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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의 사랑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오랜만에 만나는 박민정의 소설집이다.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2018년부터 2024년까지의 기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지나온 2018년~2024년을 잘 느낄 수 있다.
표제작인 '전교생의 사랑'을 읽으면 '나무위키'란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새로운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을 때 큰 생각을 갖지 않고 읽는 그 텍스트가 텍스트의 장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무위키와 더불어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 기록의 존립을 기록당한 사람이 좌우할 수 없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나의 사촌 리사'에서는 소설가 화자가 나온다. 소설가답게 상대의 말과 행동의 배면에 있는 것들을 파악해 나가는 것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실제 인물을 이야기에 차용할 때 소설가가 겪는 여러 지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단편이다.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요.'에서는 앞의 소설에 나온 리사가 편지로 한국의 친구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한다. 어떤 사람들은 AV배우가 태어났을 때부터 AV배우이며 좋아서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착취물을 소비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소비하는 그 영상 속에 담긴 인물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촬영된 것은 성관계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성관계말고 다 각자의 인생과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하루미, 봄'에서는 하루미가 나온다. 리사와 함께 활동을 하다가 AV를 찍게 된 인물이다. 몇 년 전에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가수와 MC가 일본 성인산업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시리즈가 있었던 것 같다. 짧은 클립으로 소개된 영상을 보았는데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한다.'는 식의 발언을 여성 배우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미의 생각에 깃대서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정말로 원해서 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원해서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방송에서 이야기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되면 가려지고 감춰진 '억지로,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희미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다시 주인공이 리사가 된다. 메가미의 마지막 멤버 마나와 교류하는 모습도 나온다. 여기서 다시 기록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기록되는 것에 대해서 '원한다.'와 '원치 않다.'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부모의 SNS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올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너무 귀여워서, 너무 예뻐서.' '나누'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상의 당사자가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사실들이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너무 유명해 졌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사람들은 유명해지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지면 좋은 거겠지만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상태'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루지 않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에서는 미묘한 부분들에 대해서 다룬다. 명품은 원하는 사람이 가지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묘하게 '누구는 명품을 가질 수 있고', '누구는 명품을 가질 수 없다.'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꼭 명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무리 짓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인공은 그 무리들에 잘 속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잘 속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무리 짓고 어떤 사람을 무리에 두기 좋아하며 어떻게 행동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미래의 윤리'에서는 코로나 시대에서의 대학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대학생활이라고 했을 때 당연한 것들. 예를 들어 큰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잔디밭에서 술을 마신다, MT를 간다, 체육대회를 한다. 이런 것들이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학교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수업을 하고 수업을 받는 행위만 학교생활의 99%로 행해지고, 그외 부수적인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이라는 형식이 생겼었는데 온라인 수업만 듣고 온라인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말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실제 존재하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란 점을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잊은 채 더 중요해진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이다. '교수자를 나와 같은 사람이란 점을 잊은 학생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vlog컨텐츠를 만들었다.'라는 상황은 아이러니 하면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듯 하다.
'약혼'은 그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살이 찌는 이유와 현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크게 의식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있는 것 같다.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약까지 먹는다. 꼭 다이어트약을 먹는다는 점이 이상하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이 찐 사람들에게 너무나 '살을 빼야 한다.'라는 생각을 주입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약혼이라.. 요즘에는 약혼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임신을 매개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엄마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과거 세대와 지금 세대에 어떤 의미로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단편이다.
'헤일리 하우스'에서는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주인공은 집이 없는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거불안이 튀어 나온 형태의 캐릭터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란 것이 있다. 이미지란 것은 외모에서도 형성되고 그 사람의 배경에서도 형성된다. 배경.. 배경이란 뭘까? 내가 나온 학교? 나의 학력?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태어난 출생지? 과거 세대에서는 그런 배경에 의한 선입견이 더 컸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선입견은 형태를 바꿔서 여전히 작용되고 있는 것 같다. 라라 엄마는 자신의 엄마의 그런 선입견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그런 배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그건 여전히 배경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인공도 라라엄마를 위해서 일하고 있고 자신이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한 번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것 같기도 하다.
9편의 단편은 모두 빛나고 신났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연수는 많은 남자가 대책 없이 아빠라는 존재를 꿈꾼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함께 살고 있는 약혼자가 그런 말을 하자 실로 답답해졌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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