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회장님 신년사를 몇 번 써본 적이 있다. 증권유관단체라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고려하고, 관련 정책 등을 반영함은 물론 다른 단체의 신년사도 참고했어야 했지만, 그 땐 그냥 쓰기에 바빴다. 회장님의 신년사라는 생각에 진땀만 흘렸지 글은 도무지 써지질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다? 이건 전신마취 상태에서 퍼즐을 맞추는 것일게다. 상상이 안된다. 도대체 누가 할까 싶었는데 어느 지인의 소개로, 운명처럼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게 되었다.
51:49 던지, 99:1이던지 득표율과 상관없이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모든 국민은 그의 입에 주목한다. 이해가 뒤엉켜 있는 관계국들도 예외일 수 없다. 이라크 파병 이야기는 대표적 사례다. 국내의 파병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파견을 요청한 미국, 적국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이라크, 파병되는 병사와 그들의 부모, 이 모두에게 맞는 적당한(?) 말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걸까?
대통령의 말은 모두의 말이 되어 다르게 나온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내 편의 다른 말도 속상하긴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모두의 말이 되어 쏟아질 글을 밤새 고치는 기분은 어땠을까? 절박하고 안쓰러운 화장실 받아쓰기의 결과가 앞뒤 잘려 다른 글이 되었을 때의 심정은 또 오죽했을까?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울다가 웃었다. 몸에 털이 많아졌을 것이다
책은 글쓰기의 방법론에 맞춰진 두 분 대통령과 저자의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얇지 않은 두께지만 단박에 읽힐 만큼 재미있고 쉽게 쓰였다. 책 읽기와 쓰기의 보기 드문 훌륭한 교본이다. 또한 글이란 재주가 아니라 삶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책이다. 두 분 대통령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직접 배운 것처럼 삶과 글쓰기에 대한 얼개가 세워졌다. 친절하고 소상한 저자의 글쓰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회사원에게 글은 옷이다. 아무리 싫어도 벗을 수 없지만, 상황에 맞게 잘 갖춰입은 옷만큼 사람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도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삶이 묻어나는 옷 한벌 건져낸 듯 해서 거울 앞에서 뽐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