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별로 즐기지 않았었다. 12월에 어느 번화가를 걷다가 징글벨, 렛잇스노우,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등 유명한 캐롤이 들려와도 볼륨이 좀 크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았다. 왠지 그 노래들은 신남, 들뜸, 로맨틱함을 조금은 강압적으로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우선 들었고 그 느낌이 별로였다. 또 어김없이 한 해를 흘려보낸다는 감정에 먼저 휩싸여서 즐겁기보단 서글퍼졌다. 고작 스물몇 살 때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던 시절에도 예외는 있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첫 소절만 들어도 곧바로 두근거렸다. 영국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라스트보다는 래스트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으로 들리는 노랫말 시작부분도, 실로폰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종소리 비슷하기도 한 간주도, 약간은 느끼한 '메리크리스마스' 하는 속삭임도 다 좋았다. 들을 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했다. 어쩌면 어느 정도는 학습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릴 때 케이비에스에서 하던 쇼비디오자키 같은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걸 보고 어린 마음에 영상과 출연자들이 예쁘다고 느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좀 더 자라서는 가사를 찾아봤고 이 노래가 우와 크리스마스다, 라는 식으로 마냥 즐거워하는 내용이 아님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사실은 아무 이유 없이 끌렸던 게 아니었다.

 

요새는 이 노래보다는 머라이어 캐리 노래가 훨씬 많이 들린다. 올아이원트... 그 노래가 확실히 사람 마음을 더 빠르게 위로 띄우는 힘은 있는 것 같다. 인정. 그래도 여전히 나는 라스트 크리스마스 쪽이다. 적당히 들뜨게 하는 쪽, 적당히 사랑스럽고 적당히 꼬여 있기도 한 쪽에 어쩔 수 없이 더 기우는 천성 탓인가.

 

그런데 아직도 이 노래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들도 예전보다 더 예쁘게 들리고 볼륨도 과하다 여기지 않는다. 청력 감퇴 때문만은 아니겠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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