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때였나 고3때였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 하나가 말했다. "야, 본 조비 진짜 좋지 않냐?"
나는 "뭐 별로."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표정은 '동감하지 못해'보다는 '너 좀 어이없다'에 가깝게 지었을 것이고.
그런데 나야말로 당시 얼마나 어이없는 인간이었던가. '본 조비는 무슨. 에어로스미스 정도나 되면 몰라도'라는 말을 턱밑으로 삼키며 하교했던 나는, 사실 'Bad Medicine'이었는지 'Livin' on a Prayer'였는지를 들으면서 몸을 한껏 들썩이던 인간이었다. '좋구나, 아 좋구나' 절감하면서, 방구석에서는 젖비린내 물씬한 내 자신의 이중성을 마음놓고 증명했던 것이다.
그럼 한때는 본 조비가 좋다고 느끼질 못했느냐. 그럴 리가 있겠는가. 본 조비 음악은 원래 좋았다. 그저 본 조비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존재였을 뿐이다. 이른바 쭈구리로서의 삶을 살되 음악 얘기만은 꽤나 길게 할 수 있는 고등학생의 입을 통해 선호대상으로 밝혀지기는 어려운 존재였달까.
그 시절 그토록 코믹한 허세는 대체 어떤 과목 선생이 주입했던 것일까 하고 궁금해하지는 않겠다. 정작 교과서 지식의 주입은 거세게 거부해놓은 주제에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은 너무도 비양심적인 자세일 테니. 그러나 누구의 탓으로라도 좀 돌리고 싶을 정도로 그때의 기억은 민망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왜 나는 본 조비가 좋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말하자면 왜 나는 좋게 들리고 좋게 보이는 걸 좋아한다고 말 못했을까. 왜 즉각 와닿는 것들에 즉각 빠지지는 못했을까. 왜 뭔가 있어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내다버리지 못했을까. 남들이 좋다는 걸 나도 더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남들이 뭐라든 내 눈엔 너 좀 죽인다는 말을 왜 그렇게 아꼈을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아서 좋다는 말은 왜 못했을까. 대체 뭘 그렇게 살피고 눈치 보고 더 생각하려 했을까.
뭣 때문이었든 그랬던 시절로는 다시 갈 수 있다 해도 온몸으로 극구 사양하겠다. 도무지 모양이라곤 안 살아서 도저히 못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