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2018년 4월 12일 홀로코스트 기념일- 이스라엘 묵념 사이렌이 울린 풍경

(사진 출처: Haaretz.com)

요즘 종종 뉴스에서 해외에서 이슈가 된 유튜브 영상을 재편집해 보여 주곤 한다. 그러다가 본 영상의 한 장면은 나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길 가던 사람을 멈추게 한 사인 소리, 사람들은 묵념에 잠기고, 그 사인 소리가 끝난 후 제 갈 길을 가듯 떠난다. 그 플래시몹 같던 묵념의 현장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은 '홀로코스트'로 이 세상을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동이었음 알게 되었다. (4/12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일)
  사실 홀로코스트란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몰라 사전을 찾게 되었는데 홀로코스트는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 holókauston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게 동물을(olos) 태워서(kaustos)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말은 집단 학살을 의미하게 되고, 유명 학자들에 의해 '제2 세계대전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권에서 작가들이 주목받기 위해 쓰기 좋은 소재라고 유명 작가가 비꼬아 말할 정도로 '홀로코스트'는 쓰였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소재이다. 나 역시 '홀로코스트'에 관한 문학 작품은 아니더라도 영화 작품만 해도 떠올려지는 작품들이 몇 개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러한 작품들이 홀로코스트 속에 인물들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서 심약한 나는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상당히 신선한 시각으로의 접근한 문학 작품이 있어 펼치게 되었다. 바로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2017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출신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대표작이다. 폴란드 이주민 출신 아버지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작가이기이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좀 더 객관적 시선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여타 홀로코스트 문학 작품과 달리 홀로코스트를 겪고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 겪은 세대의 아래 세대인 주인공의 이야기로 전개가 된다. 또한 늘 피해자의 입장에서 다뤄졌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인물과 가해자와의 이색적 교류를 통해 가해자의 내면세계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더욱 흥미로움을 더한다. 
700여 페이지에 걸쳐 꽤나 두꺼운 분량에서 펼쳐진 작가의 서사는 독자의 상상력을 뛰어넘기에 충분하다.  특히 내가 이제까지 읽어 왔던 소설과는 그 구성부터가 달라 독특했다.  보통은 인물이 나와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에서 하나의 스토리가 전개해져 가는 구성이 일반적이라면 이 작품은 총 4장에 걸쳐  색다르게 구성된다.     

제1장 : 모미크(피해자 다음 세대)를 통해 바라본 홀로코스트 그 이후 

1장은 주인공인 모미크가 화자로 앞세워 그의 유년시절이자 이스라엘 건국 초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엄마, 아빠가 온 곳, '저 멀리'는 주인공 모미크에게 해리포터 속 볼드모트 같은 것이었다. 함부로 언급해서도, 물어봐서도 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모미크 그곳에서 어떤 일을 엄마, 아빠가 겪었는지 알고 싶고, 그 일을 똑같이 겪고 왔다는 동네의 특이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다 '저 멀리'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안셸 바세르만 할아버지(외할머니의 남자형제)가 집에 오고 나서 모미크는 '저 멀리'에 대해 아는 것을 박차를 가하고 급기야는 '나치 짐승'을 키우겠다며 버려진 동물들을 집에 데리고 오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기까지 한다.

  한밤중 발가벗고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여자 한나 제이트린, 계속 혼잣말을 중얼 걸리는 안셰 할아버지, 그리고 자다가 비명을 지르는 아빠,  그리고 사람들의 팔목에 새겨진 숫자들, 자꾸만 자신과 거리를 두려만 하는 엄마 등 어린 모미크의 눈으로 보여진 홀로코스트 그 이후의 다행히도(?)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서 홀로코스트의 깊은 상처를 보았고, 그 깊은 상처는 어린 모미크에게까지 곪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제 2장: 모미크의 치유의 과정, 연어가 된 작가 브루노와의 만남

 

 

