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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찾은 자유 - 천년 지혜의 보고 장자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
뤄룽즈 지음, 정유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내 안에서 찾은 자유’ 장자」는 그 동안 잘 알려졌던 내편의 제물론뿐만 아니라, 외편 등 33편 전체에서 우화 성격이 강한 부분을 저자가 골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쓴 것이다. 장자 원문에 가장 충실하다는 작품 중에서 골랐다고 하는데, 그런 탓에 처음 보는 텍스트가 상당히 많았다. 평소 장자를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글도 장자에 있구나.’ 내심 놀랐다. 팔리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편향된 장자를 다수 읽었던 내겐 신선했다.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하나가 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페이지 하단에는 국립타이완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저자의 각주가 있다. 이는 나 vs 자유, 사심없는 인간 vs 이기적 인간이라는 충돌의 굉음 속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던 내게 소중한 이정표가 되었다. 통찰력 있고 대담한 해석이 주는 힘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구절은 아래와 같다.
“세상에서의 삶은 장자의 관점에서 ‘생명이 없는 질서’이다. 그런데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무질서’이다.”
위 문장처럼 자본주의를 사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장자는 생선가시처럼 걸려있다. 경제학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합리적인 인간으로 인정하면서 출발한다. 반면, 장자는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는 마음, 즉 사심(私心)을 인간이 주의해야 할 제일 함정이라면서 시작한다.
‘뭔가 따끔거리는데, 뭘까?’
우리는 자아를 계발하거나 개발하여 돈 잘 버는 영웅이 되라고 교육받았고,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몸동작을 하는 집단 춤도 돈을 잘 벌기 때문에 온갖 언론매체가 주목한다. 이런 노래와 춤은 한류가 되고, 똑같이 생긴 아이돌은 수출역군이 되어 있다. 물신숭배사회에서 온전히 돈을 예배하고 있는 우리에게 장자는 아예 ‘나’ 자체를 위험한 존재로 전제한다. 나를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하라 한다.
‘허참, 무시할 수도 없고, 계속 신경 쓰이네.“
이 책은 장자 앞에 ‘내 안에서 찾은 자유’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나는 자유는커녕 읽는 내내 이러한 ‘가시 걸림’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동양사상이라 하더라도 유학과 장자는 매우 다르다. 공자나 맹자는 분명한 내가 있다. 이상적 나일지언정 자기(自己)를 놓지 않는다. 예(禮)를 통해 이기심을 죽이고 남을 사랑하도록 몸을 훈련시키되(克己復禮), 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훗날 주자가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불교나 노장사상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수용했지만, 여전히 유학은 입신양명(立身揚名) 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유학의 틀에서 보면 ‘내 안에서 찾은 자유’란 오해되기 쉽다. 나 있고, 그 나를 훈련하여 이상적인 자아에 도달하고, 그 후 남과 맺는 관계에서 느끼는 결과론적 자유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장자는 끊임없이 나라는 관념과 씨름한다. 그렇다면 아예 나를 죽여 없애버린 상태를 절대 자유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를 죽이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자유를 느끼는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는 ‘나’와 ‘나 아닌 생명’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즉, 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자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장자사상은 삶 속에서 항상 진행형이다. 장자가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장자의 사유는 더욱 까칠하고 미끈거렸고, 질문은 집요해 졌다. 내가 없는 자유와 내 안에 있는 자유는 과연 어떤 차이일까? 주체와 객체라는 서양철학의 이분법에 내가 너무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결국 나는 장자사상을 생명을 향한 끊임없는 부정(否定)운동이라고 이해했다. 부정운동이란 고정된 모든 것을 ‘없애나가는’ 힘이다. 왜 없애야 하는가? 생명을 위해서다! 자유는 전혀 없는 나로서는 맛 볼 수 없다. 자유란 내가 있긴 있으되 그 나에게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돈 잘 버는 자본주의의 영웅을 없애나가는 과정에서, 나 말고 다른 생명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과정에서, 나를 둘러싼 일상과 지식과 목표를 심각하게 의심하는 과정에서 자유는 비로소 자유다. 쓰고 보니 헤겔 변증법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싶어 씁쓸하다. 어쩌면 나는 근대 서양인의 후손일지도 모르겠다.
장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있는 나를 고스란히 보관한 채, 무엇을 이해했다는 건 오해일 가능성이 더 크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선입견에 꼭 맞는 장자의 글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깨달았다는 순간이 지나면 곧 더 강력한 편견으로 진화하는 법이다. 고로. 계속 없애 나가야 한다. 자신의 이해와 깨달음이 불편해야 한다. 실눈을 뜨고 의심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샌가, 장자처럼 붕새와 참새 사이에서, 나비와 자아 사이에서 차별 없이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책이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특히 번역이 좋다. 쉽게 읽혀 무궁무진한 장자의 역설을 이해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장자 사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