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남에게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인간을 나는 주저없이 '무례한 놈'이라 부르겠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무례이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꺼리는 마음에서 남의 장점을 인정해주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도 똑같이 약하다는 사실을 억지로 증명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추악하더라도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인정해주고 또 사랑해주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라. 인생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다.

어떤 인간이라도 그 참모습은 결코 사랑받지 못할 존재이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아무리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소녀라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엿본다면 더 이상 그 소녀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게 하여 무정의 상을 깨닫게 한다는 불교의 수행 방법도 이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고백하지 말지어다', 254~255)


Q. 소설가는 모두 인생 경험이 풍부하잖아요. 그러니까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인생의 지표를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 즉 조언자로서 존경해요.

A. 당신도 참 바보로군요. 왜 남한테 자기 인생의 지표를 제시해달라고 하는 거죠? 엉터리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 남한테 인생 상담을 부탁할 정도라면 차라리 점쟁이한테 사주를 봐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예요.

인생은 다 똑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3천 명과 연애해본 사람이 딱 한 번 연애를 한 사람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마찬가지로 소설가가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유익한 조언을 해줄 거라 믿는 것도 완전한 미신이에요. 소설가도 허우적거릴 때가 있고, 그러다가 겨우 나무토막을 붙잡고 한숨을 내쉬는 것이 곧 소설가가 소설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설가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정직한 충고라곤 오직 하나 '당신도 소설을 써보시오'라는 말뿐이에요. 그런데 아무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이런 충고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속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소설가를 존경하지 마라', 272~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