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렸다. 항공권 가격 비교 사이트로 내 손을 움직여 기어코 결제까지 이행시킨 주체는 필시 귀신이었을 것. 귀신, 그래 그게 적절한 단어다. 다른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신나게 호기롭게 클릭에 클릭을 하고 보니 어느덧 돌이킬 수 없는 단계다. 8번 경주마같이 앞만 보고 클릭하던 귀신이 빠져나간 후로는 약간 다른 모습이 된 것 같다. 잠깐 동안 내가 뭘 한 건가 싶기도 했고 그렇게 제정신을 찾을 동 말 동 할 땐 목구멍이 살살 아픈 것도 같아서 '나 이거 지금 후회해서 이러는 건가?' 하고 아득해하기도 했다. 다음 단계로는 뭘 하면 되나 하는 생각도 사실은 별로 안 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러하다. 그렇다고 별수가 있겠는가. 이미 결제창이라는 강을 건너버린 뒤다. 이제는 뭐랄까, 송정해수욕장에서 자연스레 파도에 제 한몸 의탁하던 서퍼들마냥 나도 그냥 시간에 내 몸을 맡겨볼 차례 같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게 돼 있어. 돌이켜보면 새삼스러울 거나 있나. 지겹지만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좋게 좋게 생각하자. 그리고 비행기를 타러 가자. 이렇게 주문이나 걸어보는 수밖에.
아 또 어딘가 간질간질하다. 설레서인지 후회해서인지 막막해서인지 흘린 땀 때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