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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성당에서 알게 된 엘리아는 사람들 관계를 맺을 때 바운더리를 두는 법이 없어~
그에 비해 나는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지"
"그래도 처음에 빨리 친해지는 편이자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해 가는 건 늘 어려운 일인 거 같구나"
얼핏 친구와의 일상 대화 같지만 환갑이 넘은 엄마와의 대화이다. 나보다 30년 넘게 산 엄마 역시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늘 관계를 맺는 데 서툴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어쩌면 한 명의 사람이라면 세상을 등지고 살지 않는 이상 관계에 대한 고민은 눈을 감는 날까지 해야 하는 숙명 같은 거 아닐까? 그래서 유독 관계를 다룬 책이 있으면 손이 가게 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림태주 시인의 에세이 <관계의 물리학>은 참 반가운 책이었다.
<관계의 물리학>은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처세술을 적어 놓은 자기계발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을 일상 속 관계에 대한 사유를 시인의 언어로 적어 구절구절 마음을 적시며 쉽게 읽히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통찰력과 감성이 엿보인다.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하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다.]
거리를 두다 와 거리를 주다의 큰 차이점
사람과 친해지면 한없이 가까워지고파 하는 편인 나는 가끔 자신의 주변에 선을 긋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그 사람이 정해 놓은 바운더리를 나는 넘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아래의 구절을 읽으면서 그들이 둔 거리를 내가 그 사람에게 주는 거리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거리를 두는 것과 거리를 주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두는 것은 한계를 정하는 일이지만, 주는 것은 자유의 범위를 늘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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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주면 관계의 너비와 둘레가 확장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생동하는 자유의 거리를 내주겠다. ]
인간관계의 기본은 '내가 바라듯이'
두 아이를 낳고서는 툭하면 남편과의 싸움이 잦아졌다. 다른 사람과는 싸운 것이 손에 꼽히는 나이면서 이렇게 가장 가까운 이와의 관계는 서투름 투성이다. 늘 싸우는 래파토리는 같고, 내용 역시 도돌이표이다. 사귄 연도 기준으로 올해 12년이 되는 동안 편해진 관계만큼 말을 함에 있어 격이 떨어져 나갔다. 저자는 관계에 있어 얼마나 말이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하며 옛 성인들이 얼마나 인생과 말의 관계를 화두 삼고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가 세상의 진리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며 나의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어 이 가르침을 새겨 보고 실천하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가 하기 싫어하면 상대방도 하기 싫어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듯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 남에게 상처를 줄 일도 내가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
열역학 2법칙-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 내려가듯
좋은 생각 보다 부정적인 생각은 에너지를 더 많이 빼앗아 간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자꾸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자꾸만 피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았다. 주로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웠고, 그 이야기는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저 듣고 흘리면 될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그러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고 나면 내 기운마저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친한 친구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켜 '감정의 배설'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무릎을 탁 쳤다. 하지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것을 했던 적이 없었을까?라고 자문해본다면 장담할 수 없다. 저자는 누군가를 헐뜯는 나를 발견한 때, 그 편안한 관계를 다 잃기 전에 혼자 있는 법을 익히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따뜻한 열기를 유지해야 타인의 체온을 함부로 빼앗는 일이 없을 거라며 말이다.
혼자인 나를 사랑할 시간이 관계에 필요한 이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결혼 전 혼자 떠나는 여행도 즐거워했고, 혼자서 영화를 보기도 했었다. 현재는 혼자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굉장히 큰 사치가 되어 버렸지만도 나는 또 언젠가 혼자만의 시간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 혼자만의 시간에 아이러니하게 자신에 빠져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떠오르고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 옆에 있기에 생각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불쑥 떠오르는 것이고 안부가 묻고 싶어진 것이다.
[철저하게 혼자인 자들이 더 많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식물에게 물을 주고, 고맙다는 편지를 쓰고, 고양이를 세심하게 보살필 것이다.]
저자의 많은 사유들은 비단 관계를 넘어서 인생 살이에 혜안을 준다. 그저 훌훌 읽고 넘어 버리기에는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다이어리에 꼭꼭 눌러 적었다. 그리고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거리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 서로 사이를 가질 때 우리는 우주가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의 우주를 더 아름답고 단단하게 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욱 새겨볼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