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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마지막 강의 - 하버드는 졸업생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가르칠까?
제임스 라이언 지음, 노지양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8월
평점 :
한국에서는 서울대와 하버드대가 권력이다. 출판업계가 이 권력에 의존해 책 제목을 잡는 등 마케팅에 활용한 진 오래되었다. 별 내용은 없이 그야말로 얼굴 마담으로 전락한 학벌 마케팅도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 조미료로 범벅된 개운치 않은 김치찌개를 떠올렸다.
그러나 예상외로 깔끔하고 건강했다. 그래 어쩌면 나는 ‘하버드’가 아니었다면 아예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학벌 권력의 부산물이니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우리 사회는 배우지 못한 설움과 배고픔을 병적으로 앓았다. 천재 또는 인텔리는 나라와 민족을 배부르게 먹일 영웅이다. 명문대는 그것의 객관적 인증서이고, 그들에게 돌아가는 사회적 보상은 차별 문제를 불러일으킬 만큼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학교-굳지 하버드대학이 아니더라도-를 졸업하는 학생들, 그러니까 자기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강의인 졸업축사를 참 진솔하고 적절하게 준비했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제 그의 제자들은 누군가의 스승이 될 사람들이었고, 가르침과 배움은 ‘질문’으로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왜 해야 할까? 책은 5+1, 모두 6개의 질문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먼저 기본질문 5개는 이렇다. ①“잠깐만요, 뭐라구요?(Wait, What?)”, ②“나는 궁금합니다(I wonder why, I wonder if)”, ③"우리가 적어도 ~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Couldn't we at least~?)", ④"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How can I help?)", ⑤"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What truly matters?)”보너스 질문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인생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까?(And Did you get what you wanted from this life, even so?"이다.
①번 질문은 일의 성격과 내용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②번 질문은 문제 해결을 위한 원동력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③번 질문은 함께 일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합의점 도출을 위해서, ④번 질문은 자신을 구원자 콤플렉스(Saver complex)에서 구원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 ⑤번 질문은 문제의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의 필요성들은 저자의 평범한 경험과 사례를 통해 아기자기 하지만,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 있다. 한 마디로 재미있게, 단박에 읽힌다.
보너스 질문은 실상 덤이 아니다. 전체 질문의 의미를 결정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일을 명확하게 하고 호기심을 갖고 합의하에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핵심에 집중해서 처리 했다고 치자. 그래서?(So What?) 마지막 질문은 이렇게 되묻는다. 그래서, 이 생을 통해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가? 부조리하고 불확실하며 무의미하기까지 한 이 삶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소망했으며, 무엇을 얻었는가? 참으로 울림 깊은 질문이다.
저자는 이제 선생님이 될 제자들에게 자신이 얻은 대답을 전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선생님이라면 교육과정을 통해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는가? 학생들이 자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도록 참 인간됨을 전달했는가? 나는 수업 시간을 통해 나와 학생들이 사랑받을 만 하고 사랑할 만한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창조했는가?
만일 사랑이라는 답이 너무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이 책의 ①번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Wait, What? 잠깐만, 사랑이 식상하다고? 모든 종교와 윤리의 근본원리인 사랑이 식상하다고 방금 말한 거야? 진심이야? 그렇다면, 그렇게 느끼는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사랑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면 내가 좀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은 누구에게나 유용하고 필요하다. 경영자와 노동자, 정치인과 시민, 생산자와 소비자, 부모와 자식 등 그 어떤 삶의 맥락과 소용돌이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샛별 같은 질문이다.
질문이 꼭 정답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질문은 오답을 견디고 정답을 향해 태도를 새롭게 가다듬는 여행과 같다. 그 동안 나를 구속했던 쾌쾌 묵은 정답으로부터 탁 떠나는 여행 말이다. 많은 분들을 이 여행에서 만났으면 한다. 이 책이 좋은 여행가이드가 되리라 믿고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