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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얇고 작은 책이다. 두껍고 큰 책이기도 하다. 판형은 B6, 페이지수는 148쪽. 얇고 작다.글은 분량이 많지 않다. 일반적인 산문 편집 방식을 적용했다면 책 한 권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책보다는 팸플릿에 가까웠겠지.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양을 조절해서 페이지수를 늘렸다. 한 쪽에 문장 한 줄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하드커버로 마무리.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껍다. 처음에 책을 받아보고, 이 무슨 상술인가, 싶어 화가 났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간행된 원서 자체가 그런 편집이었다. 한국어판은 같은 편집 방식을 사용했을 뿐이다. 표지 디자인도 똑같다.
생각해보면 이런 편집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를테면 책이란 무엇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의심없이 가지고 있는 생각,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폴트세팅'된 생각 또한 책의 구성과 가격을 번갈아 재며 잠시나마 분노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편집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책값은 정당한가. 이런 걸 따지는 것이 혹시 촌스러운 짓은 아닌가 등등......이건 그냥 해 본 소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문학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말한다. 흔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 말은 이제 너무 많이 쓰여 클리셰가 되었지만, 저자는 여기에 나름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번, 클리셰가 되어 버린 말들을 다시 소환하여 먼지를 털어내고 자신이 해석한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원래 그런 의미였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반반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로 저자가 청자에게 혹은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을 직접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인문학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가르쳐준다.우리가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 생각해야 할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부딪히는 진부하고 하찮고 일상적인 현실이고 더 정확히는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정신의 틀, 디폴트세팅된 마음의 도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때, 다른 세팅으로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자유를 얻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우선 그 틀, 디폴트세팅이 존재함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악하는 것, 세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등이다. 인문학이 기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인데, 이 책에서 사실 인문학이 무엇이냐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저자는 디폴트세팅 상태에서 벗어나 지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태, 진정한 자유에 대해 말한다.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128쪽)
그리고 이어서 '이것이 물입니다.' 이 문장이 두 번 반복된다. 제목의 의미, 물의 의미가 여기서, 사실 그 전부터 충분히 짐작 가능하긴 하지만, 완전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자가 클리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보통 클리셰의 혐의를 피해가는 방법은 클리셰를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손을 많이 타지 않은 말들을 골라내서 사용하는 것이다. 클리셰를 패러디하여 조롱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은 클리셰의 혐의를 피한다기보다는 클리셰를 이용한다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클리셰를 피하지 않고 이용하지만 패러디하지 않는다. 도식화하자면 '클리셰-인정-하지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머리에 나오는 물고기의 일화부터가 클리셰의 성격이 짙다. 그리고 인정한다.
"물고기의 일화가 전하는 일차적인 논점은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보기 힘들고 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14-15쪽)
하지만
"성인이 되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인생의 최전선에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야말로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15쪽)
얼마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그러니 대학 졸업식 강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거론되는 상투적인 주제부터 따져봅시다. 즉, 인문교육이란 학생의 머리를 지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생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라는 주제 말입니다."(18쪽)
여기서는 인정이 먼저 나오고 클리셰가 뒤에 나오는데 일종의 도치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이어서 이 클리셰에 대해 예상되는 부정적인 반응을 제시한 다음 '하지만'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인문학적 클리셰가 절대로 무례한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교육의 장에서 받기 마련인 사고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것이 실제로 사고하는 능력에 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주제 선택에 관한 것이 학교교육의 주요 목적인 것입니다."(20쪽)
두 페이지 뒤에서 또 말한다.
"진부한 일화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클리셰의 활용은 주제의식과 밀접하다. 왜냐하면 앞서 보았듯 저자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야말로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들여다보고 헤집어보고 고쳐써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에서는 클리셰가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의 다른 글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언어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다. 작가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이 사람은 유독 심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에게 클리셰란 진부하고 상투적인 현실의 비유 혹은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고 현실이며, 그렇기에 세팅을 바꾸어 새롭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다.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런 것이고 내 생각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얇고 작고 두꺼우면서,꽤 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