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소매틱스(Somatics, 몸학)를 배웠다. 여기서 몸이란 유물론적 물질이 아니다.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인간 몸의 총칭이다. 나와 너의 1차적 구별은 몸의 차이점이다. 몸에 따라 사건에 대한 반응 양식과 그 해결책이 달랐다. 기억도 해석도 달랐다. 이렇게 몸에 대한 이해와 신비가 깊어갈수록,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 대한 관심과 경외감이 따라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이 책의 서평을 써야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동기 중 하나다.
물질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 단위, 원자로 이뤄졌다는 생각은 뉴턴의 창작물이 아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구성 기본단위들을 고민했고, 나름 제시해 왔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흙, 공기를 제시 했다. 이런 4원소를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엉성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이 체험한 시각정보와 인식체계를 고려한다면 설득력 차원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우주 삼라만상의 기본단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현미경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시각정보를 갖게 되었다. 급기야 생명의 기본단위라고 부를만한 그것을 보았다. 로버트 훅은 그것을 세포라고 불렀다.
큰 딸 아이가 감탄사를 그만 좀 해주웠으면 부탁할 정도로 이 책이 제공하는 사진들은 경이로웠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사고를 구체적으로 만든다. 본 것을 그리도록 만들고, 그리려면 관찰에 관찰을 더해야 한다. 보이는 것의 부분과 전체를, 그 관계와 비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도 생소한 차등간섭위상차현미경, 주사전자현미경,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찍은 다양한 세포 사진들은 천문학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별을 닮았다.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그 어떤 건축가도 실현하지 못할 디자인으로 꼼꼼하게 건축했다. 물론 세포염색기술이라는 인위적 간섭이 없진 않지만, 내 몸 안에, 우리 집 강아지 안에 그리고 땅과 공기 속에 저렇게 아름답고 독보적인 생명체들이 가득 차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나아가, 그걸 사진으로 찍어 지금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생명을 다룬 그 어떤 철학적 설명과 감동적인 영화보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생명의 근원이 우주 운석에서 발견된 핵 염기이지, 별똥별에 묻어 들어온 단백질의 구성요소, 아미노산인지 알 도리는 없단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산다. 그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고, 그 세포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있어야 할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세포분열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은 세포의 자살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세포는 자기 자신을 전체와 구별해서 인식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떤 세포의 죽음은 전체 몸에게 있어선 오히려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다.
생식과 유전, 진화를 둘러싼 인간의 노력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현대 인간의 삶이 너무나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과 의미를 현대인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각 세포가 전체 몸을 위해 자리 잡고 움직이듯이, 개인이라는 나는 어떤 목적에 이끌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위 세포는 내 얼굴을 모른다. 내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음식도 모른다. 그러나 위 세포는 단 한 번도 이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그냥 일하다가 스스로 죽어갔다. 그 자리를 자신의 후손이 다시 담당하게 되더라도 세포는 전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있을 뿐이다. 그 있음이 그의 의미다. 인간만이 이러한 철학을 거부하는 듯하다.
몸에 좋다는 콜라겐, 몸에 나쁘다는 지방도 모두 세포였다. 그들의 면면을 보니, 인간의 편견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이 책의 사진들은 단순히 감탄사만 만들지 않는다. 사진 너머에 있는 인간중심의 패권주의가 생명을 얼마나 경멸하며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물론 저자에게는 뜻밖의 반응이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진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했다. 생물교과서에서 봤다면서 시큰둥했다가도,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세포들의 화려한 퍼레이드에 놀라는 표정이다. 게다가 깨알 같은 설명을 읽고 나면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다. 저렇게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표정들이 대장균, 탄저균, 식중독균이라니. 우리의 병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가 있다면 꼭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생명의 경외감은 물론 인간 중심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이 지구는 호모 사피엔스 혼자의 것이 아니다. 개체 수만 보자면 단세포 생물이 지구의 주인일 수도 있다. 인간은 주변 이웃 생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존재는 아닐까. 작지만 엄연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세포들과의 관계도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의 지평을 열어준 저자에게 깊이 감사한다. 작디작은 세포와 크디큰 우주의 세계가 닮아도 너무 닮아있음에, 그 사이를 생각과 이야기로 연결하려는 인간으로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생명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