 '앎'은 언제나 반밖에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알기에도 버겁다. 서로 각자를 알아가기에도 버둥대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하는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건널수 없는 소통의 강 양끝에서 서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변해간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316p 작가의 말

김연수가 말하는건 이해할수 없음에 대한 절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변해버린 무언가에 대한 노력. 우린 서로 다름을 알기에, 우린 이해할 수 없음을 알기에 서로에게 다가가려 하는 노력을 한다. 각자가 맞이한 세계의 끝에 서서 우린 서로에게 들리지 않을 소리를 지른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이 곧 사랑일지도 모른다.



기억되는 것에 대하여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은

인간에게 망각은 불완전한 기능입니다. 완전히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인간은 불완전해졌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것을 망각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가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했던 것들은 결국 그가 찍지 않은 것이 아닐까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 181p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기억되는들 그리고 남겨두는것들. 어쩌면 우린 쉽게 잊어버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건지도 모른다. 기억은 머리속에 저장되어 남지만 우리가 남기는 무엇은, 기억되지 못한, 기억되지 못할 무엇이기도 하다. 사진을 남겼다는 안도감으로 우린 꼭 기억해야할것 마저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책을 덮으며,


사실 책을 다 읽고나서 기억나는 이야기가 딱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건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문제일수도, 이야기가 가진 매력의 문제일수도 있다. 이 책에서 김연수는 지나치게 모호하고 또한 조금은 현학적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쉽게 다가오지않고 짧은 글 속에서도 흐름을 놓쳐 앞으로 뒤적거린적이 많았다.

단편작가로써의 김연수는 내게 큰 매력을 주지는 못했다. 그의 감성은 긴 호흡 곳곳에 배치된 아름다운 문장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나쁘진 않았지만 아쉽게도 두번잡을 책은 아니다 싶다.

하지만 맘에 들었던 한 문장,

우리 둘 사이에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 이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하나도 없는, 참으로 무해한 공간이었다. - 235p '달로 간 코미디언'

사랑은 온기로 표현한 말이 참 이뻤다.



FEB.2013.
W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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