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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4월
평점 :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과 함께 20세기 SF를 대표하는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메타픽션 기법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은 『절대 진공』(1971)과 『상상된 위대함』(1973) 두 권을 묶은 책으로 정보라 소설가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절대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 책들에 대한 서평이고 『상상된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는 책의 서문을 모은 것이다.
이번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렘이 SF 문학의 철학자라는 것과 그가 ‘어마어마한 천재였다는 사실’(정보라 소설가의 평)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메타픽션 소설집은 읽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상당히 난해하다. 그는 의학적+과학적+공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문학과 예술, 문화, 종교, 정치, 기술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절대 진공』 편에 담긴 글 「솔랑주 마리오트,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 」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 (…) 그는 문학이 언제나 독자의 심리상태에 기생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책은 독자의 머릿속 가구들을 당연히 재배치할 수 있지만, 그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그 머릿속에 가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내 머릿속에는 렘의 작품을 읽어내기 위한 가구들을 다채롭게 갖추어 놓았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완전히 소화하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버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 보면 많은 곳에 줄을 긋게 된다. SF 문학은 언제나 당대의 가장 첨예한 비평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절대 진공』편의 두 작품 「사이먼 메릴, 『섹스플로전』 」과 「알프레트 첼러만, 『루이 16세 중장』 」 이었다. 『섹스플로전』은 온갖 성적인 행위와 취향들이 사회 내에 용인되고 인간은 더욱 강한 자극과 쾌락을 좇는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 성적인 행위의 자리에 다른 행위들, 이를테면 소비중독, 음식중독, 콘텐츠 남용 등의 행위를 대치하여 읽었다. 『루이 16세 중장』 은 히틀러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왕국을 만들어 살아가는 가상의 소설에 대한 서평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돈과 권력, 폭력을 얼마나 탐하는지를 다루는 글들은 항상 흥미롭다.
『상상된 위대함』은 『절대 진공』편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이 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첫 번째 글 「상상된 위대함」이다. 평소 책의 서문을 매우 중시하는 독자로서 글 쓰는 사람들에게 ‘서문’이 어떤 것인지 그 영업 비밀을 살짝 염탐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나는 렘의 글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의 어마어마한 박식함을 몸소 체험했으니 다음 읽기는 자연스레 그의 진짜 소설이 되겠다. 책 읽기의 묘미는 많이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디지만 꾸준히 읽어온 나의 읽기는 SF 거장들이 구축한 세계를 여행하는데 밑천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렘의 작품 중 무엇을 먼저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woojoos_story 모집
#현대문학 #hdmhbook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SF 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