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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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Nomad)라는 말의 어원은 초기 인도유럽어 단어 노모스(nomos)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모스의 뜻은 다양한데 "고정된 지역 혹은 경계 지역", "방목자", "방랑하는 유목민의 일원", "방목지를 찾아다니는 사람" 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가축 떼를 방목할 법적 권리를 가질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는 노마스(nomas)의 근어가 싼 튼 바로 그 근어인데, 이 근어는 나중에 여러 갈래로 분기된다. 소도시와 대도시가 건설되고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는 삶을 살게 되자 이제 노마드는 '벽 없이 생활하며 경계 너머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정착민들은 노마드를 두 가지로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노마드'라는 단어에서 낭만과 향수를 찾는다. 반면 한편에서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떠돌이, 철새, 방랑자, 도피하는 사람, 주거 부정인 사람들이라고 암묵적으로 판단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는 노마드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돈이 많아 이곳저곳을 선택하여 옮겨 다니며 살 때는 보통 첫 번째 의미를 적용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가진 돈이 적어 삶에 떠밀리듯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는 사람들에겐 두 번째 의미를 적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해석하고 무지에서 비롯된 위협과 불안, 혐오와 편견을 가진 이들을 향해 해석에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과 정착해 사는 사람들 간의 관계 변화를 추적한다. 1만 2,000년에 걸친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인류 역사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기억되지 못했고 그나마 남은 기억도 오해로 가득 찼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탐구한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졌다. 제1부에서는 인간이 수렵채집을 멈춘 시점이었던 1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착민과 유목민들이 대체로 협력했던 초기 역사에 대해 말한다. 1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착민과 유목민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 정착민들은 인류 문명이 대부분 정착민들이 이룩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명은 초기부터 언제나 유목민, 이주자, 그리고 이동하며 살았던 사람들에 기여에 힘입어 성장했다.

제2부에서는 소제목 '제국 세우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동성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몇몇의 위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유목민들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현대 세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일컬어 암흑시대로 명명했다. 그러나 2부를 읽어가다 보면 이 시대가 결코 암흑시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식민지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유목민들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다룬다. 유럽인들은 어디를 가든 유목민의 힘과 마주쳐야 한다는 오래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과학혁명과 함께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다. 유럽의 백인들은 인간 세상뿐만 아니라 자연도 지배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유목민들의 삶을 야만적이라 여겼다. 유목민들의 삶은 부정당했고 그들의 역사는 지워졌으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정착민들이 '노마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 책의 서문 격인 <이란, 자그로스 산맥에서>을 읽으면서 유목민의 역사를 다시 읽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작가, 언론인, 방송인, 「지리학」지의 편집고문, 왕립지리학회 회원지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기고 편집자인 저자 앤서니 새틴은 이 책의 시작을 바흐티야리 부족민들과 함께 보낸 경험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저자는 성인이 된 이후 오랜 시간 전 세계 곳곳의 유목민들과 만났다. 유목민들과의 대화는 늘 같은 주제였다고 한다. 연속성, 소속되어 있다는 자부심,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존경하는 마음, 국가가 정착을 바라는 상황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의 어려움 등등. 이 주제들은 낭만적이고 몽환적으로 들린다. 나는 여기서 내 오해와 무지를 바로잡아야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유목민들과 어렸을 적 학교에서 기계처럼 외웠던 '흉노족의 침략' 속 유목민들을 연결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흑인의 삶처럼, 여성의 삶처럼, 소수민족의 삶처럼, 아시아인의 삶처럼 유목민의 삶도 역사에서는 늘 잊혔다. 이 책을 통해 유목민들의 삶을 새로 배웠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때 이후로 정착 생활을 했다. 지난 세기에 우리 대부분은 크고 작은 도시들에 정착했고, 우리의 삶의 방식은 자연계를 떠나 벽 안에 사는 형태로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중 일부를 사악한 인간, 신뢰할 수 없는 동반자, 마약 중독자, 스릴을 쫓는 사람, 도박꾼,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으로 바꿔놓았으며, 또 다른 사람들이 탁 트인 도로,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 새로운 경관 혹은 다음번에 만날 친구를 고대하며 노마드랜드(유목민의 땅)를 방랑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게 만들었다. - P51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지나오면서 우리 인간은 모두 이동하며 살았다. 우리 세계, 우리 문화,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유목민들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행동은 자궁에서 나오는 첫 여행으로부터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여향까지 모두 여행과 연계되어 있으며, 진화가 우리에게 의도한 것도 여행이었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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