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요, 투우사여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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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군부정권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1986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40대 게이 로카의 '반독재 러브스토리'이다.

로카는 40대 은퇴한 드랙퀸으로 잘생긴 20대 초반의 대학생 카를로스를 우연히 알게 된다. 카를로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로카는 카를로스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

로카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청년 카를로스는 피노체트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애국 전선의 조직원으로, 사람이 아닌 자신의 조국 칠레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카를로스는 우연히 알게된 로카의 집을 비밀 아지트 삼아 다른 조직원들과 거사를 준비한다. 이 거사는 1986년 9월 7일 피노체트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한 매복 공격이었던 ‘20세기 작전’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사건 당일을 촘촘하게 묘사한다. 로카와 피노체트의 행적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공격 바로 직전의 긴박한 순간들은 5분, 1분 단위로까지 쪼개서 보여준다.

독자인 나는 로카와 한마음이 되어 카를로스가 제발 무사하길 기도한다. 카를로스 제발 무사해. 다치지 마. 무엇보다 피노체트에게 발각되지 마. 제발. 그리고 카를로스뿐만 아니라 그의 애국전선 동료들도 모두 무사하길 바란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걱정한다. 로카의 이반 친구들도, 로카를 ‘앞집 미친년’이라 불렀던 동네 주민들도, 칠레 산티아고의 모든 사람들을 걱정한다.

매복 공격으로 인한 두려움과 분노에 미쳐날뛰는 피노체트에게 혹시나 마구잡이로 붙들려 끌려가 고문당하고 나쁜 일을 겪게 될까 봐 작품 후반부에서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로카가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때까지 내 심장은 남아나질 않았다.


🌿1986년 칠레
1986년 칠레는 피노체트 군사정부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해 9월 7일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 전선은 주말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피노체트에게 무장 공격을 감행했다. '20세기 작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된다.

❝지난 시위의 결과, 야당의 성명, 독재자의 협박, 9월의 집회 소식. 이번엔 진짜야, 86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86년이 역사적인 해가 될 거야. 모두 공원으로 가자고, 최루탄을 견디게 해줄 레몬과 소금을 챙기자고. 그와 함께 밤낮으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속보가 끝도 없이, 정말 끝도 없이 쏟아졌다.❞ (13쪽)

앞서 말했듯 로카를 한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잘생긴 대학생 혁명가 카를로스가 바로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 전선에 속해있다. 카를로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위장명이며, 로카의 집에 드나들었던 것은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1986년 칠레의 산티아고의 모습이 어땠는지 작품 곳곳에 묘사가 되어 있다. 군부 독재에 기생하는 자들은 웅장한 저택에서 호의호식할 때 다수의 칠레 사람들은 '독재 정권의 곤봉 아래'에서 고통받았다. 주말마다 거리는 시위로 뜨거웠고, 경찰들은 자유를 외치는 군중들에게 더러운 물대포를 쏘아댔다. 이 잔혹한 폭력 경찰들은 여자들, 노인들, 학생들, 아이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 독재에 맞서다가 실종된 남편과 자식을 기다리는 여자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인쇄한 전단지를 안고 거리에 나섰다.

정치적 불안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안도 가중되었다. 거리의 모퉁이마다 '일자리도 미래도 없는 젊은 남자들이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어딜 가나 부랑자들이 가득했다. 작품은 당시 칠레 산티아고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작품 속 또 하나의 묘미는 피노체트의 수다스러운 와이프를 통해 묘사되는 군부 독재정권의 민낯과 칠레의 상황이다. 그녀는 남편 아우구스토를 행해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 독자들은 그녀의 지껄임 속에서 칠레의 절망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 정권의 잔혹하고 기만적이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 민낯을 확인한다.

