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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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지은이는 정치철학을 전공한 이진민으로 현재 독일 뮌헨 근교 시골에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데 관심이 많다고 소개하는 저자는 『언니네 미술관』에 동료 여성들 세상의 딸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한다. 물론 남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된다. 이 책은 미술을 매개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

아홉 개의 단어
무한히 확장하는 이야기


저자는 함께 살펴 보고 싶은 아홉 개의 단어를 골라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근육, 마녀, 거울, 슬픔, 서투름, 사소함 익숙함 하찮음,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

각 단어에 담긴 글들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뻗어나간다. 저자는 아홉 개의 단어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결국 비슷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로 모인다고 말한다. 저자의 글들은 세상의 딸과 아들들에게 건네는 힘과 위로의 마음이다.

이 책은 저자가 감상하고 읽어온 예술작품, 책과 글, 대중문화 들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 한편의 글은 하나의 예술 작품에서,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하여 이야기가 확장하고 뻗어나간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제일 첫 번째 단어 ‘근육’에 포함된 글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조각에서 시작한다. 근육질의 남성이 턱을 괴고 앉아있는 그 유명한 조작. 쫙쫙 갈라진 근육을 가진 남성을 형상화한 이 조각의 원제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이었다. 한편 생각하고 글 쓰는 사람에게 근육이 필요할까? 알고 보니 생각하는 사람의 대표주자였던 소크라테스는 석공 출신의 단단한 몸을 가졌고, 데카르트는 펜싱에 대한 논문을 쓸 만큼 펜싱 실력이 상당했다고 한다. 저자는 진정한 먹물은 허여멀건하고 부드러울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벽돌책을 쓰는 힘은 엉덩이를 붙이고 장시간 앉아 있을 수 있는 체력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리고 글은 방향을 틀어 여성들의 근육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한다. 저자는 본인의 학창 시절 체육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녀리고 부드러운 몸을 가지길 강요받는 여성들의 신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예술작품이 바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나는 솔직히 벌거벗은 여체를 그린 이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비너스의 배에 근육이 잡혀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그리고 비너스를 묘사하는 저자의 입담에 빵빵 터졌다. 근래에 읽은 책 중에 권여선 작가의 산문집 『술꾼들의 모국어』 이후 가장 많이 웃었다). 비너스의 복근에 대해 고찰하던 이야기는 흘러 흘러 저자가 코로나19 때 시작한 운동과 근육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흘러간다.
저자는 남성들의 관점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몸보단 저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단단하게 기능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자 한다. 저자는 복근이 삶의 걸림돌을 만나 자빠져 있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산다는 것은 동사다.’(p43)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최선을 다해 동사로 살아갈 근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세상의 딸들과 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려 하기에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그러나 일상 곳곳에 숨겨진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너무 뾰족하지 않게 예리하다. 저자는 재치와 유머를 담아 이야기하지만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그의 사유는 깊고 단단하다. 앞으로 나올 저자의 책들도 기대가 된다. 저자는 여전히 가슴속에 쓰고 싶은 책이 여러 권 있다고 하니 독자로서 더불어 행복하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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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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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이자 작가인 샤를 페펭은 어제는 과거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는 가버리지 않고 우리의 현재에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과거와 잘 지내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장단점, 취향과 혐오, 꿈과 야망, 공포와 불안, 기쁨과 슬픔, 우리의 모든 반응과 세계관, 우리의 습관 모두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현재에는 과거가 생생히 살아 있다. 우리의 과거는 이제 작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리운다.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과거와 잘 지내는 방법을 들려준다. 현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 뜻대로 결코 따라주지 않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기억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앙리 베르그송의 ‘기억’에 대한 철학과 그의 예리한 직관을 중심으로 기억과 의식,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철학적 성찰의 중심에 둔 철학자이다. 베르그송의 통찰은 기억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역동적이며 살아 숨 쉬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베르그송은 과거가 기억 속에서 무한히 지속되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기억력의 중심에 있는 이 적극적 힘은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생의 원리를 구성한다. 베르그송의 사유는 신경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일맥상통한다. 신경과학적 발견은 객관적 기억은 없고 모든 기억은 역동적 재구성이라는 베르그송의 직관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는 너무나 힘이 세지만 족쇄와 같진 않다. 과거의 기억은 꺼내질 때마다 조금씩 변화한다. 현재의 맥락과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형태로 소환된다. 신경과학은 우리의 뇌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결국에는’ 과거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재연할 수 있다. 저자는 베르그송의 통찰을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통해 구체화한다. 디디에 에리봉은 이 책에서 자신의 기억을 수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의 유산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새롭게 재해석해 자신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 앙리 베르그송, 한나 아렌트 등의 철학자들의 사유, 디디에 에리봉, 마르셀 프루스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몽테뉴 등의 책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어느 축구 선수의 슈팅과 가수의 노래, 기억 재공고화 요법과 같은 심리 요법 등을 통해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존재하며 과거가 족쇄가 아니라 생의 에너지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삶이 충만하지 못했던 것은 과거를 제대로 껴안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이 정도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산다는 것은 늘 숙제같이 느껴졌다. 매 순간 여기에 있는 과거를 돌아보는 작업이 내게도 필요하구나. 이것이 이 책이 준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예전에 사서 읽었단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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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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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각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이래 2300년 넘게 계승돼 온, ‘논리’를 의미한다.

