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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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지반으로 하는 모든 사고思考

철학은 어떤 천재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진 모종의 형이상학적 체계가 아니다. 인간은 현실제반적인 외부적 자극에서 자신의 사상유희를 시작하지 않고서는 별달리 새로운 사고의 공전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요컨대 신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이전에 현실의 힘겨움과 자연의 잔악함을 먼저 직시하고 그 지점부터 신에 대한 의구가 드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이 모든 학문의 왕이라고 한들 그 왕을 추대한 것은 모든 감각적/경험적 자극이므로 또 이들로 이루어진 분과의 학문들이므로, 왕이 사회성원으로 인해 발을 디디듯 철학 역시 이성Logos의 반대라 불리는 감각적이고 경험칙적인 자극을 지반으로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리라. 따라서 ‘철학’ 하나의 독보적인 발전으로는 위대한 학문적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다종댜양한 학문의 분과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성숙해야지 이들의 총체가 바람직하게 응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철학’ 하나에 집중하기 이전에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아우를 수 있는 원지적인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서 예컨대 ‘아인슈타인’같은 최상의 물리학자나 ‘괴델’과 같은 대천재 수학자가 철학으로 돌아서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학문의 분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이룩한 자들 심지어 정치인들까지도 마침내는 철학으로 전회하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는 때때로 발견하곤 한다. 또한 가령 ‘야스퍼스’나 ‘베르그송’같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시작은 다른 학문에서 했으나 종점은 철학으로 귀결하는 귀일한 일자一者를 택했다는 것은 이와 같은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리라. 철학은 요컨대 모든 학문의 종점이자 완성이며, 모든 행위의 종착점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홀로 선험적인 위치에서 독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따금 단속적으로 생각하는 위대한 추상의 사고들은 모두 그 높은 지점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하나의 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생각은 결코 현실과 분리될 수 없으며 자연과학과 반대되는 요컨대 비이성적/비합리적 사상은 철학이라기보다는 ‘무속’이나 ‘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철학은 과학의 산물이며 관념론적이지만 지극히 유물론적인 거대한 형이상학 체계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들을 사고로 삼투압시킬 때 비로소 그곳에서 ‘철학’이라는 추상적인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철학자를 기이한 사람이라 여길 편견도, 전혀 철학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사람을 통속적이라고 비난할 여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글에서 사변에서 사변으로 이행하는 연역적인 과정이 결코 위대한 대사상을 탄생시킨다는 필연적인 근거를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현실의 반어적인 표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니까. 필경 철학이 존재하는 범주는 거의 모든 학문과 사史적 역사를 통틀고 있으므로 모름지기 철학자란 모든 학문의 종합적인 총체자라 하는 게 보다 적합한 표현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항시 겸손함을 미덕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며 결코 현실과 분리되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철학이 가야할 길은 오로지 현실과 과학의 이중합주의 틀 가외의 것에서는 존속하지 않는다. 전화든 이행이든 명증한 섭리란 사적 유물론 구조적인 방식밖에는 어떠한 기술적인 접근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철학이란 일반인에게 결코 어렵고 도달 불가한 경지가 될 것이 아니라 보다 친숙하고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따스한 조언으로서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낮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들이 철학을 매우 고귀한 학문의 영역으로 추앙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한국시민은 좀더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이를 무속적이거나 종교적인 측면으로 하락시킬 게 아니라 지극히 세련된 학문의 분과로서 마땅히 귀하게 점철시킬 당위적인 근거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학문의 왕 ‘철학’을 간과하고 좌시하는 행태가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기술과학이 빠르게 진일보하고 있다지만 이에 맞춰 철학이라는 이름의 ‘정신’이 비례하게 따라가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좀더 좁혀 말해 한국사회에 화려한 미래는 결단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이유를 토대로 나는 당신들에게 철학을 권면하는 것을 기필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장 필수적인 안건 중에 이 관건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요가 된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따라서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철학은 곧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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