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 - 문학 노트 오에 컬렉션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상민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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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심'이라 일컬어졌던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1월 31일 일본 에히메현 기타군 우치코초 오세 마을에서 유서 깊은 무사 집안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2023년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열 살이 되던 해 전쟁이 끝났고 일본은 패전국이 되었다. 이른 나이부터 전쟁과 군국주의 참혹함과 실상을 깨달은 그는 성장하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던 실천적 지식인이 되었다. 그의 관심은 일본 사회 문제에 한정되지 않았고 국내외 정치 이슈를 포함하여 장애, 종교, 인류 구원 등의 주제로 나아갔다. 그가 40세였던 1976년에는 독재에 항거하던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호소하며 지식인들과 48시간 단식투쟁을 했던 것이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59세 때 일왕이 주는 문화 훈장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이 한국에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이 침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비판하는 등 친한파 인사였다.

작가로서의 오에 겐자부로는 도쿄대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8년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대학생 때 데뷔하여 스타 작가가 되어 직업 작가로서 평생 동안 그는 장편소설 33작품, 중단편 66작품을 비롯하여 논픽션, 에세이, 평론, 극본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 작가로 활동했다. 이 책 『쓰는 행위』에서는 평생을 '쓰는 행위' 특히 소설을 쓰는 행위에 대해 구도적 자세로 임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창작론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중견작가로서 문단 내 지위를 확고히 해 가던 오에 겐자부로가 39세 때 발표한 소설 창작론으로 오에 컬렉션의 세 번째 책이다. 『쓰는 행위』는 1974년 『문학 노트』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이후 『오에 겐자부로 동시대 논집』 전 10권 중 제7권 『쓰는 행위』로 1981년 다시 출간된 것이다. 『쓰는 행위』는 작가의 사후 2023년 신장판으로 새롭게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소설론이라고 한다. 오에의 소설론과 작가론의 정수가 담긴 이 책은 국내에서는 21세기문화원이 오에 켤렉션(전 5권)으로 간행했다.

『쓰는 행위』는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실제 소설을 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쓰기에 대해 설명한다. 스스로의 내부 분석부터 출발하여 시점, 문제, 시간, 고쳐쓰기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이 책의 발간사를 오에 컬렉션 간행 위원회는 『쓰는 행위』라는 책이 '일종의 임상 보고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p8)고 말한다.


제1장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는 작가라고 하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내디딘' 사람이 소설을 쓰려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막연하고 불안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치열하게 고뇌하는 사람이다. 인류 역사 최초로 유일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전통에 기대지도 않고 이전에 존재했던 지적 모험가들의 업적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혼자의 힘으로 소설이라는 가공의 세계에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

제2장 「말과 문체, 눈과 관조」는 소설을 쓸 때 작가를 괴롭히는 방해물, 즉 문체의 선택과 '눈'의 도입에 관한 내용이다. 오에 겐자부로에 따르면 '소설 진행을 시작할 즈음, 즉 미궁의 입구에서 흡사 괴물처럼 작가를 때려눕히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곤란은 문체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문체'라는 단어는 각양각색 제멋대로 쓰이고 있는 문학 용어이다. 틀에 박힌 가짜 문체와 진짜 문체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작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딱 들어맞는 문체를 찾는 방법은 "문장을 쓰고는 파기하고, 새롭게 문장을 쓰고는 다시 한번 파기하는 시행착오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눈'이란 시점의 설정을 뜻하는 것이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의 글을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특정 시점을 선별하는 고생을 해야 한다.

제3장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에서는 '언어의 광물 표본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 어두운 곳에 묻혀 있는 광맥 전체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p89) 창작자의 고통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이미지의 물질화', '소설 속 인간' 등과 같은 오에 겐자부로의 독자적인 용어를 만날 수 있다. 제4장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에서는 자기 부정 없이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음을 강조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의 제기를 통해 고정 관념과 편견에 맞서 싸우고 소설을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제5장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는 소설의 표현 수단인 언어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언어는 논문이나 정보의 언어와 달리 단순히 지각에 의한 인식으로만 수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p167)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의 언어를 '주문이 많은 요리점(미야자와 켄지의 단편 소설)'과 같다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소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상상력을 풀가동하여 작가가 만든 구조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 제6장 「지움으로써 쓰다」는 퇴고에 관한 내용이다. '방금 쓴 소설을 대폭 삭제한다는 것은 마치 자식의 팔을 도끼로 베어버리는 것과 같은 작업'(p183)이라고 말할 정도로 퇴고는 어려운 과정이다.


『쓰는 행위』는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간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어왔지만 이 책은 그 책들과 달랐다. 책을 읽는 내내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는 기분이었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물론 어느 한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세계를 고작 며칠 투자해서 이해하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아시아의 지성이자 일본의 대문호가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본 것에 가깝다. 모든 작가가 오에 겐자부로처럼 치열하게 고뇌하며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또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뇌하는 작가가 기울이는 노력이 언제나 성공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다. 독자인 우리가 문학 속에서 감동과 충격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을까. 작가가 활자로 만들어낸 세계와 사회 속에서 독자인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쓰는 행위』를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같이 구도자의 태도로 소설을 쓴 작가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그래서 방금 쓴 몇 페이지를 다시 읽고, 수정하고, 다시 쓰는 것은 진정 겹겹이 쌓인 심리적 짐을 짊어지고 가는 노역이다. (중략)

나는 더 이상 형체가 없어진 문체의 껍데기에 나 자신에 대한 개념을 채워 넣을 뿐인 자동인형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P91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오직 한 사람의 작가로서 소설을 쓰기 위해 나 스스로를 작가라는 직업 특유의(다른 일과 비교해 특별히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카오스를 향해 채찍질할 때 겪는 일에 관한 것이다. (중략)

작가라는 직업 특유의 경험을 통한 다양한 과거 인식과 새로운 발견을 꼼꼼히 검토하여 지낼 수 있는 꽤 긴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시간을 통과하며 마주한 일들을 관찰하여 기록해 두고자 한다. - P13

실제로 작가는 대단한 준비의 축적과 확고한 기반에서 서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것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극적인 점인데, 작가는 이런 상태에서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과분한 야망을 품은 채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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