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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세트 - 전5권 ㅣ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 자본세트를 읽고 제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제국주의가 물러나고 평등한 세상이 오길 원합니다.
- CIA 요원에게 암살당한
‘마하트마
간디’
3년 동안 운동권에
투신해왔다. 경찰을
‘한나라당의
개’로 생각하고
FTA에 강하게
반대하여, 양주·의정부 일대의
FTA천수막을 모두 가위로 잘라
버렸으며, 미국의 제국주의를 막고자
의지와 열정을 굳게 다짐했다. 이번에 진보통합신당의
당원으로 가입할 예정이다. 나는 옳지 않은
것, 내가 지금까지 그릇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해서 강한 반기를 들었던 건 유년 시절에까지 소급된다. 나는 교정에서 집합해서
애국가를 부르는 게 극우의 극렬이라 생각했다. 포퍼와 엘빈 토플러를
진심으로 경멸한다. 나는 절충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투사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단지
투쟁, 히틀러가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미친 듯이 써내려갔듯이
사회주의의 대의는 마르크스/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신념(이념)으로 이 이데올로기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본디 분노와 투쟁은
다르다. 투쟁은 어리석은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상류계층과
국수주의에(나는 히틀러와 같은
국가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반대하며, 약자, 가령 노약자와
어린이, 정신병자, 프롤레타리아, 룸펜
프롤레타리아,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논리학의
변증법’을 정초해야 하는 일종의
테제를 지향해야 하는 일들, 비록 내가 관점 의존성에
함몰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결백하다. 내 의식지평은 언제나 빈곤한
자들을 위해 희생할 용의가 있다. 내가 전태일처럼 노동자들을
위해 분신자살을 할 수 없다는 명제를 옹호한다 하더라도, 분명 나는 평생
‘변증법적
유물론’에 투신할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는 쁘띠부르주아를
먼저 잡아먹을 것이고, 그 다음에
상위1%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히겠다. 바로 언론과 민주화의
자주성에 입각해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글로벌적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아니라 분배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통일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이명박 이 추잡한 인간은
통일세 제도를 폐지하라!, 북한은 한국이
아니다. 그 나라는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라 전체주의 나라다. 북한은 전혀 남한과 연루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북한을 신경조차 쓰지
않아야 마땅할 당위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복지제도의 확충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정신병자를 뉴욕 주처럼
본인의 허락 하에 입원시켜야 하며, 그 가외는 납치와 인신매매에
다름 아니다. 약자 또한 선택의 권리가
있다. 선택은 강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왜 우리 프롤레타리아들은
단결하지 못하는가. 왜 대규모 파업과 월가시위
같은 ‘헤겔적 전체적인
정열’이
없는가. 촛불시위는 시위도
아니다. 괴담에 이끌린 모순성의
시위가 과연 시위의 정합적 체계를 지니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좀더 뭉쳐야
한다. [시민단체·인권위원회·야당·소비자위원회·신념 있는
고위관료]들이 뭉쳐야
한다. 만인의 프롤테라리아는
단결해야 한다. 또한 외람된 말이지만 나는
출판업계와 제약시장을 지키겠다. 제네릭 약물은 인민을 위해
허용되어야 한다. 대학병원 약값이 얼마인지
당신은 경험해 보았는가? 한국 재벌그룹이 생산하는
제네릭 약물이 미래이다. 서민은 좀더 값싼 가격에
약을 처방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테면 릴리는 정신분열증
약 자이프렉사를 개발한 후 16년을 고가에
팔아왔다. 개발비용은 얼마 들지
않는다. 리피토도
마찬가지다. 제약회사는 모든 사업
제분야중 최고의 황금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진보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 미국과
유럽, 일본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겠다. 출판시장도
마찬가지다. FTA가 성사된다면 모든
번역 책은 1.5배의 가격상승을
맞는다. 우리는 결코 미국의 학자와
작가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나를 국수주의자로
폄하하지 마라. 현재 책값은 너무나도
비싸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근데 더 오른다는
말이다. 내가 양약과 책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건 몰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다. 나를 비윤리형이상학자라
괄시해도 나는 예수처럼 피를 흘리고 죽겠다. 대한민국 서민은 값싼 제네릭
약물과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은 책을 값싸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저작권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의
인민에 대한 기만이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돈을
챙긴다. 한미FTA는
소고기, 자동차, 오토바이, 모든
전자기기, 담배연초, 시가, 궐련, 식품 등만의 관세를 완전
철폐하는 것만 허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민의 삶은
부유해지고 윤택해진다. 비단 나라 발전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수 시장은 정신줄을
놓고 있다. 왜 미국에는 질 좋은
자동차를 팔아먹으면서 한국에는 쓰레기같은 자동차를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수입차를 규제하는가? 내수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부분적인 FTA의 체결이 필요하긴
하다. 예컨대 책이나 약물은 우리가
수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위에 예시한 물건들은 수출하니,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관세장벽을 치고 현대자동차를
팔아먹으면, 최대 시장인 미국이 한국의
모럴을 뭐라고 여기겠는가? 무릇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나는
완전히 편협한 투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나는 제네릭 약물
시장과 출판시장을 지키고 싶다. 시민들이 적은 봉급을 받는
대신 값싸게 식료품을 사는 세상을 원한다. 나는 프롤레타리아가 생활의
풍파에 시달리지 않고 부유하고 윤택한 생을 누리길 원한다
그렇다면 그 기술적 접근, 방법론에는 어떤 게 있을까?
