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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 자기 성찰의 고전 ㅣ 명역고전 시리즈
범립본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9월
평점 :
명심보감을 글자 그대로 풀면, 마음을 밝히는 보석같은 거울이란 뜻이다. 질문이 생긴다. 마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면, 지금 마음 상태가 어둡다는 뜻이다. 도대체 마음은 왜 그렇게 쉽게 어두워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크게 어렵지 않다. 우리 생활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세상은 온통 내가 살아가기에 불리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굶주림과 추위는 배부름과 따뜻함보다 백배는 더 많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아이와 부모를 잃기 태반이며, 믿었던 친구의 배신은 그렇다 치고, 태풍이나 지진으로 착하기 짝이 없던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연 이런 세상에 질서가, 가지런함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우선 내 한 몸 보전하는 전략이 똑똑한 것 아닐까. 아니 이기심은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라고 신의 주신 선물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늘 우리의 뜻과 지혜를 가리고 좀먹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난리(亂離)요 무리(無理)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은 현실의 난리와 무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요, 그 속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생성하고 있는 理와 氣의 작용을 성현들의 글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다면 理와 氣란 무엇인가? 명심보감에 들어있는 사상의 옷들은 理와 氣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理를 대표하는 것이 하늘이요, 氣를 대표하는 것이 땅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인간은 마음으로는 理를, 몸으로는 氣를 품고 있다. 인간은 마음과 몸으로 理와 氣를 하늘, 땅, 이웃에게 돌려주는 일을 담당한다. 이런 일을 잘 해낸 분들이 바로 성인이요 군자다.
그 일을 잘 하는 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보면 된다. 나를 위해 사는가, 이웃을 위해 사는가. 나를 위해 사는 삶이 바로 유학에서 그토록 경계하는 사욕(私慾)의 삶이다. 요컨대 명심보감은 사욕의 삶을 끊어내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떻게 인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니다. 인간다움이라는 理의 실현이다.
인간다움의 첫 번째는 착함을 잇는 것(繼善)이다. 하늘과 땅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착함의 원리(天命)를 내가 막으면 안 된다. 사실 막을 수도 없다. 선악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의 문제다. 그러므로 먼저 하늘이 내게 명령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 내게 주어진 분수를 알고(安分), 내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세상의 질서에 순응(順命)해야 한다. 나는 그 지선의 질서를 계승할 뿐이다. 그 질서가 인간관계로 들어와 부모자식 관계에 적용된 것이 바로 효행(孝行)이며, 자기 내면과의 관계에 적용된 것이 바로 정기(正己)이다. 내면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存心)이고, 현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본성을 엄히 다스리며(戒性), 이를 위해 늘 힘써 배워야 한다.(勤學) 이후 이런 원리들이 구체적인 인간관계, 예컨대 가정, 친구, 국가 등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까지 명심보감은 잘 닦인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명심보감에 등장하는 성현들의 특징은 理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理의 세계를 맛 봤다. 누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어떤 맛집에 방문했다고 치자. 그 집은 천하일미를 요리하는 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음식을 맛보고 누리기 위해 그 음식점의 월세가 얼마인지, 요리사의 월급이나 재료비, 혹은 소스의 비밀을 알 필요도 없고,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 음식이 내 입에서 어떤 빛과 소리를 내는지 그저 느끼고 즐기면 된다. 이 음식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켜 내 몸에 필요한 어떤 영양소로 분해되는지 몰라도 좋다. 심지어 음식 값을 내지 못했더라도 맛을 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미 맛을 본 사람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저 웃을 뿐이다. 이미 맛을 본 사람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해대는 사람에게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건 아니라고.
이미 理의 세계에 들어와서 조화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의 넉넉함을 알지 못하고 마치 경기하는 것처럼 문자 해석에 매달려 달리기만 하는 우리. 숨이 차고, 다리가 풀기기 십상이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계속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성현은 이래서 성현이다라고 하면서 찬양하기에 바쁘다. 명심보감이 칼이 된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서양 교육시스템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공부한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다시 강조한다. 우리가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은 사욕이다. 명심보감은 소유물이나 스펙이 아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 지식을 소유하고 그것을 권력화 하여 이웃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이것을 철저하게 반성케 한다. 아무쪼록 명심보감을 통해,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나를 만나고, 나를 불쌍히 여기며, 하늘의 뜻과 땅의 힘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가족과 이웃에게 자신을 가지런히 내어주는 자연스런 삶을 꿈꾸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