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들을 때 악보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듣는 목적은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대목에 플루트나 오보에가 들어간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내가 보기에 음악을 즐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연주회가 매력과 신비를 잃고 학습의 양상을 띠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신비를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연구와 분석에 반대한다. 나는 내가 연주하는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파트 악보를 보지 않는다. 나는 보지 않고 듣는다. 그러면 나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롭다. 나는 악보 전체를 머릿속에 넣을 수 있고 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브뤼노 몽생종, <리흐테르>, 정원출판사, 245쪽 중에서



이 영상을 틀어놓고 나는 리흐테르가 연주 전후에 손을 주무르는 모습을 꽤 오래 들여다봤다. 손가락을 주무르는 리흐테르의 동작은, 청중을 신경쓰지 않을수록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작곡가와 청중을 이어주는 연주자로서의 기본에 극도로 충실하려 했던 그의 태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사실 이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기도 하다. 매력과 신비를 중히 여기던 그 역시 어느 틈에 손가락을 풀어줘야 할 필요를 느끼는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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