자본주의, 결국 자본은 모든 분야를
점령했다. 돈 없이는 한 걸음은 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종국 이런
‘사회병폐’는 너무나도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거리
노숙자(이들도 똑같은 우리의
종족이다. 왜 평등의 원칙 아래 세워진
나라 아래서 같은 인간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강력범죄(돈 없는 사람이 저지르는 게
이런 단순 범죄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누구인가? 쁘띠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엘리트 계층에게 단순범죄가
가당키나 한가, 사실 사드가 범죄자인지
사드를 가둔 왕가와 귀족들이 범죄자인지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누가 정녕 자연의 본질을
그르쳤는가!), 어린여성의
창녀화(이런 난세일수록 여성은 결국
자신의 여성성을 물화로 지향시킨다, 왜 고귀한 형이상학적 어머니
여성의 개념을 자본주의의 회로에 강제로 집어넣는가, 이렇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결국 ‘스스로
그러함’을, 인간종족을 파멸시키려는 이미
통제력을 잃어버린 미친 자본의 힘이다.), 지하철 방송에서 들리는
좌파사범이라는 단어(과연 누가 진짜
사범인가!), 정말로 약이라는 용어가
의심되는 자본의 가장 큰 황금시장 현대서구약과 의료시스템(분자구조식 합성약은 일시성에
귀착될 뿐이다. 건강은 공짜로 얻어지는
손쉬운 것이 아니다. 건강도 진지한 노력과
강함보다 더 절실한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히포크라테스의 참뜻은 자본의
창출이 아니었다. 만약 모든 약의 가격을
0원으로 항구적으로 동결시킨다손
하더라도, 그러니까 거줘 주더라도 내
몸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한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돈에 굶주린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 초심을 잃은
아카데미즘(내가 제일 싫어하는 자들은
학자, 의사, 변호사들이다.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권위이며 가장 더러운 곳이 학계이다. 배운 자들이 못 배운 같은
인간을 억압하고 배척하라고 배운 것인가? 진정한 선비는 결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런 게 바로 자신과 이론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깊이
없는’ 시정잡배들이다), 무조건
FTA를 반대하고 늘어지는
지식인과 문단(자기들의 돈줄인 출판업의
붕괴를 심히 염려하고 있다. 이들은 인문학서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소비력이 없는 가난한 선비들에게 팔아치우는 사기꾼들이다. 잡서는 잡서대로 대량으로
제로에서 현금처럼 찍어내어 무지한 소비자들을 서점에서 정가로 팔아치우며, 출판일과 가격의 비약을
비례시키는 고전적인 상술을 아직도 유지한다. 한국출판업계는
대쇄신해야한다. 무릇 배운 자들이 더 지독한
법이다. 이들은 선동을 수단으로
자신의 권위를 더블, 트리플로 불리려고
한다), 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돈을 위한 정치(신념의 정치가는 전면 공무화
되었다), 거품과 사기투자로 가득 찬
닷컴재벌의 부조리, 수수료와 이자로 돈을 버는
금융체제(수수료를
0원으로 동결시키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나서서 짓밟을 것이다), 천박한 복사멜로디와
리드미컬과 거지같은 가사로 팔아재끼는 천박한 연예인대중음악계, adverstiment의
무한계열(왜 미디어에 이를 끼워 팔기
하는가? 한국처럼 끼워 팔기
adverstiment가 판치는 나라가 없다. 사실상 파는 것도 아닌
강제보기이다, 하나의
저급정치, 소비자고문이다.), 룸펜프롤레타리아의
범람, 투기에 미친
쁘띠부르주아(이들로 인해 부동산에 거품이
낀다. 이런 사회의 기생충들은 전부
발본색원하여 박멸해야 한다), 사실상 하는 일 없이 돈만
챙기고 있는 공무원(왜 회사라는 정글에서 도피하여
편하게 돈을 챙기는가, 서민들이 타는 버스비용을 왜
계속 인상하는가, 버스기사들은 담합을 못하게
서민들한테 무력으로 털려야 한다), 부패의 똥냄새가 진동하는
법조계(너희들은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 인간은 신만이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감히 인민을 심판하려
드는가.), 월
10만원 미만으로 민족주의라는
연막표상을 이용해 착취하는 ‘한국군무부’, 과연 우리가 이 나라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에게 주권도 주지 않는