지은이 코디정은 언어활동가이자 변리사이며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에서 지식재산법을 가르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논리력 향상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괘씸한 철학 번역」(2023), 「논증과 설득」(2017)을 포함하여 열 권의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저자의 폭넓고 다양한 경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저자는 대중을 위한 지식 커뮤니케이터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공통 무기인 ‘머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생각의 도구인 ‘논리력’을 키워야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 『생각의 기술』을 통해 논리의 기초부터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는지, 또 어떤 오류에 빠지고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는지, 실제 생활 속에서 논리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준다. 또 네 편의 부록에서는 논리학에 대한 Q&A,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법과 논리적인 글쓰기, 논리학이 주도하는 철학의 계보를 담고 있다.

먼저 논리란 무엇인가. 저자는 논리는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라고 이 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설명한다. 논리는 세상의 원리도 아니고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당은 자연과학 학문과도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논리가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이기에 논리학은 이것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단어가 탄생하고 그 단어가 다른 단어들과 연결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이 어떻게 다른 문장과 연결되는지 탐구하는 것이 바로 논리학이다. 논리는 세상의 원리나 사물의 이치가 아니다. 논리학이란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발견한 지식이다.

논리는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이기에, 우리 대부분은 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 따로 논리를 배워야 할까? 바로 우리 인간은 세상을 인간의 논리로 이해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로 세상과 인간과 사물과 교감하고 살아간다. 삶 속에 던져진 우리는 온갖 존재들과 온갖 이유로 갈등하고 불화하고 충돌한다. 삶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매 순간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지의 연속이다. 이때 논리력이 좋다면 문제 해결을 훨씬 슬기롭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논리의 전체 구조, 개념(사전의 오류, 개념의 역할, 의미의 크기, 의미의 선명함, 개념은 소속을 갖는다), 판단(일반 논리학과 수리 논리학의 차이, 논리적인 사람과 표상적인 사람, 종합명제와 분석명제, 판단의 종류), 추론(과거의 판단들, 생각의 도약, 오성과 이성 등), 토대 구조 모형, 연역과 귀납, 경험, 유추, 확률, 변증, 설득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복원한 칸트의 철학 안에 자리한 논리 세계의 핵심을 설명한다. 포함된 내용의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은데 굉장히 이해가 잘 된다. 왜냐면 글이 논리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 수준보다 훨씬 높은 책들과 번역서 위주로 읽어온 나의 읽기를 되돌아보았다. 이 책은 앞으로 계속해서 만나게 될 새로운 주장과 개념들을 조금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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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
수잔네 아벨 지음, 김동언 옮김 / 뒤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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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감독으로 활동한 수잔네 아벨의 첫 장편소설로 2021년 출간된 이래 독일 아마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이라 한다. 독일 아마존에서는 가족소설로 분류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출간될 당시에도 여전히 독일 아마존 가족소설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 수잔네 아벨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가정에는 비밀이 있고 이 소설 『그레첸을 멀리하라-불가능한 사랑』은 이러한 가족의 비밀이 밝혀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썼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정통으로 겪은 그레타라는 여성과 그녀의 아들 톰이다. 소설은 독일의 잘나가는 뉴스 앵커인 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톰은 그의 84세 어머니 그레타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자 혼자 살고 있던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톰은 외아들이고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톰이 알지 못했던 그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톰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때때로 몇 개월간 깊은 슬픔과 우울에 빠져들어 자신을 방치했던 과거에 대해 정리되지 못한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 그레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어린 톰은 어머니의 우울과 슬픔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톰은 치매에 걸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어머니가 던지는 힌트들을 방송국 동료인 제인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추적해간다. 어머니 그레타의 과거를 점점 밝혀가면서 톰은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불가능했던 사랑을 말이다. 이 책의 부제인 ‘불가능한 사랑’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할퀴고 간 야만적인 세상에서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레타의 사랑을 뜻한다.

