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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낱의 사람을 만나기란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 배우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회사를 '우리'라는 대명사로 칭하거나, 자신의 근황을 알린다고 해놓고 자식의 성장을 중계하는 이들은 이쯤이면 됐다. 내가 재생목록에 추가한 노래, 내가 밑줄그은 문장, 날 식겁하게 한 장면, 내가 요새 잡고 싶은데 못 잡고 있는 홀더, 내가 연습하고 있는 곡, 내가 지은 밥의 맛, 내가 맡은 비 냄새에 대해 조금은 길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나 좀 더 보고 살기로 하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올바른 얘기 혹은 어디선가 주입당한 티가 물씬한 그럴듯한 의견을 들려주는 사람도 지루하니 일단 어디로 좀 치워두기로 한다. 프레시안이나 한겨레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투박한 정견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입을 통해 그것이 궤변만은 아님을 최대한 흥미롭게 전달할 줄 아는 개인을 좀 찾아보는 거다. '선생님, 선생님' 잘하는 사람이나 어떤 경계 안쪽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치들은 사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온전히 자기 목소리를 통해 나온 소박한 무엇을 정념없이 내보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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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남은 자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고 있으려니까 한때는 오래도록 남은 자의 윤택함을 쉬운 길을 택한 결과라고 생각했던, 되먹지 않은 시절 지녔던 편견이 떠올라 말도 안 되게 부끄러워지고 만다. 무대를 보고 있노라니 생기는 감흥이 죄다 비현실적이었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이 어느샌가 사악 스미는데, 내 요 근래 언제 또 이런 온기를 느껴봤나 싶었으니 말이다. 비록 듣고 싶었던 몇 곡을 안 들려줬다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eight days a week도 lady madonna도 live and let die도 들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겠는가. 


이십 년쯤 들어온 음악을 라이브로 듣고나서 생각해보니 이십년 가까이 읽어온 책은 없다.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지만, 책 없이는 살 수 있다. 그것도 얼마든지. 그런데 음악 없이는 아마 사는 게 훨씬 짐스러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짐작하는 바 이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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