이 나라를 북한에서 지켜야 할 의미 같은 게 처음부터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부르주아와 엘리트 계층을 영멸시키는
‘실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일단 ‘자본주의 시스템은 정교한
먹이사슬’이다. 정글에서 가장 큰
상위층, 즉 절대부르주아부터 잡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좀더 손쉬운 먹이부터 찾아야
더 강한 Very very powerful peoples를 말 그대로 ‘산 채로 잡아먹을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자본의 맹점은 결국 자연의 합법칙성의 하부구조라는
것이다. 배가 물 없이 뜰 수
있겠는가? 자본가일수록 그 자본의
향연에 취해 인간 자체는 더 약한 법이다.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단 공략해야할 건 널널한
자영업자와 출판업계, 의학계, 법조계 등 말하자면
쁘띠부르주계층이다. 이 분야들을 공시적으로
괴멸시키는 공통분모가 보이는가? 오직
하나다.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처음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 자가 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 더 나아가 글로벌이 어려우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프롤레타리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다. 프롤레타리아들이 은행에서
전부 돈을 빼서 자택 개인금고에 보관한다. 어디서든 신용카드를 써서
업체에서 탈세를 못하도록 막아라. 신념을 위해서 좀 좋은
금고를 사라. 그리고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
분명 빈집털이범, 더 나아가 대놓고 털
것이다. 여기에도 좌파의 신념을
적용시켜야 한다. 진짜 좌파는 고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연인이다. 자택털이범에게
‘자연의
법칙’을
일깨워줘라. 그들에게 자연을
감득시켜라. 말하자면 귀한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금고와 가족 전체를
보안전산망으로 연결하라. 자다가 금고에 신호가
오면, 금고를 여는 시점까지
임박해서 준비해놓은 박달나무로 두개골을 부셔버려라. 무릇 귀한 손님일수록 더
대접이 융숭해야 하는 법. 주택에 주거자가 있는
상태에서 가택무단침입, 강도죄, 더 나아가 살인미수가
성립된다. 주머니에 칼을 숨겨놓은
것까지 확인하면 대가리를 달걀 부셔 버리듯 방망이로 죽여도(!) 된다. 이때 사람 안 잡으면 언제
사람 잡아보는 융숭한 경험을 해보겠는가? 정당방위는 이러라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말을 맞춰서
살인미수로 몰아 아예 그 프롤레타리아 피 빨아먹는 범죄자를 진짜 산 채로 죽이는 것도 좌파적 신념의 좋은 발현일 것이다. 만약 무기소지하지 않았다고
하면 증거를 만들어라. 준비해놓은 칼을 손에
쥐어줘라. 손수건으로 전부 본인의
지문을 세척하고 그 악한의 지문을 잔뜩 묻힌 채로. 살인자로 몰아서
객사시켜라. 만약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다면 도청기를 발목 안에 장치시켜라. 스파이로 모는
것이다. 좌파지식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부르주아의 미행을, 동지로 말미암은
2차 미행으로 비스 무리한
방법으로 제거시키는 방도도 유추해볼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권모술수에서는 오직
한 가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웬만하면 혼자서 깨끗하게
처리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믿을 자는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 용기를
가지려면 수사관의 직감을 능가하는 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소매치기, 소매치기를 가장 잘
대접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머니에 쥐덫을 준비해놓는 것이다. 남의 물건에 손 댄 자는 그
손모가지가 날아가도 명분이 없는 것이다. 이참에 서민을 기만하는
지하철 소매치기를 인민 보는 앞에서 버젓이 대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인민재판은 시행되어야
한다. 쥐덫이면 거의 손모가지가
