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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내 몸을 망친다 - 산악인 의사가 말하는 내 몸을 살리는 건강 등산법
안재용.윤현구.정덕환 지음 / 비타북스 / 2011년 4월
평점 :
내 나이 18살에 나의 정신건강은 어느 정도 나아졌고 오직 젊은 날의 열정과 긍정적인 열광으로 가득참과 동시에, 가장 머리가 기민하며 예민했고 태어남과 죽음의 사이 중 가장 머리가 맑은 시기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해오던 등산은 이제 거의 구도의 경지로까지 치달아 산을 타면서 도를 구하며 깨달음을 얻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선경을 감상하곤 했다. 내가 타던 산의 이름은 부용산인데 나는 길 없는 데까지 전부 관통해서 산을 타서 내가 산의 모르는 지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뱀, 노루, 토끼, 들개까지도 전부 보았고, 산이 북한 근방이라 죽은 용사의 유해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산 곳곳에 전시용 벙커가 있었고, 나는 나름대로 이러한 요소들을 신비로운 형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산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는 생득적으로 깨달아 경험칙과 사변적 연륜이 부족했거니와, 나이가 어려 일천한 합법칙적 학문의 메커니즘의 지식도 그랬으며, 무엇보다 언어로 이를 풀어쓸 재량과 밑천이 없어 남에게 전해줄 요량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바도 그리 뛰어난 게 아니었으니 여기서 말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기야 내가 이 더러운 사바세계에서 산으로 들어가 대오함으로써 얻는 지의 폭풍은 가히 환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현인과 견줄 바는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때의 맑은 심정으로 되돌아가기란 지극히 어려울 듯도 싶다. 나는 그 이후로 4년이 흘러서야 정식으로 학문에 입양되었지만 오히려 깨달음의 깊이와 거시적인 수준은 그때에 못미치니 애석하기만 할 따름이다.
산은 무한한 넓이로 나를 받아들였다. 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변증법 과정의 일단이었으므로, 무한히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친 듯이 산을 탔다. 산을 타보지 않은 자는 산의 오묘하고 명쾌한 맛을 모르는 법이다. 산은 내게 지혜와 건강을 주었다. 산을 타다 문득 절이 보여 들어가 합장도 해보고 싶었지만, 소극적인 내 성격에 감히 그 선사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주위만 한가롭게 배회했다.
부용산에는 묘가 특히 많았다. 용사들의 유해도 많았고, 전쟁에 관련된 많은 것들이 잔존했다. 그래서 혹여 지뢰를 밟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지뢰는 전부 제거된 듯했다. 산을 비추는 햇빛은 풍경을 흠뻑 노란색으로 적시고 나를 무아지경의 세계에 빠뜨렸다. 산의 그 맑고 그윽한 향기에 취하노라면 세상만사 그 어떤 것도 부러울 것 없는 신선의 경지에 입적한다. 개인적으로 남들이 많이 찾는 산보다는 사람의 자취가 없는 처녀지가 더욱 신기한 맛을 준다고 생각한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 올라 경험하는 그 황홀감은 다른 것과 결코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이다. 산을 타는 건 육체지만 도리어 정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산을 탄다고 볼 수 있다. 발걸음 하나하나로 말미암아 의식지평과 자의식이 확장되고 변증법적인 사유능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등산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니.
산속 깊은 곳에서 고요함에 도취되지 않고 외로움을 느끼는 자는 정신적 하수이다. 나는 산을 탈 때 꼭 혼자서 탔다. 다른 이와 함께 타면 산의 고요한 맛을 알기 어렵고 정신이 흐트러진다는 단점이 있다. 산에서 선禪을 구하려면 혼자서 햇빛도 들지 않는 대수풀림의 정 가운데에서 내선일체하여 대정의 순간에 입도해야 할 것이다.
나보고 꼭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거든 강원도의 수많은 이름 없는 대大산들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처녀지들을 정복하고 이를 자신의 기억 회로에 낱낱이 저장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난 산이 정말 좋다. 산이야말로 진실이자 진리요, 미래를 알려주는 보금자리이자 과거의 과오를 지워주고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비밀의 문이요, 곧 길이다. 산을 타보지 않은 자와 세상의 이만저만한 걸 논하려거든 극구 말리고 싶다. 산을 모르는 자와 일체 대화를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산을 알지 못하는 자의 정신은 깊이가 없고 세속적이며 보잘 것 없다.
나는 등산을 접은 지 수년이 됐고 아직도 초보다. 나는 산을 혼자서 타라고 일렀지만 높은 산은 꼭 동반해서 타야 미연의 사고에 구출 받을 수 있다. 혼자 타다 골절이라도 당하면 골로 가는 거니까.
산은 곧 정신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고 또 절이라는 정신의 꽃도 꼭 산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산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