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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훈의 랫시티 - 완벽한 세계 유니버스25가 보여준 디스토피아
에드먼드 램스던 외 지음, 최지현 외 옮김 / 씨브레인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존 칼훈의 랫 시티』는 존 칼훈(1917~1995)이라는 생태학자이자 사회학자(인류학에도 정통한 도시 이론가이기도 한)가 수행했던 쥐 군집 실험 연구 내용과 그의 연구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통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공저자 존 애덤스와 에드먼드 램스던은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존 칼훈의 실험의 역사적 문화적 영향을 분석했다. 존 칼훈은 인구 밀도와 사회 구조가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책의 저자들은 존 칼훈의 연구가 동물 실험을 넘어 인류 사회의 미래를 향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고 본다.
✅랫 시티가 과밀해지자 유토피아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칼훈의 연구는 인구 밀도가 높아질 때 나타나는 사회적 행동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풍부한 자원과 안전한 환경이 제공된 이상적인 쥐의 도시 '랫 시티'를 설계했다. 랫 시티에 살게 된 쥐들은 처음에는 쾌적한 삶을 누렸다. 먹이, 물, 잠자리, 둥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거나 노력할 필요도 없다. 포식자도 경쟁자도 없다. 쥐들은 가족을 이루고 번식했다. 랫 시티에서 유일한 위험 요소는 공간의 크기일 뿐이다.
세대가 거듭되며 쥐 개체 수가 증가한다. 유니버스는 혼잡해진다. 랫 시티가 과밀해지자 점점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유아 방치가 증가하고, 일반적인 짝짓기가 사라지고 공격적이고 비생식성 성행위가 나타난다. 둥지 안에 있는 새끼 쥐들은 공격받고, 암컷 쥐들은 수컷 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쥐 개체 수가 적었던 초창기의 유토피아적 랫 시티는 지옥으로 바뀌게 된다.
칼훈의 연구가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실험에는 직접적인 외부 자극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스트레스 연구는 독성 물질 주사, 강제 운동, 절단 등과 같은 끔찍한 외부 자극을 가해 스트레스 연구를 수행했다. 그러나 칼훈의 실험에서는 쥐에게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지 않는다. 그저 쥐들이 높은 밀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걸 막지 않고 관찰했을 뿐이다. 쥐들은 칼훈의 랫 시티 안에서 자발적으로 붕괴했다.
✅랫 시티에서 살아남은 쥐는 히키코모리 쥐였다
한편 랫 시티에서 마지막까지 잘 버틴 쥐들은 사회적 단절을 생존 전략을 택한 쥐들이었다. 스스로를 격리한 히키코모리 쥐들은 사회 문제(집단 패싸움, 집단 강간)는 방관하고, 교미를 하지도 않지도 않는다. 스스로에게만 몰두한 이 히키코모리들을 칼 훈은 '아름다운 자들'이라 불렀는데, 이 쥐들은 잘 살다가 자연사했다. 랫 시티에서의 히키코모리의 쥐의 생존과 장수(?)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칼훈의 연구는 고밀도 생활 방식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그의 연구는 정신의학, 생태학, 행동학, 사회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연구는 오용되기도 하고, 때때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책을 번역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소속 뇌과학자 최지현은 칼훈의 실험에서 인구 증가와 함께 나타나는 사회성 붕괴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관찰되는 현상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한다. 역자는 출산율 저하 및 사회적 고립 문제 해결 과제를 기획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옮긴이 서문에서는 칼훈의 실험에서 관찰한 쥐 개체군의 인구 곡선이 대한민국의 인구통계 곡선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정말 소름 끼치도록 유사하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한국뇌연구원 소속 구자욱 단장은 칼훈의 랫 시티 실험은 "과학의 언어로 쓰인 현대 도시를 향한 실험적 우화"라고 표현한다. 칼훈은 그의 40여 년의 연구를 통해 인류가 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는 낙관적이면서도 절박한 메시지를 전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곡해되거나 사라졌고, 그의 과학적 경력의 기록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책은 칼훈의 연구에서 찾아난 귀중한 통찰을 독자에게 전한다. 이 책을 읽고 재확인한 것은 초저출산 현상, 비혼의 증가, 자발적인 사회적 단절 등은 최재천 교수님 말처럼 우리 인간동물이 살아남기 위한 생태학적 적응 전략이라는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