천천히 잘린다고 봐도 된다. 고대율법을 따르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말이다. 이것이 자연
아닌가? 소매치기 놈들은 대부분
능글능글한 어린애들 아니면 프로들이다. 대부분 단체로
행동한다. 이들을 다 엮어서 감방에
처넣어라. 평생 젊은 인생을 그곳에서
썩게 확실히 보내줘라. 아예 지하철 내에서
인민재판으로서, 하나의 심급의 층위로서
발굽으로 서민들이 나서서 그 쥐덫으로 손모가지가 날아간 놈의 얼굴을 짓밟아 평생 괴물로 살게 만들어도 싸다. 그러면 그 동료는 복수는커녕
겁먹어 내뺄 것이다. 이미 치안과실의 죄가
국가에게 있으니 직접 몸소 행위자들이 심판하는 노력까지 보였으며, 좌파지식인과 투사들이 차후
충분히 대변해줄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이들은 내가 말하려고 했던
핵심사상에서 비스듬히 외회하고 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지하디시피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있어 가장
큰 폭력이다. 인간이 업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비’인
것이다. 따라서
‘업계의
줄도산’, 피라미드식 자본주의의
하부구조가 와해되는 ‘자본순환의
초토화’. 아무리 감언이설로
설득시키려 해도 우직하게 지갑을 열지 않는 그 노둔함. ‘요는
지갑’이다. 결코 열리지 않는
지갑, 난공불락과 같은 지갑봉쇄의
미학. 모종의 루카치적 절제의
미학(나는 루카치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미학을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그를 높이 산다. 아니 사실상 그는 모든 걸
망라했다!). 만인의 무소비의
단결, 이
전무후무함. 이를테면 밖에 나가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마라.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커피점의
거품을 즉자적으로 괴멸시켜라. 책을 사지
마라. 출판업계는 줄도산의 앞에서
귀한 학술서들을 97%에 내놓을
것이다. 이게 자본의
법칙이다. 부르주아의 가장 큰 돈줄이며
의사라는 사기꾼들이 수발드는 의료계를 부정하라. 의료계를
ZERO로 만들어야 부르주아의
심장을 찌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병원의
줄도산, 가장 중요한 건
‘줄도산’ 법칙이다.
사실상 결론이다. ‘만인이 담합하여 지갑을
열지 않는 것’, 이것이 코다의 핵심
시너지다. 나는
외친다. ‘만인이여, 자본주의라는 외계에 이끌리지
말고 당신들의 지갑을 봉쇄하라!. 프롤레타리아의 힘을
보여줘라, 단결하라!’. 중국에서는
1자녀 원칙이 있어서 장남이
아니면 대부분 10살 이전에 대농가의 평생
착취의 수레바퀴에서 살며, 필리핀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평생 폐물쓰레기 산에서 그것들을 줍다가 인생을 마친다. 브라질과 멕시코에서는
단순범죄로 떠돌다가 교도소에서 일생을 마치는 인민이 대다수이다. 아직도 정의란 게
살아있는가?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최소한 인간을 위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의 신만이 엄격하게
잔존할 뿐. 신이라는 관념은
프롤레타리아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의라는 건 이 부패로
만연한 세상을 더 큰 힘으로 잡을 데에만 성립할 수 있다. 마틴 루터킹과 간디는 평화를
제창했지만 CIA요원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평화라는
단순한 유언비어에 속아서는 안 된다. 불편부당한 현실은 우리가
직접 무소비라는 냉혹한 칼을 들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 지갑을 열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들이 원하는 짓을
하면 안 된다. 단 한 푼도 쓰지
마라. 그리고 나서 천천히 모든
재화의 비용이 폭락하는 걸 바라봐라. 그걸
즐겨라. 너희들의 손으로 세상을
심판하라. 메시아라는 건
없다. 인간이 꼰 매듭은 인간
스스로만이 풀 수 있는 법이다. 너 자신을 너로 말미암아
구원하라. 냉정한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용하라. 진정한 자비를
보여줘라. 참佛法을 에피파니하라.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뿐이다.
단결, 프롤레타리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단결’이라는 ‘내재적
일의성’이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美石
박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