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ME가 무료화를 선언했으며 롤링스톤도 어려운 처지라는 기사를 봤다. 영미권 팝음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에 잠시 가벼운 슬픔을 느끼고 말았다. 영미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팝음악에 한창 빠져 있던 그 한 시절을 함께한 잡지의 폐간을 바라보며 특유의 쓸쓸한 소회를 가지는 입장이라도 되는 양.

 

음악잡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방금 친구라 적긴 했지만 사실 지금은 친구라고 회상하기 어딘가 쑥스러운 친구다. 그래도 별수가 없으니 편의상 친구라 칭한다. 그 친구와 나는 금요일마다 특별활동 시간에 만나 뭔가를 함께했던 사이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문득 그 아이와 보통은 넘는 사이였나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1~2학년 때는 정체가 모호한 인쇄물을 만들면서 우스운 작당을 함께했고, 3학년 때는 지구과학반이라는 역시 정체가 모호한 공간에 같이 앉아있었다. 다시 정신을 다잡는다. 별 사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 이 경험을 공유하는 이가 이 친구 말고도 네 명 더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친구라 칭하고 있는 친구는 내 기억에 그 무리 속에서 내가 가장 가까워지기 어려운 둘 중 하나였다.

 

당시 그 친구와 나를 묶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금요일 마지막 교과시간에 향하는 곳이 같긴 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우리가 나눈 다른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교하는 방향도 달랐고 이용하는 교통수단도 달랐으며 좋아하는 연예인도 겹치지 않았다. 교복 매무새도 사복 취향도 다 달랐다. 그 친구와 나는 일단 유머감각부터가 달랐다. 그 친구는 자기 할머니가 독일사람이라는 농담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진짜냐고 물었을 뿐 그 말이 농인 줄 알아차렸을 때도 "어우 야 뭐야 진짠 줄 알았네 까르르" 같은 반응은 차마 건넬 수 없었다. 또렷이 기억하건대, 별로 웃기지 않았다. 또한 그 말에 내가 크게 의심을 품지 않았을 정도로 그 친구의 용모는 꽤나 서구적이기도 했다. 나는 달랐다. 낮거나 둥근 무엇들을 얼굴에 달고 다녔으니만큼 언감생심 그런 농담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성적도 달랐다. 갑자기 생각나는 강렬한 에피소드가 있다. 고3때 모의고사를 친 다음날인가 성적 좋은 그 친구가 지망대학 어디 썼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내가 어디어딜 썼다고 대답하자 그 친구는 말했다. "거기는 삼류 아니야?" 참으로 스트레이트한 언사였다. 내가 듣기에 친구에게 공부 좀 더하라는 뜻을 참신한 방식으로 전하는 말은 분명히 아니었다. 일종의 유머를 드러내려 한 의도 역시 아니었다. 내가 그 시절에도 그런 건 또 잘 알아듣는 편이었다. 문자 그대로 '어머 넌 그 삼류대학을 정말 지망한다는 거니'라는 뜻을 품은 진지한 물음이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엄정한 표정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때 나는 당당하게 "삼류라니, 나는 나름대로 가고 싶은 학굔데"라는 식으로 대답해줬을 리가 없다. 뭔가 대답을 하긴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 안 나는 걸 보니 매우 호구력 넘치는 멘트였나 보다.

 

당연할 수도 있는데, 보는 책도 안 겹쳤다. 청소를 하던 중 갑자기 그 친구가 <데미안>에 대해 얘기해올 때가 있었는데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 관심사 리스트에 헤세 같은 사람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넌 요새 뭐 읽어?"라는 그 친구의 질문에도 나는 굳이 GMV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권장도서와 월간 대중음악지 사이의 접점을 떠올리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만약 "GMV 읽어. 핫뮤직보다 가볍긴 한데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이름이 더 많이 나오는 거 같아서 GMV가 더 재밌더라" 같은 대답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나와 그 친구는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더 싸해졌을 것 같다.

 

NME가 아쉬운 건지, GMV가 그리운 건지, 옛날 친구가 문득 궁금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다일 수도, 무엇도 아닐 수도 있겠지. 분명한 건, 이렇게 딴짓거리를 해댔는데도 아직 퇴근시간이 안 됐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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