​소설은 현재(톰의 시점_어머니 그레타의 과거를 밝혀내려는 사람)과 과거(그레타의 시점_제2차 세계대전을 겪어냈고 거기서 불가능한 사랑을 했던 사람)를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저자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하는데 절묘한 호흡으로 한 장의 이야기를 끝내고 새로운 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한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나의 궁금증을 폭발시키고, 애간장을 녹이고, 마음을 간질이고, 가슴이 미어지고, 그 참혹함에 내장이 뒤틀리고, 내가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에서도 어떻게든 사람들의 강인함에 일종의 숭고함을 느낀다.

나는 그간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수용소 문학들을 비롯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에세이들을 조금씩 읽어왔다. 대표적으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에디트 에바 에거의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유대이었고 절멸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의 관점으로 쓰였다.

반면 이번 작품 『그레첸을 멀리하라』의 주인공은 독일 여성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레타 쇤나이히는 1931년 7월 3일 생으로 동프로이센 아일라우에서 나고 자랐다. 여덟 살의 여아 아이로 되돌아간 그레타는 그 시대 보통 독일 사람이 그러했듯 그녀의 지도자 히틀러를 숭배했다. 어린 그레타는 어서 열 살이 소녀단원에 입단하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다. 그러다가 그들의 총통이 전쟁을 선언하고 전쟁이 터지자 그레타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레타와 그녀의 가족들-외할아버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은 가혹한 역사에 내던져진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나는 일체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현대인이자 특수한 맥락에서 나고 나란 나의 시점으로 감히 재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료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듣고 또 듣고 울고 웃고 참담해할 뿐이다.

저자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하는데 절묘한 호흡으로 한 장의 이야기를 끝내고 새로운 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한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나의 궁금증을 폭발시키고 애간장을 녹이고 마음을 미어지게 만든다. 젊은 그레타와 밥의 사랑의 시작은 내 마음을 간질인다. 그들의 불가능했던 사랑은 내 가슴이 미어지게 만든다. 전쟁의 참혹함과 독일 여성들이 겪었던 일들에 나의 내장이 뒤틀린다. 그럼에도 생존해 내고 이윽고 살아내는 그들의 강인함에 숭고함을 느낀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전쟁의 상흔을 읽으면서 온갖 상념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리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에 먹먹함을 느낀다. 어떻게든 살아냈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조용히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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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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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가 편지로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이다. 21세기 사회학 거인 바우만과 소설가 마체오는 ‘악명 높은 논쟁거리, 즉 문학(그리고 예술 전반)과 사회학(과학적 지위를 주장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의 관계’(p9)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유동성’의 사상가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적대 관계는커녕 경쟁 관계에도 있지 않으며 이 둘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우만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우리 세계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탐구하고 상이한 유형의 ‘데이터’를 찾고 생산해 내지만, 그 생산물에는 같은 원천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흔적이 담겨 있다’(p17-18)고 말한다.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협력할 경우에만 인간 조건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저서로 리카르도 마체오와 주고받은 총 2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우리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사상가 바우만은 이 책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우먼이 서문에서 설명한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는 이 책의 첫 번째 대화 <1. 두 자매>로 이어진다. 마체오는 '오늘날 우리는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생명 없는 말들을 배가 터질 정도로 강제로 폭식당하고 있다'(22페이지)라고 말한다.

이미 분신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으로 24시간 동안 온갖 말들에 침식당하고 있지만 어째선지 나는 나의 삶을 온당하기는커녕 적당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온갖 매체에서 온갖 분야의 유용한 말들을 해대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공허하다. 나는 이러한 말들에서는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로티, 마사 누스바움, 휴 드레이퍼스 등 많은 이들은 우리의 대화를 내가 읽어보지 못한 문학을 지팡이 삼아 시작했다. 나는 뭉툭한 나의 사고로는 결코 파악하기 힘든 이 세상을 그들의 언어를 거쳐 조금이라도 빨리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왜 읽지 않는 문학 작품 때문에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의 읽기에 먼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음을 느꼈다. 한참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온갖 사상가들이 논했던 담론들이 소설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상가들이 말했던 사회적 조건과 시공간의 우연성이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주인공들을 통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상가들의 언어는 인식적 이해를 넘어선 체험이 되어갔다.

“ 문학과 사회학은 정말로 '자매'입니다.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은 그냥 자매가 아니라 샴쌍둥이 자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양분의 공급 기관과 소화 기관을 공유하고 있어 외과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 말입니다.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샴쌍둥이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운명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__지그문트 바우만

두 사람의 대화에는 바우만의 주요 저서들과 사상을 비롯하여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찢어내고자 시도한 사상가들과 이 베일을 그려냈던 문학작품들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이 책은 300그램이 채 안 되는 B6 크기의 작은 크기지만 책의 밀도는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높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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