❝아우구스토, 나 좀 봐, 당신만큼이나 주름살이 생겼어, 내가 당신보다 훨씬 젊은데. 이건 당신 탓이야, 당신 옆에 있으면서 나쁜 일, 놀랄 일, 화나는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 그렇다고. 그 어떤 여자가 전 세계 언론이 자기 남편 보고 폭군이다, 독재자다, 살인마다, 떠들어대는 걸 참고 견딜 수 있겠어.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지. 칠레 국민은 다 알잖아. 당신이 조국을 구했다는걸. 그래도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는 사실은 변하질 않아. 그리고 내가 또 얘기하는 거지만, 자기들이 작가랍시고 설치는 그 가난뱅이 공산주의자들이 맨날 당신을 들먹이면서 입을 나불대는 꼴말이야, 그거 정말 보기 싫어, 진짜 악몽 같아. 그게 다 망명했던 그놈들을 당신이 다시 칠레에 받아줘서 그런 거 아냐. (...) 내가 그 마르크시스트 문인들, 그 일당들은 절대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잖아. (...)❞ (136p)

🌿로카와 카를로스
로카는 젊고 잘생긴 대학생 카를로스를 보자마자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든다. 카를로스는 자신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들어주고 싶어 하는 로카의 호의를 적절하게 이용한다. 카를로스는 로카의 집을 비밀 아지트 삼아 발각되면 안 되는 인쇄물을 담은 박스들과 무기를 숨기고, 로카는 이것을 아름답게 꾸며 소파와 카우치와 의자로 탈바꿈시킨다. 카를로스와 다른 조직원들은 로카의 집에서 비밀 모임을 가지고, 로카는 그들을 위해 다락방을 내준다. 로카는 애국 전선 청년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계속하여 준다. 로카는 가끔 스스로를 배운 것이 적고 정치에는 무관심한 늙은 게이년이라 비하하지만, 로카는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영리하며 용기 넘치는 여인이다. 피크닉을 가장한 매복 공격 장소 사전 탐사 때는 특유의 유쾌함과 영리한 기지를 활용해서 위기를 모면하고, 카를로스의 부탁으로 위험한 물건을 운반할 때 맞닥뜨린 폭력 경찰의 단속을 그녀만의 대담함과 강인한 용기로 헤치고 나간다.

그리고 로카는 무엇보다 카를로스를 돌본다. 거사를 준비하는 이 청년의 긴장을 잠시나마 풀어주고 그를 웃게 해준다. 로카는 카를로스가 하는 말은 그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그 속에서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단서를 찾는다.

로카의 카를로스를 향한 사랑을 읽어가면서 나는 때때로 슬펐다. 로카는 잔혹하고 거친 삶을 살았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갈까. 작품의 도입부에서는 그렇게 어린 남자애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얼른 접으라고 마음만 아플 뿐이라고 나 역시 그녀의 이반 친구들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알게 된다. 그녀가 계산 따위는 모르고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기에 카를로스를 웃게 했고, 긴장에 지친 그를 잠시나마 쉬게 해주었고, 애국 전선의 비밀스러운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작품의 군데 군데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로카의 삶과 사랑이 안타까워서, 당시 칠레 국민들이 처한 잔혹한 현실이 암담하고 화가 나서 가슴이 죄여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목이 멨고 눈물이 맺혔다. 이 작품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장면은 상세히 쓰지 않겠다. 대신 읽었던 것을 다시 읽으며 타이핑하는 지금 이 순간도 목이 메게 하는 바로 그 대목을 남겨두어야지.

❝네가 그렇게 물어봐 준 걸 평생 감사하며 살게. 꼭 청혼하는 것 같아서. (...)

내 사랑 카를로스, 내게 품을 내어주는 네 그 순수함 말이야, 나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하지만 내 나이에 그렇게 도망칠 수는 없거든, 꿈을 좇아 떠나는 미친 늙은이처럼. 우리의 만남이 가능했던 건,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손만 잡고 있었기 때문이야. 여기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강아지처럼 네게 사랑에 빠졌고, 너는 그냥 내가 사랑하도록 놔둔 거야. 쿠바에 가면,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될까? 내가 그런 희망을 안고 쿠바에 가면 거기서 우린 어떻게 될까...... "너의 침묵은 이미 내게 안녕이라고 말하네." (...) 지금 너의 침묵은 정말 잔인한 진실이지만, 동시에 솔직한 답이기도 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까. 사랑스러운 카를로스, 나한테 한 습격도 실패하고 말았네?❞ (261-262p)

나는 로카를 지금껏 픽션의 세계 속에서 만나본 가장 멋진 여인 중 한 명으로 기억할 것이다. 로카에 대한 내 마음을 별도의 글로 받치고 싶을 정도이다. 로카의 이반 친구들과 그녀의 '엄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고, 그녀가 칠레의 현실에 각성하게 되어가는 순간들도 이야기 하고 싶다. 이 독후감에서는 로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반에 반에 반도 못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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