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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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예술가 25명이 등장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 낯선 세상과 불화하며 흔들렸습니다. 때론 세상은 그들을 오해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기어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완수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작가정신(2024)



지은이 조성준은 2014년부터 매일경제 신문사 편집부에서 근무했고 온라인 뉴스 플랫폼에서 ‘죽은 예술가의 사회’를 연재했다.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는 시대를 풍미한 천재 예술가 25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권력에 맞선 건축가 김중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책에서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유명 건축가, 화가, 만화가, 가수, 배우, 작곡가, 지휘자, 영화감독 등 25인의 삶과 예술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예술가 중 상당수는 반골이다. 그들은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낸다. 이들에게 세상이란 혁신해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는 동시대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백남준이 그랬다.

121페이지, <백남준>





살다 보면 깨닫는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나는 너에게서 너는 나에게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으로 간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에 빠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술에서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를 위로했던 예술가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까?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그림과 건축과 연기와 노래는 사랑했으면서 그들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김중업


현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였던 건축가 김중업은 삼일빌딩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곧 추락했다. 그는 건축가인 동시에 지식인으로 마포 와우 아파트 붕괴를 비롯해 정부 도시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소신 발언의 대가로 그는 정부 눈밖에 났고 반체제 인사로 몰려 1971년에는 추방당했다. 김중업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는 걸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히스 레저


스타의 요절은 대중의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런 히스 레저가 세상을 갑자기 떠나자 세상은 그의 연기와 죽음을 연관시켰다. 그러나 히스 레저의 사인은 자살도 마약도 아니었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그는 수면제, 진통제, 진정제 등 독한 약을 한 번에 삼켰다가 약물 과다 복용 부작용으로 사망한 것이다. 반짝이던 스타는 더 발견해야 할 것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히스 레저가 좋아했던 해변에서 열렸는데 그를 사랑했던 가족들과 친구들은 슬퍼했지만 울지 않았다고 한다. 웃고 춤추고 장기자랑하고 물장구치며 아름다운 배우이자 사랑받던 사람을 떠나보냈다.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는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먼로에 대한 전기나 영화가 많이 나왔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먼로가 책을 사랑했고 배운 것은 행동하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먼로의 서재에는 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카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토마스 만, 도스토옙스키,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 졸라 등의 작품이 수두룩했다. 먼로는 시도 썼고 그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에는 삶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먼로는 핵실험 반대 단체 회원으로 활동했고, 흑인 인권 운동을 후원했고, 쿠바의 좌파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지지했다.







로빈 윌리엄스


로빈 윌리엄스는 1990년대 전성기를 보낸 뒤 2000년대부터 연기폭을 넓히려 했다. 그런데 세상은 로빈 윌리엄스는 진지한 영화를 찍으면 안 어울린다며 손가락질했고, 코미디 영화를 찍으면 식상하다고 조롱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사랑했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할리우드에서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그의 부고를 듣기 전까지 몰랐다. 그는 우울증을 겪었고 60살을 넘기고 나선 치매까지 왔다고 한다. 세상을 등지기 열흘 전 자기의 품에 딸을 품은 사진을 SNS에 올렸고 며칠 뒤 그는 떠났다.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는 각각의 예술가의 삶과 업적을 5페이지 내외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한다. 25명 예술가의 삶을 당시의 사회-정치적 맥락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생생한 그 인물들의 빛났던 이름 뒤에 응당 따라붙었을 고통과 상실을 이번 책을 통해 조용히 엿들을 수 있었다. 






예술가 중 상당수는 반골이다. 그들은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낸다. 이들에게 세상이란 혁신해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는 동시대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백남준이 그랬다. - P121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기쁨은 금방 휘발하고, 지겨운 과제는 산더미다. 그래서 희극인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다. 팍팍하고 서걱서걱한 삶 속에서도 우린 코미디를 보며 잠시나마 걱정을 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극인의 삶도 희극일 것이라 오해한다. 휴양지에 사는 사람들이 마냥 행복하리라 착각하듯 말이다. 당연히 희극인도 비극과 싸우며 산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어야 하고 웃겨야 한다. 코미디 배우들은 속으로 운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우울하다. 늙은 희극인의 얼굴은 유독 애잔하게 다가온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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