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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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이 쓴 철학 에세이로, '자리'라는 물리적·지리적·계층적·사회적·정치적 공간이자 내면의 공간을 탐구한다. 이 책은 조르주 페렉, 아니 에르노,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가 등의 문학 작품들과, 하이데거, 질 들뢰즈,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프란츠 파뇽, 샹탈 자케, 캐럴 길리건, 카미유 리키에르 등의 철학적 사회학적 텍스트들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제자리'라는 실존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저자는 세상에는 정착민과 유목민, 대지의 인간과 바람의 인간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고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사람은 자신이 정주하여 사는 곳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떤 장소나 관계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구분은 '향수 어린 (가짜) 양자택일'일뿐이다. 저자는 '제자리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조르주 페렉의 『공간의 종류들』 속 텍스트를 가져온다.



향수 어린 (가짜) 양자택일

뿌리내리기, 뿌리를 되찾거나 만들어 내기, 공간에서 당신의 것이 될 장소를 취하기, 1밀리미터씩 "자기만의 집"으로 (...) 만들어나나기. (...) 혹은 옷들만 짊어지기,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기, 호텔에 살기, 호텔을 자주 옮기기, 도시를 바꾸기, 나라를 바꾸기, (...) 어디에도 내 집에 있다고 느끼지 않기, 그러나 거의 모든 곳에서 잘 지내기.


우리는 늘 움직이는 존재다. 우리는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물리적 이동 없이 내면의 먼 곳으로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묾이란 늘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다. 우리의 머묾은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사회·지리·정치적 기착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제자리'를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존재다. 우리의 불안은 '제자리'가 어딘가에는 있다는 모호한 기대와 '제자리'가 우리의 안녕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한다.

이 책은 '제자리'에 대한 오해와 기대를 걷어내고 '자리옮김'의 해방적 즐거움을 일깨운다. 저자의 사유는 앞서 말한 풍부한 문학적 철학적 텍스트 들과 함께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로 서서히 젖어든다.


문득 삶을 이어주는 끈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고, 소위 실존의 연속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 무언가 깨지고, 변질되고, 해체되었다. 화설의 궤적과도 같이 자신감 넘치는 삶의 표상이,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에 대한 내적인 믿음이 주는 온기가 희미해져 간다. 그러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그곳에 몸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네게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주체는 세상과 한 몸이길 중단하고, 그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된다. 거리가 생기고, 의심이 스며들며, 소속감이 자취를 감춘다. 현실에 발을 담그고, 기입되고, 참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흐려진다. 실존의 의미에 대한 믿음, 확신과 인정을 제공하는 자리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주제를 지지하고 지탱해 주지 않는다. 세상이 흔들린다. 혹은 세상이 주체로부터 멀어진다. 주체는 궤도를 따라 돌기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체념의 연속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성숙이라는 단어가 체념이라는 단어와 상당 부분 교차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환대'라는 개념을 배웠고, '환대 받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이 과정 속에 내 안의 소란스러운 감정은 결코 이해받을 수도 어느 특정한 누군가나 집단에 수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을 담아 목소리로 표현하면 이는 곧 누군가와 집단에 불편을 야기하게 될 테니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감정 자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감정 자체를 해부하자 이 감정은 오로지 내 스스로에게서 기인하여 비롯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매 순간 자기 검열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자는 캐리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의 텍스트를 가져온다.



어린 소녀들의 자기 검열 과정이 분석된다. 소녀들은 실제로 느끼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통찰력은 체계적으로 평가절하당하기에 "통찰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스스로 금한다. 소녀들의 의견은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그들은 소리를 낮추고 개성을 조금도 표현하지 않는 평이하고 억양 없는 목소리를 낸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싣지 않아 거짓되기 들리는 중립적인 목소리뿐이다. (...) 목소리의 울림은 사회적 "입문"이라는 시련의 과정에서 변화를 겪으며, 특정 방식으로 울리는 특정 테시투라에 맞춰져 특정한 반응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인종, 계급, 젠더에 따른 '자리찾기'의 문제에 대하여 당연히 이야기한다. 나는 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자리 찾기는 감히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 더 뒤따른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만 사는 나는 인종의 문제로 정체성에 위협을 당하지 않았다. 나의 실존이 인종으로 평가받은 경험은 없다. 나의 성별에 따른 제약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오로지 그들의 피부색과 젠더로 인해 자리에서 거부당하고 무시당한다.


자신을 지우라는 명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명령은 흑인, 마그레브 출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협을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내면화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했던 조언들("갑자기 뛰지 마라. 후드를 쓰지 마라.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마라. 무기가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과 성적 학대나 폭력을 막기 위한 여성들의 습관("특정 지역에 혼자 들어가지 마라. 비어 있는 열차를 타지 마라. 길에서는 커플들을 따라가라.")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여러 사회 집단을 짓누르는 폭력은 각자들 당하는 그들 의식 한켠에는 항상 위협에 대한 예측, 삶이 연약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책은 최근에 구입해서 읽은 다이앤 앤슨의 『외로움의 책』과 함께 가장 많은 위로가 되었다. 두 책은 나의 정신적 물질적 삶을 가득 채웠던 이슈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귀 기울여 듣고자 한 나의 마음을 헤아린다. 다양한 문학적 철학적 텍스트로 읽기의 즐거움도 준다.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다. 우리 삶 속에 내재한 긴장과 불안과 외로움과 덧없음 등이 공존의 대상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러한 정동의 세계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읽는다. 나는 이 속에서 나 자신을 망각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와 잘 맞는 세계라는 환상에 분별 있게 머물 때보다 냉담하고 척박한 자리에 있을 때 실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보다 메마르고 거칠고 가혹한 현실에 대한 또다른 실험은 우리에게 경험의 다양성을 열어준다.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다 보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가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자리없음'의 불안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떨림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역사학자 로맹 베르트랑의 주장처럼 "안에"에 존재하기보다는 안주하지 않고 항상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보다 나은 인간이 된다. 보다 나은 인간이란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인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존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인간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정된 자리가 없다는 것, 하나의 사회적 공간에서 다른 사회적 공간으로,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자리에 처함으로써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간격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승인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모든 형식의 인간 연구에 필요한 비판적 거리를 만들어 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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