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사라는 개념이 신선(신기?)했고, 문자의 기원과 내포한 의미의 변화상과 정치적 활용의 양상을 겹겹이 쌓아 삼단 도시락통 같은 틀을 짠 구성도 흥미로웠고, 내용도 풍성했고 표지까지 예뻤으나 가끔 문장이 껄끄러웠다. 한국말이 다소 서투신듯. 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그런 경향이 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게 나한테만 당연하다는 것, 그래서 개떡같이 얘기한걸 찰떡같이 알아먹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잘 모른다. 대체로. 이 저자가 개떡같이 얘기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물론.기본적으로 정치사상에 대한 책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와 서구 개념의 번역어인 정치는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 전통의 정치가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의 정치라는 것은 어딘가 주파수를 맞춰나가는 작업과 닮았다는, 그런 이미지가 문득 떠올랐다. 그게 대체 뭐냐 싶기도 하지만.
글자에 정신이 팔려 저자가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글자들의 숲이다. 모여있어 더 매력적이다.
그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표정처럼 덤덤한 문장들이 좋았다. 문학적으로 채색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게 유치하거나 성급해보이지 않아서 그것도 좋았다.슬픔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은 그냥 ‘슬프다‘ 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박문수의 훌륭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한 일이 없고 박문수 혼자 다 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건 상당히 거슬린다. 이건 단순히 해석을 달리하는 게 아니라 버젓이 남아있는 사실 관계 자료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짓이다. 박문수를 제외한 당대의 정치가들을 모두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