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공부의 기초 - 역사가처럼 생각하기
피터 N. 스턴스 지음, 최재인 옮김 / 삼천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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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넘어서 진짜 공부를 시작하자고 다짐한 후 첫 테마로 잡은 것이 세계사였다. 문명사나 철학사로 시작해서 역사학 입문서, 커피의 역사나 빵의 역사 등 미시사도 읽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시대의 구분, 지역의 명칭, 시기별 문명의 비교 등이 어떤 기준으로 가능했는지를, 이 책은 원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렇다. 세계사 공부의 기초는 정리되고 요약된 깔끔한 세계사가 아니다. ‘역사가처럼 생각하기라는 부제(副題)처럼 정리되고 요약되기 이전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러한 저작 목적에 따라, 세계사라는 개념부터 질문 세례를 받는다. 세계사란 무엇인가? 한 나라의 국사와는 어떻게 다른가? 비교론적인 문명사나 최근의 거대사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저자의 근본적인 질문에 너무나 당연시 했던 세계사에 대한 선입견이 흔들렸다. 좋았다. 독서의 참 맛은 기존 생각의 흔들림과 새로운 관점의 정립이 아니던가. 특히, 세계사의 골격을 고전시대, 고전시대 후기, 근대초기, 장기 19세기, 현대로 나눈 부분은 독특하고 신선했다.

 

 

 

 

모든 인간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의미에 종속적이다. 세계사를 다루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역사가들이 선별한 사료는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이다. 선택된 사료를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비교할 것인지, 공통점과 지속성을 강조할 것인지, 차이점과 단절성을 강조할 것인지는 역사가의 가치관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전 작업을 생략한 채 정리되어 있는 연도표만을 외운다면 바닷가에서 모래알갱이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의 관점은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높은 곳이다.

 

 

 

 

시간, 공간, 접촉과 교류는 저자가 세계사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원리들이다. 각 원리별로 설명은 하되, 딱 부러진 정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논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공개하면서 그 어떤 절대적 기준도 없음을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 , 로부터 상당한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으로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역에 대한 접근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계사 연구자는 거의 없다는 지적은 매우 따끔했다.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의 책만을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책을 읽고 난 후,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 동안 시끄러웠던 우리 사회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역사 담론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고체(固體)처럼 딱딱하기만 했던 시대와 지역과 문명에서 벗어나 나름의 시대와 지역과 문명관을 고민해도 틀린 역사 공부가 아니다. 이미 결정 나서 지나가 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사도 허락된 것이었다. 직역에 충실한 번역자의 수고가 조금 아쉽지만, 결정적이지 않다. 좋은 책이다. 추천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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