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2011.3.4 - 창간호
교육공동체벗 편집부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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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창간호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의 삶과 교육이란 부재가 붙은 '북에서 온 친구들의 희망과 아픔'이란 글을 읽었다. 마음이 아팠다.  

새터민(북한에서 온 친구들을 그렇게 부른다) 청소년들은 탈북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 장기간 체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법 채류자 신분이 발각되면 강제로 송환되는 등 절박한 인권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탈북해서 남한에 입국할 때까지 평균 2년 정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새터민 친구들은 제 나이를 두 세살 낮춘 학년으로 학교에 편입하고 싶어한다. 북한에서 겪은 기근 때문인지 남한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어려보이는 것도 이러한 결정을 부추기게 된다고 한다.  

남한에 넘어와 이들이 겪는 고통을 글을 통해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아직 내 주변에는 탈북자가 없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중에서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없지만  

만약 그들을 담임하게 되거나 가르치게 된다면 내가 교사로서 그들을 대해야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이 외에도 <오늘의 교육>에는  교사로서 읽고 자신을 돌아보아야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 '학생인권조례는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교사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금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이 교사 조직을 비롯하여 많은 '어른 단체'들의 비협조와 무관심 속에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에서는 학교 현장의 왜곡과 거부 사례들이 알려지고 있다고도 한다.  

이는 우리 나라의 인권 수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삶과 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교육>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오늘의 교육> 창간호 특집 제목은 2011년 한국 교육, 야만의 지형도를 그리다'이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내면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라는 부재가 붙어 있기도 하다.  

그 중 한 꼭지인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적 불가능에 대한 사유'는 읽는 내내 우리 한국 교육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글쓴이는 맨 뒤에 이렇게 말한다.  

'나도, 우리들 모두도 폐허 위에 있으면서 또한 출발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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