모미크가 말하는 정의로 홀로코스트가 단박에 와닿았다. 그저 피와 살덩어리로 치부되었기에 일어났다는 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일 테니까. 그곳에서 살아났어도, 존재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서 자신의 존엄성을 챙기는 인간으로서 제구실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살인에 책임이 있어요. 설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 할지라도,(중략) 그들은 우리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에 대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요.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라고 직접 임명한 자들, 우리의 행복을 조금씩 죄어 오는 자들 말이에요.
작가가 된 모미크는 자신까지 덮어버린 상처를 '저 멀리' 그때를 이야기로 재창조시키면서 자신을 치유해 간다.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고 동경하기까지 된 작가 브루노. 모미크는 그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나치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기 전으로 되돌려 살려내고 연어의 모습으로 등장을 시켜 대화를 나눈다. 모미크가 깨달으며 외치는 말속에서 나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결코  '저 멀리' 그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껴졌다. 그저 우리의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니면 외면한 채 우두커니 있는 모습 말이다.

 

제3장 :홀로코스트 피해자 안셸 바세르만과 가해자 나이겔의 천일야화(千一夜話)

3,4장은 모미크가 쓴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중 3장은 자신이 어린 시절 만났던 안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써낸 이야기이다.  매일 수천 명이 죽어져 나가는 수용소의  소장 나르겔은 우연히 자신이 어린 시절 읽던 동화의 작가인 안셸 바세르만이 수용소의 포로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바세르만에게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죽여 주겠다는 흥미로운 조건을 내걸고 바세르만은 낮에는 그의 정원사로 일하고 밤에는 오직 그를 위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장에서 주목할 것은 바세르만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변화되는 나르겔이다. 아무 감정 없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을 총살 시켜 버리는 그이지만 바세르만과 관계를 맺고 나서 그를 죽여달라 했을 때 그는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생각하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보이고 부인과의 있었던 은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라 일컬어지는 작자들 역시 피해자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밑바닥으로 깔아뭉개고 생명을 지우는 역할을 했지만도 그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조차 그 존엄성이 상실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영혼을 지워버렸는지 모르겠다.

 제4장: 바세르만의 이야기 속 인물 '카지크'와 관련한 사전식 표제어 해석

카지크는 바세르만이 이야기에서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24시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한 명의 인간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백과사전 식으로 표제어를 나열했는데, 그 발상이 참으로 독특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제목이 <사랑 그 항목을 참조하라>는 것도 이러한 구성이 있어서가 아닐까 추측되었다. 나이겔과 바세르만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카지크의 이야기 때문에 표제어 설명 중 나이겔의 이야기 역시 나온다. 여기서 역시 변화된 나이겔을 알 수 있고, 그는 심지어 바세르만의 딸을 자신이 죽인 것을 알고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야기의 주인공 카지크가 죽음을 택하자 자신 역시 스스로의 죽음을 택한다.
  표제어의 수많은 설명 중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읽고 나서도 계속 여운을 남겼다.

 

 우리 모두가 빌었던 소원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카지크가 전쟁을 모르는 채로 생을 마치게 해달라는 거였죠. 아시겠어요, 헤어 나이겔? 우리가 바란 건 그렇게 사소한 거 였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면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과제처럼 느끼던 찰나 오늘자로 배달된 신문의 헤드라인이 보였다. "핵 실험, ICBM 중단 김정은식 비핵화 첫 단추" 이면에 가려진 것들이 보이는 거 같았다.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하는 지금 순간에도 나치 수용소만큼 처참한 상황에 직면한 북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조차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고 외면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 역시 살인에 책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어쩌면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그와 같은 현실을 목전에 두고도 외면한 우리에게 사랑(자비)을 참조하라고 말하는 큰 메시지일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빌었던 소원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카지크가 전쟁을 모르는 채로 생을 마치게 해달라는 거였죠. 아시겠어요, 헤어 나이겔? 우리가 바란 건 그렇게 사소한 거 였답니다.

우리는 살인에 책임이 있어요. 설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 할지라도,(중략) 그들은 우리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에 대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요.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라고 직접 임명한 자들, 우리의 행복을 조금씩 죄어 오는 자들 말이에요.

"당신은 매일 수천 면을 살해한잖아요. 전 세계에서 온 유대인을들이 도살장을 향하는 양처럼 당신 앞을 지나간다고요.(중략) 당신이 늘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서 자진해서 스스로 선택해서 하르는 것뿐이잖아요.(중략)
나이겔이 눈을 감고 신음 혹은 두려움에 목이 메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방아쇠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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