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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3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 책을 사게된건 제목이 반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표지를 넘기자 적힌 이 글귀에 왠지 모르게 나는 이 책을 사야만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의 감성의 끝 언저리 어디에선가 김연수 의 문장이 적혀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안 어딘가에 적혀있었던 말처럼 난 저 말이 맘에 들었다.
이야기가 아닌 문장의 힘;
입양, 엄마, 비밀 또 비밀. 얼마나 많은 드라마에서 얼마나 많은 입양아들이 엄마란 단어에 그리워하고 숨겨진 비밀에 상처받았을까. 책의 이야기는 진부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색다름이 아니라 섬세한 문장들에서 빛을 발한다. 김연수의 문장은 하나하나 글속의 감정을 온전히 담았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진부할 뻔했던 이야기는 뒤가 궁금해진다. 빤해보이는 비밀이 뭔지 궁금해진다. 이건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 문장의 힘이다.
진실은 언제나 잔인하다. 그럼에도 진실을 원함은;
가면뒤의 얼굴이 자신들의 기대와 같길 바라며(대개 그 기대는 지나치게 희망적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마치 배고픈 아이처럼 진실을 보챈다. 호기심으로 들추어 보기엔 진실은 언제나 가혹하지만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언젠간 그 앞에 서야한다. '그래도 세상이 따뜻하다는 증거' 는 이 글안에서 비밀로 통하는 첫 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비밀의 문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그 문을 열었을때 다가올 결과에 대해선 생각 하지못한다. 마치 거기서 불어닥칠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마냥, 우리는 너무도 쉽게 비밀의 가면을 들추어 내곤 한다. 때론, 아니 대개 운명의 신은 잔인하다.
그러나 우린 도망갈순 없다. 먼길을 돌아가더라도 우린 언젠간 진실의 맨얼굴과 마주하지않을수 없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지 않으면 항상 뒤돌아보게 된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 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 148p
과거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시작한다. 카밀라의 인생 또한 다르지않다. 카밀라가 희재가 되는 순간, 온전히 과거와 화해하는 순간. 떨어진채로 20여년를 오롯이 살아온 두 존재는 둘사이에 놓인 심연을 넘어 화해한다.
심연, 넘을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날개;
김연수는 이 소설에서 심연을 말한다. 심연이란 소통의 부재다. 이해하려하는 노력의 부족, 그로 인한 엇갈림. 비극은 늘 사소한것에서 시작한다. 지은을 둘러싼 수많은 상황들은 정지은이라는 인간을 이해할 시간도 기회도 주지않고 멀찍이 떨어져 버린다. 건너갈 수 없는,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의 심연 앞에서 지은은 말한다.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278p
라고. 희재는 2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지은과 세상을 화해시킨다. 그렇게 날개는 심연을 넘어선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 생각이 났다. 물론 두 책은 주제도 다르고 주인공도 다르다. 하지만 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을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 를 떠올린다. 어찌할 수 없는 고독, 고독을 대하는 작가의 담담한 자세가 아마도 그렇게 느끼게 한것이 아닐까 하고 혼자 추측해본다.
우린 살면서 어쩔수 없이 외롭다. 어쩌면 외로워지지않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도 전화기 끝에 매달려 있는게 아닐까?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으로 우리는 우리의 고독을 지운다. 하지만 카밀라는 다르다. 과거의 자신과 맞닥뜨렸을때, 진실이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냈을때 카밀라는 망설임없이 유이치를 밀어내면서 희재가 되기로 정한다. 그런 모습에서 난 '상실의 시대' 의 주인공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사실 싱겁다면 싱거운 소설일수도 있다.
비밀은 색다르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 또한 예측가능하다고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김연수의 문장만은 빛난다.
누구나 코끼리를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코끼리를 살아숨쉬는것처럼 만드는건 그 사람의 말'재주' 가 아닐까.
재밌었다.
JAN.2013.
w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