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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묵자, 자유를 찾고 평화를 넓히다 - 무유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ㅣ 시대와 거울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3
신정근 지음 / 사람의무늬 / 2015년 12월
평점 :
노자가 자유를 찾고 묵자가 평화를 넓히고자 했다면, 노자의 억압과 묵자의 전쟁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자유는 억압에 대한 반동이요, 평화는 전쟁에 대한 반작용일 테니까. 춘추전국시대라는 대혼란의 현실적 출구로서 노자가 자유를, 묵자가 평화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자연스럽다. 또한 유가라는 기득의 사상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 노자와 묵자는 충분한 사상적 특징과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유가의 제도를 통한 인위 통치에 대해 노자가 무위자연으로 맞받아치고, 유가의 별애(別愛)를 묵자가 겸애(兼愛)로 대응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무와 유의 대별을 전제로 노자를 무에, 묵자를 유에 배치한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 이유는 첫째, 무와 유의 구분은 관념의 소산인데 반하여 노자와 묵자의 사상은 현실을 개혁하고자 한 실천적 정치담론이기 때문이다. 둘째, 노자의 사상은 무의 세계를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보다는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 무와 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무와 유의 ‘관계’를 통해서 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노자를 무에 배치한 것은 오해를 만들 수 있다. 셋째, 묵자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적 성격 때문에 그를 유에 배치했다면, 사실 제자백가 중에서 유의 세계에 속하지 않을 사상은 없을 것이다. 구분과 배치의 실익이 없다.
사실 위의 비판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이라는 방법론이다. 비교 혹은 대조라는 그물은 두 개의 사물이나 생각의 본질보다는 피상적 대칭 관계를 보다 많이 건져낸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여기 호빵과 호떡이 있다고 치자. 호빵을 호빵답게 하는 것, 즉 호빵의 본질을 갈파하기 위해서는 호빵이 아닌 모든 것과의 차이점을 상정해야 한다. 그러나 호빵과 호떡을 대조하는 방법론은 그 중에서 오직 호빵과 호떡의 차이점에만 주목하면 된다. 천만다행으로 호빵다움이 호떡다움과 서로 맞닿아 있다면 매우 유용하겠지만, 대부분의 비교론은 제한적 대립각을 강조하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개어 읽는’ 방법론은 노자와 묵자의 사상이 서로에게 본질적으로 의존적이라서 선택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의 제시라는 환기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공자-노자, 공자-묵자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양자의 관계가 본질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노자와 묵자는 공자를 의식적 토대로 삼고 있다. 사후적이던 집단적이던 공자는 그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께서 이러한 점까지 잘 알고 계시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의 구성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저자는 노자와 묵자를 무와 유로 배치한 이유에 대해 짧게 서론에서 밝힌 후, 노자다움과 묵자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의 대부분을 각자의 사상에 할애했다. 두 사상가 모두 수수께끼 같은 역사성을 갖고 있는 터라, 인용한 문헌적 근거와 최근의 사진까지 세심하게 편집되어 있다.
무와 유의 구별이 서양철학의 존재론적 접근이므로 노자와 묵자가 가지고 있는 동양철학의 관계론적 특성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앞에서 말했듯이 무유(無有)의 대별은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방안에 주입시킬 목적이지, 그것으로 방청소를 대신하려는 게으름의 소산이 아니다. 특히 묵자 부분은 노자와 비교해서 많이 읽히지 않고 있는데, 묵자를 처음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묵자의 이름부터 그의 사상의 대강과 요지를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자가 어렵다고만 알고 계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노자를 보다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덕경을 덥석 읽기 보다는 이 책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동양고전을 많이 읽으신 분들보다는 이제 시작하려는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