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노래 - 19세기 말 활약한 어느 의병 선봉장의 이야기
전영학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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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노래]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박윤진 -

 

아군(我軍)과 적군(敵軍)의 구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빙하기라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3만년 넘게 발달시켜 온 전략이다. 인간은 나를 살릴 쪽과 죽일 쪽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법.

 

보통 민족과 국가는 나를 살릴 쪽에 위치한다. 인간은 나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 속에서 태어난다. 그 속에서 진리인양 언어와 경제 구조를 공유한다. 이러한 대단위의 습관체계, 즉 문화는 교육을 통해 계승 발전하게 된다. 교육은 개인을 문화의 부품으로서 재생산한다. 나보다 먼저 존재했던 국가와 민족은 후손에게까지 물려주어야 할 지고의 가치다. 뭐라 딱 잘라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에 윤리적, 종교적 가치까지 부여받게 된다. 결국 국가와 민족은 나와 일체를 꿈꾼다.

 

이렇듯 국가와 민족은 생물학적 유기체를 사회적 로서 전환시키는 기계적 변환 시스템이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다움은 국가와 민족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거세한 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을의 노래는 국가와 민족이 뿌리 채 뽑혀지고 있는 과정 중에 과연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영학 선생님의 답변이다. ()이라는 명칭은 갑()과의 대비 속에서 상대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만을 표출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약점을 의식한 듯 각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노력이 역력하다. 특히, 등장인물들을 담고 있는 시공간의 표정을 인상적으로 잡아내었다.

 

을의 노래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나다움을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은 크게 윤리, 종교, 시대정신 그리고 인간애이다. 민이식에겐 왕비와의 개인적 인연과 혈연적 관계가, 안승우 등에겐 소중화의 화맥이 나다움을 구성하고 있는 타협 불가능 윤리적 근거다. 신이백이나 차미 등은 인내천의 종교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개화사상에 충실했던 김규식은 시대정신을 부르짖으면서 죽는다.

 

문제적 인물은 김백선이다. 그는 윤리, 종교, 시대정신으로는 범주화할 수 없는 묘한 인물로서 신분상승의 욕구나 경제적 동기로 의병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신분과 경제적 불평등이 표면적 구호가 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사랑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표출된 그의 도전과 눈물은 그 무엇으로도 찾을 수 없었던 나의 발견인 셈이다.

 

나라와 민족이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 어느 개인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흔들림은 단순한 왕복 운동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선택적 과정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건 밥만이 아니다. 삶의 의미! 생존해야 할 이유! 인간이기에 배고픈 가치! 그러나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나를 넘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없이는 찾을 수 없다.

 

나라 전체가 을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 을이요, 총검 앞에 죽어가는 유기체적 생명이 을이지만, 을과 갑의 이분법을 넘고자 도전하고 서로의 삶을 끌어안고 애도한다면,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새로운 세상은 이미 도래한 것이 아닐까.

 

국가와 민족이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오늘, 내가 을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있지도 않은 갑을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 남이 규정한 갑과 을의 이분대립적 세계에서 빠져나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을 찾아 도전해야 할 때이다. 김백선이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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